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년 내에 우주시대 열린다”

김현민
과학과 철학, 예술의 교차점에서 인류의 공존을 모색하는 과학적 인본주의자. 블루오리진 첫 한국인 엔지니어링 시니어 매니저로서 로켓 디자인에서부터 재료, 분석, 공정 및 생산까지 전 공정을 지원하는 재료공정팀을 이끌고 있다.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아티스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예술 생태계를 혁신하고자 아트 플랫폼 스타트업 지원닷아트(G-1.ART)를 창업했다. 차세대 원자력 개념을 연구하는 회사 카이로스파워(Kairos Power) 재료팀에서 근무했으며, 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2021년 6월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은 기후 위기와 관련해 중대 발표를 했다. 기후 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특이점을 건넜고, 빙하기와 혹서기의 패턴이 처음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비상선언이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인류의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상 신호는 오래전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주 탐사 및 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절실함에서 민간 우주 탐사와 발사체 산업이 시작됐다. 2000년대 미국 기업 스페이스엑스와 블루오리진이 민간 우주산업을 본격 열어젖히며 우주 진출 경쟁의 활시위를 쏘아 올렸다.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전액 투자해 창업한 블루오리진. 그곳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한국인, 김현민 시니어 매니저는 미래 인류를 위해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고,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은 어제 완성됐어야 했다고 말한다. 항공우주산업에서는 시간을 매우 소중한 자원으로, 돈을 상대적으로 가치 없는 자원으로 여긴다. 이들은 돈으로 시간을 사서 모든 것을 앞당기려고 한다. 결국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그는 팀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이 책임지고, 성과가 좋은 경우에는 팀원의 공로로 돌린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뢰를 얻기 위해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본인이 발표를 맡고, 일이 잘되어 성과 발표를 할 때는 직급에 상관없이 직접 발표하게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팀원들은 매니저를 신뢰하고 결정을 내리는 이 판이 안전하다고 믿게 된다. 신뢰가 작동하면 결정이 빨라지고 모험을 감행하며 우주로 나아가는 시간을 앞당기게 된다. 

우주시대는 얼마나 남았을까? 김현민 시니어 매니저는 10~15년 정도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테슬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빨리 전기차에 적응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주시대는 이보다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고. 우주기술의 성숙도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므로 우리는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아이들이 우주산업 관련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우주에 간다는 것을 당연한 대전제로 삼고 세상에 나올 거예요.

우리가 우주로 가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이

더 넓은 우주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생각의 출발이 다릅니다.

김현민 시니어 매니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개성,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을 이루는 생각은 대개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은 어떠했나요?
“야구에 빠져 세 살 때부터 야구방망이를 끼고 다녔습니다. 초등학생 때 교장선생님에게 대뜸 찾아가 야구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죠. 교장선생님이 야구부 코치는 누가 해줄 것이냐고 하길래 우리 아버지가 국가대표 야구 선수였다고, 코치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리낌 없이 덤벼들던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하던 열 살 아이에게 매일 줄넘기 목표치를 못 채우면 잠을 안 재울 정도로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어요. 이를 소화했을 때 실제로 더 잘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노력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 뼈에 새겨졌습니다. 어떤 목표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으면 이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쉴 새 없이 노력하고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성장하는 내내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과학고에서의 방황 이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맞닥트린 또 다른 경쟁 상황에 지쳤어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고요. 빨리 졸업하고 취직해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1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복학한 후에 학과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재료물리와 열역학 개념이 매우 흥미로웠고, 특히 금속 분야에 매력을 느꼈어요. 또 하나,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배우면서 제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운 데다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습니다. 1등이 되고 싶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을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저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허세 부리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비뚤어진 승부욕이 패배감을 키웠습니다. 의지박약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면 저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철학과 예술을 접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었습니다.”

철학과 예술이 열패감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줬군요.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고 두려운 감정에 압도됩니다. 생물학적으로 ‘네거티브 피드백’이라고 하는데, 한번 안 좋은 감정에 빠지면 그 상태로 악순환이 반복돼요. 철학자들은 미움, 증오, 두려움 같은 감정이나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서 나타나는 모습을 먼저 고민하고 정의했어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 외로움을 느끼게 돼요. 철학을 공부하면서 외로움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아가며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됐어요. 예술가는 이러한 감정을 공유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제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인 지원닷아트는 이러한 영감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예술과 철학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요.”

