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커, 염경엽, 손웅정

리더십은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리더십의 중요성은 나폴레옹이 한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양 떼가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사자 떼보다 낫다.” 

집단의 성공과 실패는 리더의 능력과 역할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리더십은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발휘되는데, 특히 전쟁터나 스포츠계를 보면 리더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일이 많다. 12척의 배로 300척의 대함대를 격파시키는가 하면, 만년 꼴찌팀을 단숨에 우승시키는 경우가 있는 까닭이다. 
최근 스포츠계는 새로운 유형의 리더 출현이 눈에 띈다. 카리스마 강한 리더십이 아니라, 기존 규칙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족적을 남기는 리더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국내외 주목할 만한 스포츠계 리더 세 명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 뉴시스
스티브 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 뉴시스

만년 하위팀을 우승팀으로, 농구감독 스티브 커 
경청의 리더십 - 감독은 컨트롤하는 자리가 아니다


스몰볼(Small Ball)이란 스포츠 용어가 있다. 작은 공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몰볼이란 용어는 야구에서 먼저 썼다. 홈런과 장타보다는 단타와 연속 안타, 번트 등을 위주로 치밀하게 점수를 뽑아내고, 마운드에서는 이를 투수력으로 막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농구에서 스몰볼은 높이와 파워를 자랑하는 정통 포스트 기반의 농구를 탈피해 스피드와 슈팅, 스페이싱(선수 간 간격 및 위치)을 중시하면서 공격을 펼치는 농구를 말한다. 스몰볼은 포스트업 중심의 농구가 ‘3점 슛 중심의 농구’로 변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티브 커는 스몰볼을 극대화해 3점 슛 괴물인 스테판 커리를 NBA 최고 스타로 등극시키고, 만년 하위팀이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네 번(2015·2017·2018·2022)의 우승팀으로 만든 감독이다. 스티브 커의 선수 시절을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함께 뛰면서부터다. 백인인 스티브 커는 운동신경과 스피드 면에서 리그 하위권이었지만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3점 슛과 센스 있는 수비능력이었다. 특히 그의 통산 3점 슛 성공률은 무려 45.4%로 역대 NBA 1위다. 엘리트 운동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한계를 지능적으로 극복한 사례다.

시카고 불스가 1995~96시즌에서 NBA 한 시즌 역대 최다승인 72승을 달성했을 때 스티브 커는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그리고 딱 20년 뒤인 2015~16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시카고 불스의 기록을 깨고 73승을 올렸을 때 그는 워리어스 감독이었다. 

스티브 커 하면 1997년 파이널 6차전의 위닝 샷이 유명하다. 상황은 이랬다. 당시 유타 재즈와 시카고 불스는 종료 28초를 남기고 86 대 86으로 맞서 있었다. 작전타임 때 조던은 커에게 “더블팀이 오면 패스하겠다”고 했고, 커는 “내가 준비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던의 예상대로 그에게 유타 재즈 수비 두 명이 붙었다. 조던은 옆으로 공을 건넸고, 이를 받은 커가 2점 슛을 깨끗하게 성공시켰다. 시카고 불스는 이 득점으로 90 대 86으로 승리, 정상에 올랐다. 스티브 커의 ‘강심장’이 만들어낸 우승이었다. 

스티브 커는 승부처에서 누구보다 차가운 심장과 빠른 판단력을 가졌다. 이는 DNA와 성장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스티브 커는 학자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베이루트아메리칸대학교 교수였고, 아버지 말콤 H. 커 역시 이 학교 출신의 명망 높은 학자이자 총장이었다. 중동 정세에 밝아 관련 책을 여러 권 펴낸 말콤 H. 커는 애석하게도 1984년 1월, 무장테러단체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들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럼에도 커는 다음 날 훈련을 나가서 농구로 아픔을 달랬다고 한다. 

감독으로서 스티브 커는 3점 슛, 스페이싱 등으로 대표되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농구를 완성한 설계자다. 리그 트렌드를 바꿨다는 점에서 ‘혁명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의 장점을 꼽자면 누구와도 어울릴 줄 알고, 모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어스턴트 코치로 활동한 루크 월튼 전 감독의 이야기다. 

