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 코다의 시선

이 길 보 라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다.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떠나 배낭여행으로 세상을 배웠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을 배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다큐멘터리 세 편을 만들고 여섯 권의 책을 냈다. 


아웃사이더 #코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듣지 못하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들을 수 있는 청인 자녀를 말한다. 2022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동명의 영화가 노미네이트 됐다. 코다인 여성이 뮤지션의 꿈을 꾸지만, 가족 곁을 떠나야 한다는 이유로 고민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아빠 역을 맡은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트로이 코처만큼이나 그에게 상을 시상한 배우 윤여정도 화제가 됐다. 윤여정은 수상자의 이름을 말하기 전 두 주먹을 모아 흔들며 수어로 ‘축하합니다’를 외쳤고, 트로이 코처가 수어로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그의 트로피를 대신 들고 있었다. 영어권 국가에 가기 전 간단한 회화를 준비하는 것처럼, 윤여정은 농인 배우를 위해 간단한 수어를 익혔다. 이는 그가 만날 다른 세계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였다.  

한국에 코다의 세계가 알려지게 된 데는 이길보라 감독의 서사가 있었다. 그는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고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 이길보라 감독은 농인 부모의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세상을 양수 삼아 태어났고, 자궁 밖으로 나온 순간 소리의 세계에 노출됐다.

어떤 코다는 말보다 수어를 먼저 배우고, 수어로 동화책을 읽는다. 소통 능력이 생기면 농인 부모와 청인 세계 사이의 징검다리가 된다. 전세, 월세, 보증금 등의 단어의 뜻을 알기 전에 통역해야 하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다른 세상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며 농인의 문화를 문화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라는 걸 알게 됐다. 

 

‘아웃사이더’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제안했습니다. 주제에 동의하는지요.

“누군가가 ‘경계인’ ‘소수자’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으로 저를 호명할 때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요. 가령 코다의 시선으로 청인이나 농인을 보면 그들이 제게는 다른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소수자’라는 것도 누가 ‘다수’와 ‘소수’를 결정하는지 묻고 싶어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농인과 코다는 소수지만 만약 모두가 물속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그곳에서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수어 사용자인 농인과 코다입니다. 그건 우리가 화성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아웃사이더 역시 제 기준으로 봤을 때는 당신이 아웃사이더는가 되는 것이지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처음 출간된 건 7년 전입니다.

“7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코다’나 ‘농인’이라는 용어가 알려진 것은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2014년에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고 2015년에 동명의 책을 출간했는데요. 그 영화와 책이 한국 사회에 코다에 대해 알리는 최초의 작업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코다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면서 코다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습니다. 영화를 배급하고 책을 알리는 과정에서 코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어요. 이후 예술가이자 활동가로서 활동하며 코다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요. 한국 코다들의 네트워크인 코다코리아의 활동도 코다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코다로서 정체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제 글과 영화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연구이자 작업이지요.”

 

농인이냐 청인이냐를 넘어 자신을 긍정하며 자식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부모를 만난 것도 어떤 의미로는 특별해 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보고 나서 그 누구보다도 보편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라는 평을 해주셨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인 나와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깬 거죠. 자식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고 소통하는 부모님이 저희 엄마, 아빠라고 생각해요. 자신과 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인 보라를 존중하고 지지했던 거죠.”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중 한 장면. 왼쪽부터 아버지 이상국 씨, 어린 이길보라, 동생 광희, 어머니 길경희 씨. ⓒ 영화사 고래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중 한 장면. 왼쪽부터 아버지 이상국 씨, 어린 이길보라, 동생 광희, 어머니 길경희 씨. ⓒ 영화사 고래

 

누군가가 ‘경계인’ ‘소수자’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으로

저를 호명할 때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요. (중략)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농인과 코다는

소수지만 만약 모두가 물속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물속에서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수어 사용자인 농인과 코다입니다.

그건 우리가 화성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저는 누가 아웃사이더를 만들고 결정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아웃사이더는 당신이 되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죠.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고요. 길에서 배운 것들은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학교 바깥에서의 공부가 저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깨닫고 경계를 넘나들며 학습하기를 택했는데요. 그 경험이 재밌고 좋았어요. 그래서 계속한 거죠. 그 후로 스스로의 학교를 세워 나가고 그를 통해 세상을 알고 소통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20대 초반에 ‘코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그때는 한국 사회에 코다에 대한 어떠한 콘텐츠도 연구 자료도 없었어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면서 코다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 나갔지요. 그게 저의 정체성이 됐고요.”

 

‘로드스쿨러’라는 정체성도 함께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20장이 넘는 여행계획서를 작성해서 여행을 준비했어요. 그걸 가지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동시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여행 계획을 설명하고 후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을 한 셈인데요. 그때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단어도 없었어요. A라는 사람을 만나 후원을 받고, A가 소개해준 B를 만나 후원받고, B가 소개해준 C라는 사람을 만나 후원을 받는 식이었어요. 여행도 여행이지만 그렇게 만난 이들이 제 여행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생각해요. 그들을 통해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여행을 꼼꼼히 준비했고, 실제로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배움을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100만큼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000만큼 좋았던 거죠. 정말로요.”

 

〈그가 걸어온, 이길보라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