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의 대답,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김기현
인지과학과 심리철학을 연결하고 확장해 가르치는 철학과 교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인간다움이 꽃피기까지 과정을 조망하며, 인간다운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서울대발전기금재단 부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인간다움》이 있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애리조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담긴 기본권 관련 문장이다. 그러나 인간이 나다움을 느끼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인간다움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이러한 질문을 품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지탱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섰다. 질문이 답으로 그의 마음에 맺히기까지 60여 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야수와 천사가 나란히 있음을 알았고, 과연 나라는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다운 존재인지를 알고 싶었다. 또 하나, 고등학생 때 그 길고 어려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야기를 왜 좋아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에 매력을 느꼈음을 알았다. 그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다움의 뿌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발간한 《인간다움》에서 공감과 이성을 바탕으로 원하는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갈 때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공감 능력 덕분에 타인을 배려하게 되고 이성을 작동해 공감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균형 안에서 자유의지를 펼칠 때 인간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다시 말해 타인도 나처럼 행복을 원하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인간은 동물과 구별된다.

오늘날 인간다움은 인공지능(AI)의 발전 속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가랑비에 옷깃 젖듯 우리 의식에 은근히 스며드는데, 개인의 선택은 외주화되고 공감 능력은 묽어지면서 인간다움을 이루는 자산은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경제학자 로빈 핸슨은 인류의 경제 성장 속도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200만 년 전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하던 때에는 경제가 두 배로 성장하는 데 22만 4100년이 걸렸다. 이후 농경사회에서는 909년, 산업사회에서는 6.3년으로 속도가 가속화됐다. 만약 새로운 혁명이 이전처럼 진행된다면 세계 경제가 2주마다 두 배로 성장하는 시기가 다가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기술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수확하고 위험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기술 문명이 가져올 미래를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기 위해 김기현 교수를 서울대발전기금재단에서 만났다.

‘인간다움’은 이성적인 측면이 강조되지만

‘나다움’은 개인의 독특성과 존재감이 중심을 이룹니다.

만약 인간다움을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에서 강조하게 되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나 독특함을 간과할 수 있어요.

반면 개인의 독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저해할 수 있겠죠.

보편적인 규범을 밑바탕에 두고 그 위에 개인의 특성을 얹는 방식으로

인간다움과 나다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개성,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을 이루는 생각은 대개 어린 시절 기억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중산층 가정에서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랐어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다행히 좋은 새어머니를 만나 두 분의 감사한 무관심 속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문예부장을 맡을 정도로 문학에 빠져 있었는데요. 도스토옙스키 같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했는데 소설가의 삶을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길을 모색했습니다. 비록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논리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철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때 선택이 지금 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됐을까요?
“지난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면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고단한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철학 공부가 잘 맞았고, 과거 사상가들의 이야기보다 문제 중심의 현대 철학에 깊은 흥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분석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철학을 탐구하는 애리조나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인식론을 인지과학과 연결해 심리철학으로 확장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 분석철학을 비롯한 기술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인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인간의 지성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역사학이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간다움의 뿌리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나게 됐습니다.” 

지금 시대에 왜 ‘인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조명했나요?
“나이 들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이념 대립과 진영 논리에 대해 고민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분모를 찾으려 노력하던 중 선진 국가의 헌법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본권에 개인의 공통 가치관이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기본권으로서 존중받는 개인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을 두고 책을 쓰게 됐는데요. 기술 관점의 철학 사유에서 벗어나 큰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됐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붕괴하며 개인의 존재가 태어나고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본권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다움》을 내기까지 60여 년이 걸렸습니다.
“60년 이상 살면서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두 존재인 야수와 천사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도와주고 싶어 하는 천사와 경쟁해서 이기고 싶어 하는 야수가 다 존재하더군요. 과연 나의 존재가 얼마만큼 인간다운 존재인지 궁금했습니다. 문학에 관심을 둔 이유도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봅니다. 그 길고 어려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야기를 좋아한 것도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인간다움에 관한 책을 쓴 이유도 오래전부터 제 안의 인간다움을 찾아 나선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간다움을 성찰하기 이전에 나다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나요?
“나다움과 인간다움에 대한 고찰과 갈등은 깊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과거에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이 주제를 깊이 탐구했어요. 니체가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고유한 자발성과 개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저마다 가진 독특한 색채와 감성, 무드는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하는 개인의 나다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외부에서 고유성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과 내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요.”

인간다움과 나다움은 어떻게 다릅니까. 
“인간다움 중 이성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다움은 어떤가요? 나다움은 일반적인 규범에 속하지 않는 개인의 독특한 존재와 관련된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다움은 이성적 측면이 강조되지만 나다움은 개인의 독특성과 존재감이 중심을 이룹니다. 만약 인간다움을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에서 강조하게 되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나 독특함을 간과할 수 있어요. 반면 개인의 독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저해할 수 있겠죠. 보편적인 규범을 밑바탕에 두고 그 위에 개인의 특성을 얹는 방식으로 인간다움과 나다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다움의 기반 위에 나다움을 쌓아 올리는 것이군요.
“인간다움의 보편성을 강조해서 나다움의 개별성을 질식시키면 안 되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다움의 보편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만물의 지배자로서 위치를 확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윤리 때문입니다. 나라는 개념은 인간이라는 종(種)에 의존하는데요. 인간의 종(種)이 붕괴하면 나라는 개념도 유지할 수 없어요. 인간의 존재는 협력과 공존의 윤리를 기반으로 그 위에 개별성과 독특성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공감부터 시작해 이성과 자유라는 인간다움을 이루는 꽃을 피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간다움의 변천사는 문명의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공감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DNA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공감은 가까운 사람에게 잘 작동하고, 먼 사람에게는 잘 작동하지 않아요. 이성이 이런 편향성을 보완해줍니다. 이성은 일반적인 원칙과 규범을 추구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또 강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성찰을 통해 이웃을 공평하게 존중할 때 인간다움이 형성됩니다. 공감, 이성, 자율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다른 시기에 발전하면서 인간의 사회·문화적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권위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사회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여기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대와 중세, 특히 기독교가 중심이었던 시기에는 종교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시절에 개인이 자신의 꿈을 지향하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간주했고, 그러한 행동은 권위주의 이데올로기와 충돌하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에 개인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야 했습니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이성은 종종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된 것이죠. 근대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공감 능력을 돌아보게 됐는데요. 그제야 이성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엄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인간다움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면 미래 문명에서는 새로운 인간다움이 꽃을 피우게 될까요?
“현재의 인간다움에 대한 개념이 시대를 넘어서는 영원한 진리인지, 아니면 특정 시대의 특징에 불과한 산물인지는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의 플라톤은 군인, 지배자, 평민의 역할에 따라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진정한 인간다움이라 여기며, 이것이 행복과 도리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몇천 년 전 사람들이 인간다움의 개념을 오늘날과 다르게 해석한 것처럼, 미래 사람들이 우리를 되돌아봤을 때 인간다움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인간다움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지 말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최근 불거진 효율적 이타주의와 급진적 개발주의의 갈등처럼 공감 대 이성의 다툼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간다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나요?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다양한 논의와 문제점을 동반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 국가가 각각의 방식으로 기술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기후 변화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국제협약도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전에 스티븐 호킹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AI 전문가들이 AI의 위험성에 대해 공개서한을 내놓았지만 AI 기술 발전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려는 시도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 발전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고, 국가와 기업 간 경쟁, 투자 규모 등 다양한 요인이 기술 발전을 가속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 김기현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