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내향형, 동생은 외향형 조 남매의 나다운 리더십

조준호  
온화하고 치밀한 내향형 리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과 존슨앤드존슨을 거쳐 1986년 LG에 입사, 최연소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부사장 시절 LG전자 북미법인장으로 북미 휴대전화 사업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LG그룹 본사 대표이사, LG인화원장 등을 거쳤다. 《차이를 만드는 CEO의 생각도구》 《이제 지난 성공의 기억과 이별할 때》에 이어 최근 《내향인 개인주의자 그리고 회사원》을 펴냈다. 

조미진
저돌적이고 친화력 강한 외향형 리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교육공학 석사를 수료했다. 모토로라에서 오랫동안 글로벌 인재 육성을 담당했다. LG디스플레이 HR센터장,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 부원장을 지냈으며,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에게선 바람소리가 난다》 《낀 세대 리더의 반란》을 썼다. 

리더십도 유전일까. 조준호 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과 조미진 전 현대차그룹 전무. 세 살 터울의 남매는 각각 한국 경영계에서 리더십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오빠 조 전 대표는 내향형 리더의 새로운 전형, 조 전 전무는 여성 리더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만하다. 조준호 전 대표는 최연소,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LG전자 입사 24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조미진 전 전무는 당시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깨고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전무가 됐다. 

둘의 기질은 정반대다. 오빠는 극내향형, 동생은 극외향형에 가깝다. 조준호 전 대표는 사교성이 없어서 모임에 잘 나가지 않고, 술을 거의 못 마시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개인주의자다. 반면 조미진 전 전무는 어려서부터 나서는 걸 좋아해 반장과 회장을 도맡아 했고, 우렁찬 목소리로 모임의 대화를 주도하며, 사교성이 좋아 다양한 분야에 인맥이 두텁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나다움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먼저 조 전 대표를 보자. 당시 회사 조직은 집단주의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 회식 참여는 불문율이었고, 음주력과 사교성은 임원 승진을 위한 필수 능력으로 간주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소주 한잔에 곯아떨어지는 그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대표이사에까지 오르자 “어떻게 저런 분이 저 자리에까지”라는 시선이 많았다. 그의 길은 수많은 일터의 내향형 개인주의자들에게 희망의 발자국이 되어주었다. 그는 내향인들에게 이런 등대 같은 언어를 건넨다. 

“자신의 기질을 바꾸려고 무리하게 애쓰기보다 나다움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일의 태도를 만들어가십시오. 세상에 맞춰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미진 전 전무는 한국 여성 리더의 새로운 유형이다. 당시 회사에서 여성급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대개 두 부류였다. 남성성에 가까운 중성적인 캐릭터거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리여리한 캐릭터거나. 대부분의 여성은 이 두 극단의 점이지대에 속했지만, 회사에는 그런 여성 리더가 드물었다. 여성성을 잃지 않으면서 두루 잘 지내는 프로페셔널. 조미진 전 전무는 그런 유형이었다. 화려한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화장하고, 남다른 패션 감각을 뽐내면서 일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나는 회사에서 스스로 여성이라는 의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프로 세계는 동등합니다. 중책을 맡을수록 사람 자체가 보이는 법이거든요.”

두 사람을 조 전 대표의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LG인화원 원장직을 내려놓은 이후 조 전 대표는 일터에서 40여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일에 진심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다 한국 기업에 와서 초반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다르냐?’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어요.

술을 못한다고 하면 ‘처음부터 잘 마시는 사람이 어딨어? 마시다 보면 늘어’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체질에도 안 맞고,

술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도 힘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이후엔 성과로 승부 보기로 했어요. 실력과 성과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조준호)

두 분의 동시 인터뷰는 처음인 걸로 압니다.
조준호 “그렇죠? 얼마 전 책 출간을 계기로 한 유튜브 채널과 동영상 두 꼭지를 찍었어요. 하나는 ‘직장 내 질투에 대처하는 법’, 또 하나는 ‘일 잘하는 법’인데, 전자가 후자보다 조회수가 여섯 배나 많이 나왔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친구들이 일 자체보다 관계 스트레스가 많다는 걸 알았어요. ‘상황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문제에 접근해야 할까’는 제가 평생 회사생활을 하면서 고민한 부분입니다. 이런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어요.”
조미진 “오빠가 인터뷰에 응하면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나란히 나오니 너무 재밌어요. 사전 질문지에 저더러 ‘귀가 큰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 오라버니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하하.” 
조준호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 말을 열심히 경청해주니 집 안에서 푸는 거구나 싶었지.” 

