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를 포기해 멸종한 도도새를 아시나요?

김선우
1988년생.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1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가나아트센터, OKNP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장욱진미술관, 하이트컬렉션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도도새 화가’로 불리며 2030세대의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에세이집 《랑데부》를 냈다.


아프리카 남동부 인도양의 작고 아름다운 섬 모리셔스에 살았던 도도새.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다 날개가 퇴화해버린 새는 그 섬에 들어선 인간에 의해 결국 멸종되었다. 김선우 작가는 17세기 지구에서 사라진 도도새를 되살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30대 중반인 그는 인기 작가다. 작품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가 2021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 1500만 원에 낙찰됐고, 2023년 4월 화랑미술제에 나온 판화 80점은 오픈 직후 10분 만에 완판됐다. NFT(대체불가능토큰) 작품도 내놓을 때마다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불가리, 스타벅스, LG전자, 한국도자기 등 여러 기업과 협업하면서 가방, 텀블러, 머그, 공기청정기, 접시 등에도 그의 작품이 담겼다. 명품 브랜드 불가리는 전 세계에서 선정한 세 명의 작가와 협업한 가방을 선보였는데, 이 중 김선우 작가의 작품이 담긴 가방이 가장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올 초 에세이집 《랑데부》를 펴낸 김선우 작가를 서울 평창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 인스타그램, 작가 홈페이지, 계간 디지털 잡지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동시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그가 글로 전하는 메시지는 작품만큼이나 선명한 울림을 안긴다. 에세이집에는 그가 불안과 두려움을 딛고 작가로 성장해온 과정, 그 여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막한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은 그의 메시지에 마음을 포갠다. 

서울 평창동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 ‘스튜디오 도도’라는 명패가 달린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꼭대기에 가까워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업실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독한 상태에서 오롯이 작업에 집중하기 좋아 보였다. 작가는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그곳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일상을 신념처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그를 ‘예술 공무원’이라고 놀리기도 한다지만, 그런 일상이 그가 작가로 살아가는 힘, 꿈을 이뤄가는 힘이 아닌가 싶었다. 작업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캔버스에서 춤에 취한 듯한 도도새들이 반긴다. 강릉시립미술관에서 7월 말부터 3개월 동안 열리는 개인전에 선보일 작품이라고 했다. 갤러리가 아닌 공공 미술관에서 갖는 전시는 처음이라 그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 130x162cm, gouache on canvas, 2019
〈모리셔스 섬의 일요일 오후〉, 130x162cm, gouache on canvas, 2019

 

모리셔스에서 도도새를 찾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분분했어요.

도도새의 운명을 생각하며 부서질지언정

망망대해로 나가겠다고 최면을 걸듯 되뇌었지만,

과연 제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명료한 답을 찾는 데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답이 없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전시 때마다 관람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 7월에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춤’이에요. 제가 춤을 잘 추지 못하거든요. 초등학교 때 알았죠. 다른 친구들과 달리 스텝이 자꾸 꼬이고 어긋났어요. 중·고등학생 때도 늘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어요. 중학교 다니다가 서울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로 이사했는데,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춤에 취해 있는 도도새를 통해 각자의 리듬을 찾아 자신만의 스텝으로 춤을 추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도도새들의 군무를 보니 정말 그렇군요. 제각각 자신의 춤을 추면서 행복해하는데, 그게 또 어우러져 조화를 이룹니다. 작가의 이상향, 우리 모두의 이상향을 보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는 언제 어떻게 도도새를 만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 중 새를 가장 좋아했고, 미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내내 새를 그렸습니다. 인간의 몸에 독수리나 부엉이 머리를 가진 ‘새 인간’을 그렸죠. 날개를 잃고 인간의 몸속에 갇힌 새 인간을 통해 갑갑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014년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전시 제목도 ‘새(鳥)상’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일현미술관이 예술가 지망생의 해외여행을 후원하는 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들 앞에서 이미 멸종한 도도새를 찾아 헤맨다는 허무맹랑해 보이는 계획을 피력했는데, 놀랍게도 뽑아주셨어요. 덕분에 2015년 여름 한 달 동안 모리셔스 섬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왜 도도새였나요?
“공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도도새에 대해 알게 됐어요.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모리셔스 섬에 발을 디딘 포르투갈 선원들이 그 새를 처음 발견한 후 ‘바보’라는 뜻으로 ‘도도’라는 이름을 붙였대요. 날지 못하는 새여서 쉽게 잡아먹었고요. 맛도 없었다고 하는데…. 저는 이 비극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현실과 타협하느라 점점 날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에 무작정 자신을 맞추다 자기 고유의 가치나 꿈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Pilgrims〉, 145.5x112cm, gouache on canvas, 2023
〈Pilgrims〉, 145.5x112cm, gouache on canvas, 2023
〈Lily, Flower, Dance, Dodo〉, 163x130cm, gouache on canvas, 2024
〈Lily, Flower, Dance, Dodo〉, 163x130cm, gouache on canvas, 2024


정작 모리셔스 섬에 가니 어땠나요? 보이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꽤 의미심장했을 것 같아요.
“막상 뽑히고 나니 조금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오래전에 확실히 사라진 존재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결과물을 만들어 발표해야 했으니까요. 2015년 여름 한 달 동안 모리셔스에서 지내며 도도새의 흔적을 찾아다녔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도도새에 대해 묻고, 도도새의 뼈를 보려고 자연사박물관을 찾았어요. ‘어딘가에 한 마리는 남아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섬 여기저기 밀림을 누비기까지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린아이 키만큼 크고 힘 있던 도도새가 왜 멸종했는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우리 인간도 작은 섬에 갇혀 나는 법을 잊어버린 도도새 같은 존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도도새의 운명을 떠올리며 차라리 부서질지언정 망망대해로 나가겠다고 최면을 걸듯 되뇌었지만, 과연 제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리셔스에서 도도새를 찾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분분했어요.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면서도 명료한 답을 찾는 데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답이 없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정답이 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저만의 방법, 답을 찾아나가고 있죠.” 

이후 도도새를 주제로 계속 작업을 해왔고, 도도새 작가로 불리게 됐잖아요? 멸종된 도도새가 김선우 작가를 만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진화하는 느낌이에요. 작가도 도도새와 함께 성장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리셔스에서 가진 생각을 바탕으로 꾸준히 작업을 펼쳐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됐죠. 단체전이나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열고,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 작가로 선정돼 뉴욕, 도쿄, 런던, 파리 등에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평면과 입체를 병행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개인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공감과 위로, 때로는 강력하게 연대하도록 용기를 주는 작품을 창작하고 싶어요. ‘작품을 보는 분들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제 작품을 감상하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작품 속 이야기가 그분들의 마음에 온전히 가 닿은 것 같아서 뿌듯하죠.”

화가 김선우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