“NBA 코칭스태프는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감독이 모든 작전을 만들지 않습니다. 공격, 수비 등을 맡은 코치들은 감독 색깔에 맞게, 선수 구성에 맞게 매 경기 계획을 제출합니다. 감독은 그중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뽑아 경기에 적용합니다. 때문에 코칭스태프끼리 호흡이 맞지 않으면 팀은 결코 잘 돌아갈 수 없어요. 스티브 커는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도자입니다.”

커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는 편이다. 훈련 때 노래를 크게 틀어놓는 등 재미있게 훈련하기를 원한다. 선수들이 활약할 때면 큰 리액션으로 호응해준다. 무엇보다 한 번도 선수 탓을 한 적이 없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감독으로서 커의 시각은 분명하다.

“감독은 뭔가를 컨트롤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 목표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감독의 일입니다. 감독은 끈을 잡아당겨서 모든 플레이를 조종하고 교통정리를 해주는 게 아닙니다. ‘이게 여러분의 팀입니다’라는 말만 하면 됩니다.”

인내의 리더십, 겸손의 리더십, 형님 리더십…. 스티브 커의 리더십에는 가져다 붙일 단어도 많다. 그중에서도 경청의 리더십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염경엽 LG트윈스 감독. © 뉴시스
염경엽 LG트윈스 감독. © 뉴시스

29년 만의 기적, 야구감독 염경엽
원칙의 리더십 - 함께 원칙을 정하고 함께 간다


독이 든 성배(聖杯)도 모자라 그걸 곱빼기로 받아들 리더가 있을까. 한국프로야구 LG트윈스 감독직은 야구인들에게 매력적인 자리지만 “곱빼기 독이 든 성배”라 불리기도 한다. 감독 교체가 잦았기 때문에 LG에는 장수 감독도 없다. 심지어 2022시즌 87승을 거둬 구단 역사상 최다승을 기록한 류지현 감독과도 결별했다. 우승을 못 했기 때문이다. 29년간 우승을 못 해서, 반드시 우승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에 도전하는 리더가 있을까. 그 무모한 도전을 한 이가 있으니, 바로 ‘염갈량’ 염경엽 감독이다. 

염경엽 감독은 일찌감치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다. 하지만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염 감독이 LG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목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염경엽 감독의 취임사는 비장했다. 누구나 꿈꾸는 자리인 동시에 너무나 부담스러웠지만 염 감독은 준비된 리더였다. 쉬는 동안 감독으로서 실패했던 경험을 되짚어보며 바꿔야 할 부분을 개선해나갔다. 2020년 SSG 랜더스 감독 당시 스트레스로 쓰러지기까지 했던 아픔이 있기에 더 절제하며 자기 관리에 힘썼다. 가족을 위해 집에선 야구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 생활방식까지 바꿨다.

염경엽 감독은 LG트윈스에 부족했던 디테일과 과감함을 불어넣기 위해 시즌 전부터 공격적인 주루를 강조했다. 실패도 많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노 피어(No Fear)’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려움 없는 자신감. 결국 LG트윈스는 29년 만에 2023 한국시리즈 우승의 염원을 풀었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Moneyball)〉이란 영화가 있다. 199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으로 부임한 빌리 빈은 당시로선 독특한 방식으로 선수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했다. 타자의 경우 기량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었던 타율·타점 대신 출루율·장타율 등에 주목했고, 볼넷을 얻거나 희생타를 치는 능력 등도 고려했다. 

염 감독은 빌리 빈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통계를 분석한 국내 첫 지도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카우트 시절 쌓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네트워크를 통해 자료를 구하는 대로 번역해 책으로 만들었다. 1998년부터 매년 이를 저장하고 요약하고 파쇄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요즘엔 서재에 있던 자료를 모바일로 볼 수 있게 변환해 휴대전화, 태블릿 PC로 어디서든 활용한다. 염 감독의 이야기다. 

“(운영팀장, 단장, 스카우트, 해설위원, KBO 기술위원장 등 그간 거쳐 온) 직책이 아니라 단장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공부한 게 나중에 감독이 돼서도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감독으로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겁니다. 현대 시절에는 육성팀장, 운영팀장, 스카우트팀장, 기획팀장 네 가지 보직을 다 했는데, 미국 매뉴얼을 우리 식으로 바꾸고, ‘염경엽식’으로 변용하면서 나만의 야구를 정립할 수 있었어요.”