조미진 전무님은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지만, 후배들이 말할 땐 온몸으로 들어주는 분이에요.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부지런히 메모하고요. 경청력은 타고난 건가요?
조미진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은 부분 같아요. 리더십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분이 당시 제 사수였던 모토로라 코리아 던 제롬 사장님이었습니다.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 인재개발) 분야에서 코칭을 잘하려면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경청도 습관이에요. 꾸준히 노력하면 체화됩니다.”
조준호 “경청은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에요.”
조미진 “오빠와 저는 타인을 만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달라요. 저는 6~7시간 정도 쉬지 않고 대화가 가능하거든요. 오빠는 어때요?”
조준호 “최대 두 시간 정도. 그 이상은 좀 힘들어요.”

조준호 대표님은 내향형 개인주의자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직의 최고 자리에 올랐어요. 어떤 ‘전형’에 매몰되거나 ‘과잉사회화’ 되지 않고 자기다움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조준호 “어릴 때부터 누가 권위를 내세우거나 나에게 권위를 부리면 아주 싫었어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되뇌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했고요. 그러다 보니 성격적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조미진 “개인주의자는 남이 나에게 해 끼치는 것도 싫어하지만,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오빠와 저는 닮았어요. 개인주의 성향이 있으면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예전부터 저에 대해 ‘직설적이고 지나치게 진취적이어서 보수적인 한국 기업 문화에 맞지 않는다’라고 한 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런 저의 성향이 오히려 당시 변화가 필요한 기업 문화에 맞았던 것 같아요. 프로처럼 일하면 알아봐주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오빠처럼 권위의식을 싫어해요. 영향력은 추구하지만, 권력욕은 지향하지 않죠. 그래서 사장님이나 수위 아저씨나 대할 때 느낌은 비슷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존중하는 마음이군요. 
조준호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마음을 엽니다. 존중하는 태도는 인간성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강함 같아요. 또 모두를 존중하면 일에서도 유리해요. 조직에서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예전에는 ‘리더=강한 카리스마’를 공식처럼 여겼죠. ‘리더가 되려면 성격을 바꿔야 하나?’라는 고민은 없었나요?
조준호 “왜 없었겠습니까.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다 한국 기업에 와서 초반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다르냐?’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어요. 술을 못한다고 하면 ‘처음부터 잘 마시는 사람이 어딨어? 마시다 보면 늘어’ 식이었습니다. 처음 1~2년 동안엔 어울리려고 노력도 해봤어요. 잘 안되더군요. 체질에도 안 맞고, 술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도 힘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아내는 다시 외국 기업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는데, 저는 성장한 한국 기업에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후엔 성과로 승부 보기로 했죠.”

그 결과 36세가 되던 1995년 최연소 임원(상무보)이 됐습니다.
조준호 “이후에도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임원 승진 동기들이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왔다는 걸 1년 반 후에나 알았어요(웃음). 소위 왕따였죠. 뭐 상관없었습니다.”

원래 관계에 대한 센서가 약했나요, 아니면 자기보호 본능으로 센서를 꺼버린 건가요.
조준호 “후자가 아닐까요. 일정 기간 동안 누구도 부인 못 할 성과를 내자고 다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강박처럼 안고 일했습니다. 실력과 성과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조미진 “오빠는 뚝심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 결단성이 대단합니다.”
조준호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승부라고 여겼어요. 리더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감히 질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박함을 품고, 안 되면 결과에 대해 감수하자는 심정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군인으로 전사하신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아버지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도 아니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뿐이니 모험을 해보자. 이런 마음을 일찌감치 품었어요. 다만 충분히 검증한 후에 질렀습니다. LG 문화는 말이 앞서는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작은 일들을 되는 방향으로 엮어놓은 후 결정적인 순간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해왔습니다.”