과학에서도 철학을 만났다고요?
“금속공학 분야와 현대 철학은 닮은 점이 많아요. 열역학 법칙이나 금속의 결함에서 나타나는 과정이 인간 사회의 모습과 유사한데요. 인간은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선택을 하고 사회의 발전 역시 에너지의 흐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뇌가 발달하는 기작은 일상적으로 소모한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많은 것을 습관 뉴런으로 전환합니다. 예를 들어 젓가락질하거나 숨을 쉬는 것도 습관 뉴런으로 바꿔놓으면 어느 순간 신경 쓰지 않고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이는 우주의 법칙과도 닮아 있어요. 우주에서의 흐름은 계(界)의 에너지를 낮추는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고, 엔트로피 즉 무질서는 증가하게 됩니다. 우주에서 에너지는 낮아지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지만 엔트로피는 늘어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책상 주변을 어지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연의 이치예요(웃음). 정돈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러한 점에서 삶과 죽음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결혼하고 사랑하며 새 생명을 만드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극단으로 낮추는 과정이고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반면에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에너지가 떨어지죠. 이런 관점에서 삶과 죽음, 공존을 해석해보면 어려움은 자연스럽고 우주적인 사실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는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금속에서 결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결함에서 어떠한 매력을 발견했나요?
“금속의 쓰임새, 강도, 연성 등은 모두 결함에 따라 결정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결함을 숨기려고 애쓰거나 메우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요. 결함을 활용해 본인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면 이를 응용할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결함이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나와 어울리는 사람과 함께해야 합니다. 관계를 맺는 것은 마치 금속을 용접하는 것과 같아요. 금속을 붙이는 용접 과정이 금속을 완전히 잘라내는 프로세스의 변형이라면 관계를 맺고 끊는 것도 변화와 변형의 과정이에요. 달리 생각하면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용접처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만큼의 에너지가 관계를 맺는 데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브라운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내고 산업 분야에 도전했습니다. 이력서를 6개월 동안 1200군데에 넣었고, 그중 80곳에서만 답장을 받았다고요? 
“물리학이나 수학 같은 순수학문은 대부분 학계가 훨씬 더 앞서 있지만 재료나 기계 분야는 학계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산업이 선도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활약하는 사람들과 겨뤄보고 싶었고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이는 어릴 적부터 야구를 하면서 단련해온 거예요. 이메일을 1200개 보낸 것도 매일 6~7개씩, 많게는 20~30개씩 약 3개월간 보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죠. 나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구르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어요. 어떤 일이든 잘할 자신이 있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며 도전해왔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전진할 수 있다고 알리고 싶었습니다. 답장은 일주일에 두 개, 운이 좋은 날은 한 개, 대부분 기회가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이었고 인터뷰로 이어진 것은 열 번 정도였어요. 그중 카이로스파워에 합류할 수 있게 됐어요. 결국 1200번 중 한 번 성공한 것입니다. 1000번을 시도하면 한 번은 됩니다.” 

차세대 원자력 개념을 연구하는 회사인 카이로스파워의 경력을 지렛대 삼아 항공우주산업 분야로 커리어를 전환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블루오리진 최초의 한국인 엔지니어링 매니저이자 시니어 매니저가 됐는데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전공 공부를 하면서 재료가 고속 변형 상황에서 어떻게 잘 견디는지에 대해 연구했어요. 무기, 우주항공, 에너지 분야의 재료는 극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버텨야 할 뿐만 아니라 충격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재료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의 끝인 우주산업 분야로 목표를 향하게 됐습니다. 저는 엔지니어로서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즐겼지만, 사실 매니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팀의 매니저 제안을 받았을 때 우주항공 분야 선두에 서 있는 미국에 한국인 리더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했습니다. 누군가 맡아야 한다면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도 제가 그 두려움을 먼저 겪어보고 공유해서 이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양분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운이 좋아 짧은 기간 내에 승진하고 팀이 확장되면서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인재들로 구성된 블루오리진에서 팀원을 어떻게 이끌고 있나요.
“업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이어서 제가 기술적으로 도움을 줄 일은 없었어요. 팀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죠. 다만 이들이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과속방지턱을 제거하고 도로를 잘 닦아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루오리진 최초의 한국인 시니어 매니저 김현민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