위기에 강한 스파르타식 매니지먼트

“나는 이런 순간이 오면 엄청 차분해져. 근데 이런 순간이 왔네.”

이승기 측에서 내용증명을 받은 권진영 대표의 반응이다. 그는 평소에는 다혈질이지만 오히려 정말 화가 나면 차분해진다고 했다. 해당 녹취록은 내용증명을 받은 후 소집된 이사, 매니저 긴급회의에서 나왔다. 권진영 대표는 회의를 하자고 불렀지만 다른 이사, 매니저 등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는 주변에 “조용히 하라”고 윽박을 지른 뒤, 문제의 “내 이름을 걸고 내 남은 인생을 이승기를 죽이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해당 회의에서 나온 이승기의 매니저는 “(회사를) 나가겠다”며 흐느꼈다. 지난 9년 동안 낮밤없이 일했지만 회사에서 돌아오는 건 수치와 폭언이었다. 그가 제출한 문자에 따르면 그는 이승기의 일거수일투족을 회사에 보고했고, 회사 즉 권진영 대표측은 “웬만하면 법카쓰지 말고 이승기 개인카드로 결제하라”고 유도했다. 그러면서도 매니저에게 (이승기 편에 설지, 회사 편에 설지) 라인을 똑바로 타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이승기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한 제작자는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내용 및 장면들을 소속사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컨펌했다”고 했다. 이승기가 자기를 포함해 자기 사람들이 받는 대우를 몰랐을 리 없다.

이승기는 데뷔 후 줄곧 전성기였던 연예인이다. 가수, 연기, 예능, CF까지 성공가도를 달렸고 국내외 팬덤도 공고하다. 하지만 소속사에게 그는 여전히 ‘고등학생 취급’을 받았고, ‘마이너스 가수’라 불렸다. 음원발매는 ‘네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분위기였다. 그가 지난 18년 동안 ‘정산’ 문제제기를 못한 이유, ‘자신의 출연료도 모른다(<아는형님> 출연 중)’라고 한 이유다.

이승기와 이선희, 그리고 권진영 대표
이승기와 이선희, 그리고 권진영 대표

 마이너스 가수라는 가스라이팅

그런데 회사 직원이 잘못 보낸 문자 한 통으로, 이승기 측은 자신들이 ‘마이너스 가수’가 아님을 알았고, 음악으로 낸 수익도 100억 원대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그는 다른 출연료, CF 수익 등은 문제삼지 않았다. 오직 음원으로만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 18년의 세월을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고등학생 시절, 데뷔를 준비하면서부터 이승기는 소속사의 철저한 관리를 받았다. 4년간 핸드폰이 없었고 합숙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음악도, 연기도, 예능도 그렇게 배웠다. 그가 시상식마다 권진영 대표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보낸 건, 이 시기의 훈련이 자신을 연예인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서다. 당시 권진영 대표와 스승 이선희가 머물던 한남동에는 또 한 명의 거물이 있었다. 고현정이다.

권진영 대표와 함께 손을 잡고 드라마 로 복귀한 고현정 ,SBS
권진영 대표와 함께 손을 잡고 드라마 로 복귀한 고현정 ,SBS

고현정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이혼 후 연예계에 복귀했을 때도 권진영 대표와 손을 잡았다. 이승기가 자신의 첫 앨범의 special thanks to에 ‘현정이 누나’를 언급한 건 고현정이다. 그는 이승기의 연기 스승이었다. 그의 데뷔곡을 <내 여자라니까>로 추천한 것도 고현정이다. 이승기는 인터뷰에서 "(고)현정이 누나가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시고 가끔 내 연기에 대해 충고를 해주신다. 그러면서 나는 내 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권진영 대표는 한 유력 트로트 가수 회사의 직원으로 연예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를 기억하는 연예관계자들은 “유명 중견 트로트가수 회사의 직원에서 출발해 이선희 씨의 매니저를 맡으면서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의 트로트 시장은 지금보다 더 험악했다. 이 시기를 거쳐 매니저가 된 권진영은 아티스트들의 위기 때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이선희가 음반기획사 대표와 6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이혼했을 때, 고현정이 재벌가를 나와 다시 연예계로 복귀할 때, 윤여정이 매니저 없이 오랜 시간 홀로 있다가 매니지먼트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권진영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위기에 강한 구원투수, 권진영 대표

고현정은 드라마 복귀작인 <봄날> 제작발표회장에서 “연예활동을 지원해줄 소속사를 정했냐”는 질문에 “몇 년 전부터, 그때는 물론 이렇게 연기를 다시 하게 될 줄 몰랐지만 가깝게 지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쪽 일을 하고 있어 내가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이름은 후크엔터테인먼트”라고 밝혔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은 그에게 아티스트들은 ‘갑’이 되지 못했다. 이선희가 털어놓은 ‘시의원 출마’ 에피소드가 그 예다. 당시 이선희는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었는데 소속사가 상의도 없이 시의원 후보에 등록했다. 내가 안 하면 여러 사람이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현정은 이후 독립했으나 그의 아이오케이 소속사와 후크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끈끈한 관계다. 지난 2019년 초록뱀컴퍼니는 자회사이자 고현정, 조인성 등이 소속된 아이오케이를 통해 비덴트가 발행하는 전환사채 620억 원 가량을 매입했고, 올해 7월에는 자회사 초록뱀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비덴트에 1100억 원 가량을 투자했다. 비덴트 역시 지난해 초록뱀미디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바 있다. 초록뱀미디어는 후크엔터테인먼트를 매입한 회사이기도 하다.

권진영 대표는 부동산 등 투자에 능하다. 청담동에 후크 타운이 있다고 알려질 정도로 재리에 밝다. 회사 인수합병으로도 큰 수익을 냈다. 인근 명품 매장에서 소비력이 크기로, 그만큼 갑질을 하기로도 유명한 VIP이기도 하다. 이승기 사태가 알려지자 그에게 정산을 받지 못했던 뮤지션, 그에게 갑질을 당한 매장 직원 등이 연이어 증언을 시작했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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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은 몇 안 됐지만 그들을 데리고도 큰 수익을 냈다. 그 중 가장 황금알을 낳았던 이가 이승기다. 알에서 깨자 마자 권진영 대표를 알았던 이승기는 그가 만든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권진영 대표는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니 책임지고 사실관계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내부에서는 “이승기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진 못했다. 그가 키웠지만, 이승기는 이제 그가 가두기엔 너무 커버린 스타가 됐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남은 생을 털어 이승기를 잡겠다던 그의 이름은 이렇게 만천하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