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는 판세를 바꿀 수 있을까

이승기는 어떤 시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량주 같다. 일단 이승기에 마음을 투자한 이들은 그가 무슨 활동을 하든 안심하고 바라볼 수 있다. 예능에서든 드라마에서든, MC일 때든 주연일 때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 이상을 해낸다. 가수 이승기가 부른 '금지된 사랑'은 조회수 1700만 회를 넘겼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영역에서든 예상금액보다 더 높은 가치를 구현한다. 군 입대 전부터 제대 후까지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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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시장이 하락장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맡은 모든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작품과 함께 추락하지는 않았다. 모든 쓴 잔을 홀로 마셔야 하는 주연의 책임은, 그가 그 작품 안에서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보이면 사면된다. 그러니까 연출이 아쉬웠다, 대본이 허술했다 등 외적 요인으로 넘어간다. 그런 연출과 대본을 뚫고도 그가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줄 때 말이다. 

이승기라는 우량주 

이승기의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가진 작품이다. 강점이라면 로맨틱 코미디에 최적화 된 두 배우가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김유리 역을 맡은 이세영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덕임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착시가 들 정도로, 주체적이고 현명한데 사랑스럽기까지 한 인물을 그려낸다. 여기에 전작보다 더욱 완급조절이 능수능란해져, 코믹의 요소도 제대로 살린다.

이승기의 순애보는 이미 검증된 바 있다. 그는 나쁜남자재질보다는 모범생에 가깝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17년 동안 한 사람만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이승기로 인해 더욱 타당성을 얻는다. 거기다 이승기와 이세영은 고교시절부터 대학, 30대의 직장인까지 위화감 없이 연기할 수 있는 드문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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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대로 사랑하라>가 가진 아쉬움이다. 검사 출신의 김정호(이승기)와 변호사인 김유리(이세영)은 전교 1,2등을 다투던 이들인데다 서울법대 CC였다. 이들의 대화는 민법과 형법을 넘나들고,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도 법리에 따른다. 변호사인 김유리가 보지 못하는 면을 검사인 김정호가 보고, 이성적인 김정호가 헤아리지 못하는 면을 따스한 김유리가 보듬는다.

여기에 두 사람의 로맨스가 펼쳐져야 하기 때문에 이세영은 때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그 때마다 이승기가 나타나 그를 구한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로맨스의 클리셰에 법정 드라마의 속도감을 섞어야 하는데 여기서 나타나는 불협은 두 사람의 연기력으로 메운다. 거기다 두 사람의 가문 사이에 얽힌 악연은 둘의, 그러니까 이승기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법정드라마에 대해 보는 눈은 한없이 높아져 있다. ‘우영우의 성공이 그렇고, <왜 오수재인가> <닥터로이어>로 이어지는 법률 드라마의 퀄리티가 그렇다. 이들은 법률을 대할 때 높은 수준의 현실 고증과 입체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법대로 사랑하라>의 사건과 사고는 법정보다는 로카페에 어울린다. 김정호와 김유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이 두 사람과 적당히 연관이 있는 사연에서 사건을 대한다. 그러다보니 개연성은 떨어지고 설득력은 약해진다.

하락장이나 답보장에서도 제 몫을 해내는 이승기 

아동학대나 학폭, 층간소음이나 살인 등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것이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소재와 겹쳐질 때 사건의 무게에는 구멍이 뚫린다. 사랑도 잡고, 사건도 잡고, 로맨스도 코믹도 모두 하려다 보니 각자가 100점을 기록하기보다는 평균 70점의 나쁘지 않은 상태에 머무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이승기는 또 자신의 몫을 해낸다. 백수로서의 한가함, 검사로서의 냉철함, 짝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각자의 맛에 맞게 잘 드러난다. 그러니 제작진으로서는 이승기라는 든든한 카드를 쥔 셈이다. 하락장이나 답보장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승기의 진가는 이번에도 드러났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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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부일체>5년 동안의 여정에서도 이승기는 늘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싱어게인>은 또 어떤가. 단독 MC로서의 역할도 무리 없이 해냈다. <배가본드><마우스>도 큰 탈 없이 마쳤다. 그런데 이런 큰 탈 없음이, 이승기의 롤인 동시에 숙제다. 계단식 상승을 통해 그는 양쪽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였지만, 그 자리에 또 서있다. 우량주가 상한가를 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계속 탈 없는경지에 머무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 그에게 투자한 이들에게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렇다.

<법대로 사랑하라>는 이승기가 얼마나 믿음직한 존재인지는 증명했지만, 그의 자산 가치를 늘려주지는 못한 기분이다. 그는 작품 때문에 침몰하지는 않지만, 그의 존재가 작품 전체를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그건 작품 운일수도, 작품을 보는 눈일수도 있다. 물론 그는 이미 부자고, 황제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춰있어야 할까. 군대 이후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끌었던 <집사부일체>는 이제 휴지기에 들어갔다. 서른 여섯, 왕관의 무게를 아는 이승기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