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대원 '용왕'의 첫 번째 언어탐험

최근 K-pop과 같은 우리나라 문화의 세계적인 영향력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드라마에 나온 책들이나 시 한 구절마저 번역되어 유통되는 현 시점에서, 번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옛이야기 등과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정서, 가치관,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나라와 다른 언어권 나라 간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향유하던 언어,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은 아예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외국어로 번역할 때 한계에 부딪힌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고전소설 토끼전》(토끼의 간)을 영어로 번역한 《The Rabbit’s Eyes》을 통해 번역의 한계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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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번역문 ‘The Rabbit’s Eyes’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토끼전과 영문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의 가장 주요한 소재인 이 토끼의 으로 바뀌어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이야기의 자잘한 흐름부터 주된 사건까지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먼저 용왕의 발병에 있어서 그 병의 종류의 차이, 치료의 방법 등에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본래 토끼전에서는 용왕이 우연히 얻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육지에 사는 토끼의 간으로 환약을 달여 먹어야한다는 치료법을 제시한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물고기의 왕이 낚싯바늘을 물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갈고리가 아가미에 남아있어 그로 인해 열과 고통을 얻고 있으며, 토끼 눈으로 만든 습포제로 갈고리를 풀면 그 병이 해결될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주된 소재인 토끼의 으로 바뀌어 번역됨에 따라, 마지막 토끼가 잔꾀를 부리는 장면에서 또한 차이가 생겼다. ‘토끼의 간에서는 토끼가 자신의 간을 꺼내어 육지 자기만 아는 장소에 숨겨두고 다닌다며 현재 자신의 간이 부재하여 치료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영어 번역문에서는 지금 착용하고 있는 눈은 바닷물이 시력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갈아끼운 수정으로 만든 눈이라며 자신의 눈을 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은 모두 소재가 토끼의 간에서 토끼의 눈으로 번역됨에 따라 내용과 흐름에 일어난 변화를 찾은 것이다. 이 변화에서는 번역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 한국에서는 토끼의 간과 같은 동물의 내장을 먹는 데에 별로 큰 거부감이 없는 반면, 영어권 국가, 서양에서는 동물의 내장을 먹는 내용을 그대로 전할 시 약간의 거부감을 유발할 것이라 예상하여 습포제를 사용하여 피부의 질환을 치료하여 자연스레 그 질병을 낫게 하는 이야기 진행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알아본 소재 및 내용 외에도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의 토끼전에서는 자라’, 또는 별주부로 통용되는 등장인물이 영어 번역본에서는 단순히 ‘Turtle’, ‘Dr. Turtle’거북이로 나타난다. 분명 한국에는 차이가 있는 두 생물이지만 자라가 흔하지 않은 외국에서 자라는 ‘softshell turtle’라 칭하고 있다. 그 이름의 길이가 독자로 하여금 생소함과 이질감을 느끼게 하며 가독성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는 점, ‘자라거북이로 번역하여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softshell turtle’‘turtle’로 생략하여 번역하였다.

또한 한국의 토끼전에서는 용왕으로 통용되는 등장인물은 영어 번역본에서 ‘King of the fishes’, ‘Majesty’와 같이 물고기의 왕으로 번역된다. 이 또한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감안하여 번역된 것인데, 도교와 불교사상이 우리나라 문화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도교의 신격화된 용 용왕은 한국문학에서 자주 등장하여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불교나 도교가 생소한 서양에서 용왕은 딱히 대체할 단어가 없어 물고기들의 왕으로 표현된 것이다. 용의 신격화된 모습인 용왕이 단순히 백성의 지배자인 으로 번역되어 인간의 차이를 없애는 바람에 영어 번역문에서의 왕은 한국인들에게 한국 토끼전의 용왕보다 그 위상이 덜하게 느껴진다.

물론 용왕이 ‘king’으로 번역되어 번역본을 읽는 영어 화자는 어색함이나 이질감을 덜 느끼겠지만, 한국어 화자로서는 그 번역본을 읽을 때 용왕의 위상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 실망을 느낀다.

이처럼 번역가들은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그를 해소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번역 작업을 한다. 반면, 이 과정에서 약간의 왜곡이 생길 가능성이 생긴다. 언어 체계와 향유해 온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 작업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한계이다왜곡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별이나 사대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최대한 그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방식으로 번역하되, 그 과정에서 왜곡과 문화적 차별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