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바꾼다, 당신의 이야기로

구 범 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만들고 키운 사람.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CBS 21기 PD가 됐다. 〈세바시〉 CEO이자 PD이고, 〈세바시〉 대학 총장으로도 불린다. 최근에는 ‘커뮤니티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에서 누구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배움 공동체 ‘세바시랜드’를 론칭했다. 

 

저는 낙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오히려 비관론자에 가깝죠.

대신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걸 저는 ‘자기 신뢰’라고 불러요.

낙관은 막연하게 ‘잘될 거야’라는 마음이라면,

자기 신뢰는 ‘안 될 것 같지만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죠.

저는 재산도 많지 않고 성공한 경험도 없었지만

‘나는 해낼 수 있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장 마인드셋이에요. 

이름이 곧 브랜드인 사람들이 있다. ‘이게 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되게 하는 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을 만든 구범준 대표 PD도 그런 사람이다. 〈세바시〉는 구범준 PD가 만든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기획과 연사 섭외, 강연 코치와 인터뷰 진행, 콘텐츠 홍보, 회사 경영에 프로젝트 수주까지 거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미디어 환경 격변의 시대, 한 명의 PD가 가진 역량이 한 매체의 외형을 얼마나 키워갈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는 인물이다. ‘구범준의 〈세바시〉’는 이제 한 쌍으로 불리는 브랜드가 됐다. 한국형 강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키워서 ‘온라인 인생학교’로 우뚝 세운.

그 인생학교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세바시〉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2011년 5월에 시작, 연사들이 건네는 이야기는 차곡차곡 쌓여 2200여 개의 이야기 탑이 됐다. 누군가는 전문지식을 전하고, 누군가는 다가올 미래를 전망하고, 또 누군가는 위로를 건네지만 모두 하나로 수렴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2200여 개의 이야기는 제각각 특별하다.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 이야기들의 탑은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정답 없는 인생의 참고서적이 되어준다.

지난 11년간 〈세바시〉는 숱한 사람들을 구해냈다. 자살 직전 청소년들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는가 하면, 삶의 의미를 잃어 갈팡질팡하는 이에게 방향타가 되어주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토록 힘이 세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 또한 지나가겠구나’라는 연대감은 마음을 일으켜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이국종 교수의 강연은 '이국종 지원법'으로 불리는 권역외상센터 지원법 발의의 큰 계기가 됐고,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 119 안전센터장의 강연은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 형성에 기여해 결국 소방관의 국가직을 이끌어냈다. 〈세바시〉는 그야말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돌아보니 행복》. 〈세바시〉 대학 글쓰기 전공생 25인의 글을 모아 엮어낸 책이다. “돌아보니 행복”이라니, 곱씹을수록 〈세바시〉다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울퉁불퉁한 삶의 질곡을 겪어낸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인생의 소박하지만 강렬한 진리. 구범준 〈세바시〉 대표 PD는 이 책을 내면서 “상처도, 고통도 결국 긍정해야 하는 삶의 무게”라고 적었다.

그를 양천구 목동에 있는 CBS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표이사 사무실에 들어서자 칠판을 연상시키는 진초록색 벽 한가운데 ‘세상을 바꾸는 15분’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 문구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고 했다. ‘세바시’도 그가 지은 이름이다.

 

어떤 직함이 편한가요. 명함에 기재된 ‘대표 PD’라는 직함은 처음 봤습니다.
마치 ‘대표 기자’ 같은 표현입니다만.

“제가 만든 호칭이에요. PD이면서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으니까요. ‘대표 PD’라고 한 건 PD는 자신 있으나 대표이사를 내세우기 두려운 심리도 있어요. 잘하는 역할로 불리고 싶은 거죠. 직원이 스물다섯 명이니 그만큼 책임이 무겁습니다.”

구 PD의 역할을 보니 경이로워요. 한 사람이 저 많은 걸 다 해내는 게 가능할까, 싶더군요. 번아웃이 온 적은 없었는지요.
“번아웃은 일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에 생기잖아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저는 성취형 인간 같습니다. 상상하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면 거기에서 희열을 느껴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대부분은 실패로 이어지지만.”

