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든 공감을 왜 하느냐고요? 나를 확장시키고 성장시키니까요”

정용실
1991년 kbs 공채 18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29년째 근무하면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주부, 세상을 말하다〉 〈한국 한국인〉 등을 진행했으며,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정용실, 윤지영 아나운서의 만만한 요리〉를 선보였고,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용실의 공감수업〉을 서비스 중이다. 《혼자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기》 《서른, 진실하게 아름답게》 《공감의 언어》 등의 책을 냈다. 성장하는 아나운서로 정평이 나 있으며, 아나운서계의 롤모델로 꼽힌다.
공감과 배려가 이란성 쌍둥이라면, 예민함과 편안함은 배타적 성정이다. 촉수가 예민한 사람은 대개 주변인을 피곤하게 한다. 타인의 사소한 기분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공감력의 소유자들은 본인도 진이 빠지고 주변 사람도 달달 볶을 확률이 크다. 공감도 잘하면서, 자기 자신도 지키면서, 주변인들에게도 편안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정용실(49) 아나운서의 화두는 이 지점에서 솟아났다. 지난해 《공감의 언어》로 ‘공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정용실 아나운서. 그에게 ‘공감’은 《공감의 시대》를 쓴 제레미 리프킨의 그것처럼 거룩하거나 거대한 담론이 아니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끙끙 앓다가 우연히 만난 화두였다.

‘공부하는 아나운서’ ‘책 읽는 아나운서’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는 공감 공부를 파고들었고, 공감 이론과 경험을 녹여 온몸으로 책을 썼다. 자기 언어로 써 내려간 《공감의 언어》는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공감 결핍의 시대, 타인과의 진심 어린 소통에 목마른 이들은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강연장을 찾아다니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용실의 공감 수업’을 듣는다.

정용실 아나운서를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기대대로 책들이 거실과 방마다 그득했다. 집 안 곳곳은 정갈하되 꾸미지 않아 수수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그의 진행 방식을 꼭 닮아 있었다. 반려견 마티즈 마롱이도 인터뷰 내내 동석했다. 그의 공감력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개에게도 통한 듯하다. 마롱이의 눈빛만 보고도 기막히게 요구 사항을 읽어내 두 시간의 인터뷰 내내 마롱이가 짖을 일이 없었다.


‘공감’이라는 화두와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2009년 미국 연수 때였어요. 한 매체로부터 ‘리더의 스피치’ 강연 요청을 받고 리더의 언어에 대해 공부했죠. 그러다 ‘공감(empathy)’ 개념을 만났어요. 동정(sympathy)이 아니라 공감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눈이 커졌죠. 확 꽂혔어요. 원래부터 관심 많았고 내 안에 잠재돼 있던 개념을 언어로 만난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공감 공부를 시작했어요.”


책에는 집필에 3년 걸렸다고 하셨는데요.

“본격 집필 기간만 3년이고, 공부 기간까지 합하면 10년이에요.”


누군가와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건 어떤 경지입니까.

“몰입의 상태와 같아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몰입. 별 관심 없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 시간 낭비예요. 대화에 깊이 몰입하면 깨달을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마라토너의 ‘러너스 하이’처럼요. 힘들지만 엄청난 행복감을 느낍니다. 미국 가기 전에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공감 공부를 하면서 많이 치유됐어요.”


지치고 힘든 건, 공감 과잉으로 인한 피로감이었나요.

“그게 크죠. 공감 공부를 하면서 내가 굉장히 센서티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촉도 많고, 안테나도 많다 보니 피곤한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저를 쿨한 사람으로 알아요. 겉으로 표현을 안 하니 그렇게 보인 거죠.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표현만 안 할 뿐 속으로 다 담아뒀죠.”


왜 표현을 안 하셨어요?

“일종의 배려죠. 일일이 표현하면 상대가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어요. 스스로 피곤한 사람이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남달랐으니까.”


공부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봤군요.

