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채희 인턴기자(연세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꽃과 함께 피어나는 제2의 인생

어느덧 꽃피는 봄이 왔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냈기에, 우리는 싱그러운 3월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인생도 자연의 섭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거듭되는 실패의 아픔을 이겨낸다면 찬란한 ‘봄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이들의 손을 잡고 따뜻한 봄으로 나아가는 그곳, 바로 ‘꽃 그리다 봄’이다.
젊은이들의 자활 사업

‘꽃 그리다 봄’은 온·오프라인으로 꽃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그러나 보통의 꽃집들과 달리 온라인 판매에 중점을 둔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데 드는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등을 줄여 좋은 품질의 꽃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청담동 유명 플라워 숍에서 일하던 플로리스트들을 영입해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꽃다발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꽃 그리다 봄을 운영하는 ‘에덴그리닝’의 양순모(29) 대표가 세운 전략들이다.

에덴그리닝은 소외계층이나 인생에서 큰 실패를 겪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양 대표는 원래 아프리카 현지 NGO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13년 6월 아프리카행 비행기 티켓까지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실전 비즈니스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연세대 재학 시절, 사회적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아리 ‘인액터스’ 활동을 함께 한 친구들과 에덴그리닝을 창업했다.

“대학생 때 필리핀으로 의료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어요. 컴퓨터는 물론이고 차도 없어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곳이었는데도 현지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뭔가 더 베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NGO 활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비즈니스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에덴그리닝을 만들었습니다.”

양 대표의 첫 사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양 대표는 “사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쌓은 이후에 아프리카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양 대표는 국제적 어젠다를 다루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국제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다 탈북민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양 대표는 탈북민들을 오랫동안 지원해온 멘토들에게 탈북 청년들을 추천받았고, 그들과 함께 도심 녹화 사업을 진행했다. 집단농장 체제에서 자라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탈북 청년들에게 적합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탈북 청년들은 한국 사회에 관심이 많아요. 이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친구들이에요. 봉사 활동도 좋아하고요.”

양 대표는 탈북 청년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탈북 청년들은 ‘동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양 대표는 또래의 청년들을 돕고 있다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에덴그리닝은 이들을 동등한 위치의 동업자로 바라봤다. 탈북민 자립 지원 기업이라는 정체성도 외부로 노출하지 않았다.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한 1년 반

도심 녹화 사업은 각종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우수한 기술력이 중요한 분야다. 양 대표는 에덴그리닝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과 도심 녹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에덴그리닝의 우수한 마케팅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던 중,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연락이 왔다. 그들은 ‘초도 지원금을 제공할 테니 쪽방촌 주민의 자활을 돕는 꽃 관련 사업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에덴그리닝이 상품 판매, 디자인 등 사업 전반을 관리해온 ‘꽃 피우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현대엔지니어링, 남대문지역상담센터, 중구청과 공동으로 운영했어요. 쪽방촌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미니 꽃다발, 화분 등을 만들고 직접 배달까지 하면서 수익을 만드는 구조였어요.”

보통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자활 프로그램은 1년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 자활 대상자들은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거나 예전의 어려운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꽃 피우다는 이런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커리어의 연속성을 보장해주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임대주택 등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4년 7월에 문을 연 꽃 피우다의 첫 달 수입은 100만 원에 불과했지만 양 대표와 그의 동료들은 활발한 SNS 마케팅을 펼쳤다. 대기업의 행사 답례품을 제작하고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을 온라인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월수입을 2000만 원까지 늘렸다. 그러나 양 대표는 이 기간 동안 쪽방촌 주민 직원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다. 일부 직원들이 술을 먹고 무단결근하는 문제는 양 대표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 일으키는 문제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양 대표는 그들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었다.

“쪽방촌 주민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짜 친구’가 되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원들이 왜 힘들어하는지를 항상 파악하면서 최대한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직원 중 한 명이 저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여관방에서 술만 마셨는데 이제는 삶의 활력이 생겼다는 그분의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새로운 시작, 꽃 그리다 봄

양 대표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브랜드 꽃 그리다 봄을 런칭했다. 소셜 벤처 ‘마리몬드’와 협업을 진행하기 위해 마리몬드가 있는 성수동으로 사업 공간을 옮겼다. 꽃 그리다 봄은 마리몬드와 함께 ‘마리테이블’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디퓨저, 꽃다발, 팔찌 등의 DIY 키트* 제작법을 유튜브에 비디오 클립으로 올려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재료가 되는 키트를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그램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동시에 키트 제작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꽃 피우다에서 함께 일했던 두 명의 쪽방촌 주민들도 꽃 그리다 봄에 합류할 예정이다.

“수익성 추구를 통해 더 많은 분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꽃 피우다는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었어요. 기본적으로 자활 대상자의 교육을 우선시하니까요. 그래서 꽃 피우다에서 독립해 꽃 그리다 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다’에는 ‘그리워하다’라는 뜻도 있다. 봄을 그리워하는 꽃처럼 ‘인생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가 꽃 그리다 봄이다. 양 대표는 쪽방촌 주민들뿐 아니라 실패를 겪었지만 꽃과 함께 새로운 봄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의 자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양 대표가 창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추구해온 단 하나의 가치는 ‘자립’이다. 그는 내년까지 꽃 그리다 봄을 통해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직원을 열 명 이상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꽃 그리다 봄에서 대한민국의 평균 연봉을 받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사업 초기 단계라 직원들 모두가 고생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겨우 퇴근했어요(웃음). 빨리 성장해서 직원들이 좀 더 편하게 일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DIY 키트: do it yourself(DIY) kit의 약어로 혼자서도 제작할 수 있는 조립용 세트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