실패라니요. 〈세바시〉를 번듯하게 성공시켰고, 세바시대학, 세바시랜드를 시작한 데다가 북클럽 운영, 다큐 시리즈 ‘베러 투게더(Better Together)’ 등 이미 많은 성취를 이뤘는데요.
“그 성취는 시도의 일부에 불과해요. 시도한 것들이 다 성공했으면 아마 우리가 우아한형제들만큼 커졌을 겁니다(웃음).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낙담하지는 않아요. 실패 경험이 앞으로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뭔가를 시도할 때 스스로 ‘나는 잘할 수 있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읽었어요.
“저는 낙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오히려 비관론자에 가깝죠. 대신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걸 저는 ‘자기 신뢰’라고 불러요. 낙관은 막연하게 ‘잘될 거야’라는 마음이라면, 자기 신뢰는 ‘안 될 것 같지만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죠. 저는 재산도 많지 않고 성공한 경험도 없었지만 ‘나는 해낼 수 있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장 마인드셋이에요. 《성장 마인드셋》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야 성장 마인드가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학점을 ‘F’ 대신 ‘NY’라고 표기한다고 해요. ‘실패(Failed)’한 게 아니라 ‘아직 이루지 않았다(Not Yet)’는 거죠. 저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업무 집착력이 강해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는 거죠.”

결국 뭔가를 되게 하는 끈기라, ‘그릿(Grit)’이군요.
“맞아요. 그릿이 과제 집착력을 포함하는 개념이잖아요. 결국 일을 해낸다는 건 자기가 생각하는 성공을 상상하면서 끝까지 갈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요. 1997년에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CBS PD에 합격했지만 IMF 외환위기의 철퇴를 맞으면서 대기발령을 받았어요. 그때 동기들은 주유소 알바나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인터넷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한 벤처회사에서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배우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긴 거예요. 당시 주위에서는 이해할 수 없어 했어요. 그거 해서 뭐 하냐는 반응이 많았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사서 고생한다고 했어요. 그때도 과제 집착력으로 이어갔습니다. 결국 그 홈페이지가 《동아일보》 ‘이 주의 홈페이지’에 소개되면서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에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고, 정식 발령에 도움이 됐어요. 〈세바시〉도 그래요. 사실 사람들이 볼 때는 〈세바시〉가 잘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 기준으로는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것들, 이뤄야 할 것들이 많아요.”

일면 목표 중독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목표를 정하고 성취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랄까요, 이유가 궁금해져요.
“성장의 목적은 완성이 아니에요. 계속 성장하는 것이지. 어제와 다른 나,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성취의 타깃은 제가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에요. 그것이 더 나아지길 원합니다.”

요즘의 목표는 뭔가요.
“핵심 키워드는 커뮤니티예요. 지난 1월 배움 커뮤니티인 ‘세바시랜드’를 론칭했어요. 누구나 티처(가르치는 자)가 되어 자신의 커뮤니티를 열고, 러너(배우는 자)와 함께 소통하며 공부하는 공동체. 커뮤니티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왔어요. 이제 혼자서는 가능한 게 없다고 봅니다. 자수성가도 힘들게 됐어요.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한 핵심 메시지와도 통하죠. 사회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혼자서 이루기 힘든 세상이 왔습니다.”

어떤 면이 커뮤니티 사회를 지향하게 하지요?
“개인이 혼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의 핵심 가치는 경쟁이었어요. 그런데 그 경쟁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경험하게 됐죠. 기후 변화, 부의 양극화, 사회적 갈등 등을 유발했으니까. 더 이상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의 논리로 흐르면 안 된다,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얻은 거예요.”

공동체 지향의 사회는 ‘그렇게 된다’는 흐름이라기보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에 가깝다고 보는군요.
“이제는 당위가 됐죠. 배움의 형태도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 배움은 ‘일 대 다(1:多)’의 형태였어요. 선생님 한 명이 침묵하는 다수를 가르치는 구조. 이건 정보가 특정 개인에게 집중됐을 때의 상황이고, 지금은 ‘다 대 다(多:多)’ 소통 사회가 됐어요. 커뮤니티의 핵심은 관심사예요.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스승 역할을 하는 대장장이가 있어요. 그 안에서 다른 정보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다른 커뮤니티가 자생적으로 생겨요. 변화를 만들면서 한 발 더 나아가게 하죠.”

 

〈세바시〉 구범준 대표 PD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