“맞아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감 공부를 시작했지, 대단한 인류애를 가지고 한 게 아니에요. 하다 보니 남도 도울 수 있게 된 거죠. 내 삶과 민첩한 문제를 파고든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생각해요. 공부하면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과거에는 감추려고 했던 부분을 지금은 많이 표현해요. 까다롭고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걸 내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거죠. 민감함에는 양면성이 있잖아요. 《센서티브(Highly sensitive people)》를 읽으며 센서티브가 축복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내 자신이 센서티브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공감에 에너지가 덜 드나요.

“그건 아니에요. 센서티브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해요. 안테나가 예민해서 너무 많이 사용하면 그다음 날엔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합니다. 깊은 소통의 반대는 얕은 소통이 아니에요. 침묵이죠.”


《공감의 언어》에 이어령 교수님과의 인터뷰 에피소드가 나오죠. 딸 이민아 목사를 잃은 슬픔에 너무 깊이 공감해서 사흘 내내 우셨다고요.
그렇게 힘든 공감을 왜 하려 합니까.


“그때의 공감은 굉장한 행복감이에요. 그 사람을 그렇게 깊이 이해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되면, 내 삶이 확장되는 걸 느껴요. 고통 속에서 내가 커지는 거죠. 공감은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열쇠예요.”


타인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감 과잉이 힘들어서 아예 깊은 대화를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공감 과잉은 힘든 게 맞아요. 그런데 성장시키는 건 원래 아픈 거예요. 힘든 과정을 거쳐야 성장할 수 있어요. 고통 없는 성장은 없어요. 편안하면서 성장하길 바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아요. 제 경우 공감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며 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안이 확장되는 걸 느껴요. 그러면서 더 행복해지죠. 공감 대화를 한 후 지치고 힘들면 쉬면 돼요. 그래서 저는 저녁 약속이 거의 없어요.”


나를 공부하면서 정용실 사용법을 알게 된 거군요. 과거엔 안 그러셨어요?

“그래서 힘들었죠. 찾는 사람은 너무 많고, 다 따라다니면서 지치고 힘들었어요. 에너지가 소진돼 짜증도 났고요. 몸이 곯았어요.”


공감력은 타고나는 줄 알았는데, 책에서는 교육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맞아요. 입사 초기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지금 가지고 계신 공감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가 훈련으로 채워진 겁니까.

“거의 다요. 원래 나는 내 중심적인 사람이었어요. 세상의 중심이 내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내 중심에 있지 않아요. 오랜 동안 훈련을 통해 다져졌어요. 중심을 나에 두면 대화가 안 돼요. 그런 사람과 대화하면 답답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남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성장하지 못해요.”


중심이 밖에 있는 지금의 삶, 어떻게 달라졌나요.

“훨씬 풍요로워졌죠. 자기중심적일 때는 붕 떠 있는 느낌이고 불안했어요. 지금은 편안하고 안정적이에요. 밖에서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내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요. 지금은 나에게 뭐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아니까요.”


공감의 언어라는 건 결국, ‘말하기의 기술’이 아니라 ‘경청의 힘’이라고 했지요.

“상대와 공감 대화를 하려면 매번 주파수를 맞춰야 해요. 사람마다 주파수가 다 달라요. 내가 93.9라면, 이 사람은 91.9, 저 사람은 89.1이에요.(웃음) 맞춰야 대화가 돼요.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이 주파수가 맞나?’ ‘아닌가, 저 주파수인가?’ 하면서 이리저리 맞춰보죠. 미로 찾기와 같아요. 원래 인간은 다 다른 존재잖아요. 똑같은 제도 안에 두고 똑같은 교육을 받으니 똑같은 줄 아는데, 아니에요. 다 다르죠.”


책을 얼마나 많이 읽습니까.

“일주일에 한 권 정도요. 많은 책을 얕게 읽는 것보다 한 권을 깊게 읽는 편이에요. 몰입 독서의 과정이 있어야 행복해요. 그래서 책이 엄청 지저분해져요. 줄도 치고, 생각난 대로 메모도 하고. 도저히 남에게 빌려줄 수가 없어요.(웃음) 두 번, 세 번 읽는 책도 많고요.”