‘승부사 기질’ ‘전략가’. 조 대표님을 따라다니는 수식어죠. 조직원들을 어떤 마음으로 이끌었습니까. 
조준호 “진솔함과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직에 위기가 있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면서 구성원과 함께 위기를 돌파하려는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요. 세상에는 요령 좋고 융통성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원칙을 지키면 결정적인 시기에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나요. 그런 사람들은 평소 조용하지만 뒤에서 지지해주죠.”
조미진 “오빠와 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에요. 오빠는 남의 시선이나 반응, 피드백에 별 신경을 안 쓰지만, 저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사회적 민감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받고, 오빠는 뺏기죠.”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결국 조 전무님이 리더십 전문가, HR 전문가가 되는 데 자양분 역할을 했군요. 딱 10년 전에 펴낸 《낀 세대 리더의 반란》은 시대를 앞서간 인사이트가 돋보이는 책이었습니다. 지금은 낀 세대 리더의 애환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조미진 “기성세대, 낀 세대, 젊은 세대는 어느 시대든 있었어요. 다만 전에는 세대 특성의 차가 크지 않아서 이슈가 되지 않았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를 맞닥뜨리게 돼요. 제가 책을 쓴 10년 전엔 윗세대가 386세대, 낀 세대가 X세대, 아랫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였는데, 세 세대의 맥락이 어마어마하게 달랐습니다. 낀 세대인 X세대는 보고 배운 대로의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첫 세대였어요. 상사는 옛 방식대로 모시면서, 아래 구성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끌어야 했죠. 10년 후인 지금은 X세대가 기성세대가 됐고, 밀레니얼 세대가 낀 세대, Z세대가 아랫세대가 됐어요. 2000년대 테크놀로지의 등장 이후 세대 간 유사성 면에서 X세대의 충격만큼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중간에는 낀 세대가 존재할 테고, 낀 세대의 애환 역시 이어지겠죠.”

앞으로 더욱 강조될 리더십 덕목이 있다면요.
조미진 “포용, 포용이 될 것 같아요. 위아래 세대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강점을 살리려면 포용력이 핵심이에요.”

조준호 대표님은요?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필요한 리더십은 뭘까요.
조준호 “한 글로벌 테크기업의 임원교육에 갔을 때 일입니다. 회사의 고민을 물었더니 우리와 반대의 고민을 토로하더군요. 그 회사 임원들은 기술 전문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 관리, 조직 관리보다 자기가 직접 기술적 문제 해결 과정에 뛰어들어 일하기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원천 기술을 보유한 리더가 될 수 있는 거죠. 우리는 반대입니다. 원천 기술을 깊이 아는 리더가 드물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도 직원들이 정리해주는 업데이트 자료를 통해 익히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 보니 문제가 안 풀릴 때 리더의 역할은 예산 지원 정도에 머무를 뿐, 함께 문제로 들어가서 고민하고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비단 테크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앞서가는 리더가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실무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조미진 “HR 분야에서는 그런 리더를 ‘워킹 이그제큐티브(Working Executive)라고 해요.”
조준호 “그런 용어가 있구나.”
조미진 “글로벌 기업의 탁월한 리더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전문성을 구비하고 있어요. 연구개발(R&D) 인재들은 상사가 자기보다 전문성의 깊이가 없으면 존경하지 않죠. 그래서 기술 분야의 인재는 균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직 관리, 경영 관리도 필요하지만, 디테일을 깊이 있게 알아야 문제의 핵심을 푹 찌를 수 있어요.”
조준호 “구글의 초기를 보세요. 기술 인재 네 명이 머리 맞대고 앉아서 결국 지금의 구글을 일궈냈잖아요. 그 사람들이 임원이 되고, 대표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인재가 많이 나올 때가 됐다고 봅니다.”

조준호 전 LG전자 사장·조미진 전 현대자동차 전무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