이전까지 한국 야구인들은 통계 분석에 비판적이었다. 자신의 ‘감(感)’을 믿는 지도자가 많았다. 그러나 염 감독은 숫자를 신뢰했다. 

“저는 50 대 50으로 활용합니다. 50%는 통계, 50%는 그날의 컨디션, 흐름, 촉입니다. 통계가 절대적이라면 빌리 빈이 늘 우승해야 합니다(웃음). 얼마나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느냐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특히 KBO 리그는 감독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가 커집니다. 물론 감독의 WAR가 숫자로 잡히진 않지만, 미국이나 일본 야구에 비해 한국에선 감독이 더 중요한 핵심입니다.”

조성관 작가는 “내가 30년 기자 생활에서 취재원으로 만난 사람 중 최고의 메모광은 LG트윈스 염경엽 감독”이라고 했다. 색다른 시각으로 통계를 공부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염 감독 리더십의 뿌리란 이야기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원칙이 있습니다. 시즌 전에 모든 것을 그 원칙 안에 집어넣죠. 이 원칙을 어겼을 때는 야구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선배든, 2군 선수든 다 똑같이 한다고 했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싫어하죠. 원칙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정해야 합니다.”
 

축구선수 손흥민을 직접 지도한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 연합뉴스
축구선수 손흥민을 직접 지도한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 연합뉴스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감독
솔선수범 리더십 - 말만 하면 힘이 없다

쌍둥이 육아에 한창인 필자의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축구선수 손흥민을 직접 지도한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의 말이었다. 

“부모라면 배고픔, 불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배웁니다.”

손 감독은 인터뷰에서 “부모는 TV 보고 휴대폰 보면서 자식에게는 공부하라고 하면 되겠느냐”고 했다.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휴대폰 보게 하는 것은 결국 부모가 편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교권 추락, 청소년 사건 사고도 모두 부모 탓이라고 덧붙였다. 몸이 힘들 때면 아이들에게 짜증 내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손웅정 감독이 아들 손흥민을 세계 최고 리그인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으로 만들기까지는 그만의 리더십이 있었다. 손 감독이 강조한 것은 솔선수범이었다. 손흥민은 “슛을 하루 1000개 찰 때 아버지도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시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손웅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킬 때도 함께한다. 그는 몇 해 전 쓴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나는 부족한 아비일지언정 아이들에게 노력하고 책 읽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축구를 가르치면서 나는 아이들보다 몸을 적게 쓴 적이 없다. 아이들이 뛰는 것보다 더 뛰었고, 더 많은 땀도 흘렸다. 내가 입으로만 시키고 말로만 지도한다면, 아이들도 지칠 텐데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 선수와 같은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전 부모의 ‘모범’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만 대물림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의 성실함도 대물림된다고 봅니다.”

손 감독이 실력보다 강조하는 것은 예의다. 손흥민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늘 따뜻한 선수로 통하는데, 그 배경엔 아버지의 철학이 있다. 

“재능이 성품을 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살면서 하는 실패는 우리가 열심히 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데 인성에서의 실패는 패자부활전이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토트넘 선수 제임스 매디슨은 ‘캡틴’ 손흥민의 주장으로서 품격과 인성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쏘니는 사람들을 정말 기분 좋게 만들어줍니다. 주장으로서 그는 매우 훌륭합니다. 성격이 대담하고, 큰 선수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순간엔 반드시 살아나 팀을 위해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런 리더십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하든 선수들이 그를 존경합니다.”

손웅정 감독의 리더십 특징 중엔 배수진도 있다. 그는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스물여덟 살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에서 헬스트레이너를 하고, 그것으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그 외에도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축구선수 시절 별명이 ‘숙소귀신’ ‘연습벌레’였다. 다른 친구들이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그는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 휴식에만 매진했다. 

“몸뚱이 하나에 의지해 오직 축구만 생각하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저는 삶의 배수진을 치고 살았지요. 단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손 감독은 팀을 유명 리그에서 우승시켜본 적은 없지만, 손흥민이라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를 키워냈다. 그는 현재 제2, 제3의 손흥민을 키우기 위해 유소년 육성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