정 아나운서에게 독서는 뭔가요.

“방송이나 일반인들을 만나면서 나를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겠어요. 책은 나를 성장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자 방법이에요. 내가 살아온 영역과 전혀 다른 낯선 환경을 간접 경험하면서 공감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예전의 저는 인터뷰를 잘하는 아나운서가 아니었어요. 책을 통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죠. 인터뷰는 굉장히 어려운 행위예요.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죠.”


공감 콘텐츠가 이렇게 소구력을 가질 것이라 예상했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교보문고 북모닝CEO를 4년째 하다 보니 트렌드가 읽혔죠.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보니 트렌드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몇 년 전부터 혼자, 외로움, 고독이라는 화두가 도드라지는 게 보였어요. 곧 사라지겠지 했는데, 계속 이어지더니 ‘초솔로’라는 말까지 등장했잖아요. 사라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이렇게 연결이 많은데 왜 외로울까’를 생각해봤어요. 얕은 관계고, 얕은 소통이니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깊은 소통, 깊은 공감이 필요한 시대라는 결론이 나오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공감을 주고받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공감은 일시적이에요. 이야기를 할 데가 없으니 그곳에라도 털어놓는 거죠. 진정한 공감은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서로 간의 신뢰 관계가 형성돼야 가능해요. 그 안에는 공감뿐 아니라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있어요.”


세대 간 불통이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여성가족부에서 시작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할 기회가 많았어요. 이제까지 60명 정도의 멘티를 만났죠. 그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가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 세대에서 무엇을 더 해주려 하기보다 내 욕심을 줄이는 게 먼저라고 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제 세대 사람들에게 많이 해줍니다. ‘386세대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우리도 이미 기성세대다. 우리가 노욕을 부리면 아래 세대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요.”


욕심을 줄인다니요.

“내려놓으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몇 가지 삶의 원칙을 정했죠. ‘후배를 치고 들어가지 않겠다’ ‘새로운 분야로 나간다’ 등.”


그래서 유튜브 채널 〈정용실, 윤지영 아나운서의 만만한 요리〉,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용실의 오늘은 공감수업〉같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거군요.

“좋게 보면 도전이고, 저로서는 후배들에게 선을 지킨 거예요.”


구상 중인 다음 책이 있나요.

“쓰고 싶은 책은 있는데, 아직 확! 오는 건 없어요. 확! 오는 게 있어야 쓰는 과정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거든요. 최근엔 30대 남성들을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대형 서점 초청 강연에 가보면, 청중의 반이 남자고, 대부분 30대예요. 오디오클립의 남성 독자도 거의 30대고요.”


의외입니다. 30대 남성이 공감에 관심이 많다니.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힘들다는 거죠. 회사에서는 4050 상사한테 치이고, 집에서는 부인이 안 받아줘요. 남녀평등이 중요한 세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의지할 데가 없는 거죠.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문제가 보이고 해결도 되는데, 남성들은 공감 대화를 잘 못하잖아요. 술을 먹어야 속을 꺼내 보이는 남자도 많고. 문화에 따라 대화 문화도 달라지는데, 18세기 빅토리아 시대가 대화의 전성기였어요. 살롱 문화가 유행하면서 차 한잔을 두고 온갖 담론을 주고받았죠. 그러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실용성이 없다면서 대화가 천대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요즘 살롱 문화가 부활하는 조짐이 보여요.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많아지는 걸 보면 희망적이에요. 면대면 소통이 많아지는 거니까. 살기 좋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거라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겨울 초저녁은 벌써 어둑신했다. 물리적 온도는 올 때보다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푸근함과 따뜻함이 감돌았다. 그의 책 《공감의 언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따스함, 이것은 대화의 시작뿐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중요하다. 따뜻함은 사람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부를 녹여내는 용광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연히 타인의 말 속에서 이 ‘따스함’을 마주하고 나면 온몸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