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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이 가을 꼭 들어야하는 노래 동물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입력 : 2021.10.29
<혜화동>은 동물원의 일원으로 동물원의 거의 모든 노래를 작곡한 김창기가 만든 곡이다. 어려서 실제로 혜화동에서 자라다 가족들과 호주로 이주해 중학교를 다닌 그가 호주로 떠날 때의 마음을 대학생이 된 후의 감성에 버무려 떠나는 친구와 보내는 친구의 마음속에 적당히 나누어 담아 쓴 가사인 듯하다.
내가 처음 미국으로 떠난 것이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한국에 왔다 떠나기 전날 친구를 만날 때면 설명하기 힘든 묘하게 싸한 느낌이 목구멍 뒤에 걸린다. 김창기도 호주로 떠나기 전날 그런 느낌이 차 올랐나 보다. 그는 죽마고우에게 전화를 한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내일 먼 곳으로 떠난다면 오늘 가장 생각나는 것이 어릴 적 뛰놀던 골목일까?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 속 화자는 친구를 만나러 서둘러 떠난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길….’ 그래, 맞아. 그 시절 지하철은 심하게도 덜컹거렸지. 넋 놓고 문 쪽에 기대 서 있다 갑자기 열차가 격하게 몸을 틀면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전철이 지상으로 지나가는 곳은 매번 집 창문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릴 정도였다. 역마다 설치된 안전문도 없었다.

열차가 덜컹거리며 요란하게 도착할라치면 기계 목소리가 띄어 읽기를 이상하게 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상계, 상계 행열차가 도착하고있습니다. 안전선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십시오.” 상계행 열차라고 띄어 읽어야 하는데 기계가 행열차로 읽은 것이다.

안전문이 없으니 달려오는 열차에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도록 안전선이 있어 그 뒤로 물러서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안전선 안으로 물러서는 것이냐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는 것이냐 말이 많다 결국 안전선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굳어졌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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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 올라타고 혜화동으로 가는 길 화자는 친구를 만나는 설렘을 지나 지난날을 회상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김창기가 설마 중학생 때 호주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았나’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 생각은 호주에서 몇 년 더 성장해 돌아왔을 때의 느낌 아니면 대학에 들어가 호주로 떠나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가사를 쓸 때의 마음과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혜화동을 찾아갔나 보다. 아니 혜화동 옛집으로 다시 돌아가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넓게 팔을 펼치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던 골목길은 이제 비좁기만 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커버렸다. 그렇다고 골목길이 시시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세월이 흐른 것이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가서 인사하고 오라고 해서 학교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선생님 따라 학교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교실에 책걸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저기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를 했단 말이야?’ 그렇게 무겁던 책상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신기한 건 한 번 가서 앉아보고 싶어졌다. 방학 중이라 빈 교실로 선생님과 함께 들어가 책상을 쓰다듬는 척하다 슬쩍 앉아 보았다. 의자가 어찌나 낮은지 무릎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이제 내가 그 책상에 하루종일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돌아가 앉아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 게 추억이고, 작아진 골목길에 대한 그리움이다.

 

젊음의 열정 안에 넘쳐나던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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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교얄개>의 한 장면.

허나 추억 속에는 자랑스럽고 푸근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늘 농담으로 “젊음의 어리석은 짓들을 모두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 끝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지금의 내가 유학 가기 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찾아뵙던 청춘으로 되돌아간다면 머리숱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 빼고는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 말 안 듣는 자식 둔 부모의 심정으로 폭발해 버릴 것이다.

열아홉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마치 다른 인격체인 것 같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열아홉의 나에게서 오늘의 내가 나왔다는 것이다. 열아홉의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이제는 부끄럽고 힘겨운 기억조차도 가끔 한 번 되돌아보며 그 모든 넘쳐나던 감정들을 젊음의 열정이라 이름하고 끌어안아야지.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처음 유학 가 친구들이 그리울 때면 회사원이 되어 멋지게 옷 차려입고 친구들과 만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건 막연한 꿈이고, 나의 어릴 적 부푼 꿈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대학입시가 다가올 무렵 성원이와 진지하게 장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원이는 계획이 확실했다. 얼마나 감명 깊게 들었으면 친구의 장래 꿈을 아직도 내가 기억하고 있다. 반면 나는 좋게 말해 꿈이 많았고 솔직히 말해 갈팡질팡이었다. 돌아보면 이룬 꿈도 의외로 많고, 이루지 못한 꿈도 있고, 포기한 꿈도 있다. 잃고 포기했기에 새롭게 얻은 꿈도 있다. 얼마 전 <고독한 미식가>를 시청하는데 내가 고3 때 성원이에게 했던 말과 아주 비슷한 말이 나왔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발돋움하려 하지도 않고….”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는 영국에서 남편이 암으로 죽어 가는데 끝내 그를 보러 영국으로 가지 않았다. 미얀마에 남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는 못산다. 무엇보다 나는 세상을 바꿀 위인이 아니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도, 그들 다 떠나보내며 바꾼 세상에 나 혼자 살아남는 것은 너무도 끔찍하다. 나는 나만의 가치를 찾아 나의 심장이 기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8〜9년 전 나의 책 홍보를 위해 어느 기자를 만났을 때 여기에 한 가지 추가했다.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그 기자가 내가 너무 유복하게 자라 쓸 이야기가 없다는 투로 내 책과 나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을 거절했다.

‘부모는 선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요. 부모덕에 초년고생 없이 자란 건 맞으나 그렇다고 그간의 내 삶이 한 줄 글도 되지 않을 만큼 재미없지는 않았소. 숨은 것을 보지 못하고 노천광만 찾아 글 쓰는 댁도 썩 훌륭한 기자는 아닌 듯하오.’

그때 덧붙인 것이 “싫다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말고, 나를 알아보고 내가 필요해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자”이다.

그러고 보니 중구난방 정신없이 광활하던 내 꿈의 뼈대는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뭐든 기본으로 돌아가면 세상이 이렇게 간단해지는 것인가? 살면서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생중계로 보고, 뉴욕 증시가 폭락하는 것도 보고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다. 게다가 심지어 나이까지 먹을 대로 먹고 나니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내용 중에 허황된 것은 하나도 없구나, 세상에 내일이 보장된 사람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 어떻게 뒤틀릴지 모르는 인생 기본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꿈일 듯하다. 그러나 “Easier said than done(말이야 쉽지).”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조차 잊고 욕심을 부려왔던가.

 

지금 다시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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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혜화동>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사는지’라고 하며 끝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많이 잊는’ 것이 아니라 그 몇 되지 않는 것들을 ‘자주’ 잊는 것이다. 야망이 나쁜 것이 아니고, 출세가 나쁜 것도 아니다. 야망과 출세에 앞서 ‘내가 이렇게 살면 내 영혼이 행복한가? 과연 죽을 때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몇 년 전 이미 종영한 지 한참 된 《응답하라 1988》을 미국 사는 동생네 집에서 봤다. 마지막 회에서 카메라가 모두가 떠나버려 썰렁한 쌍문동 골목을 구석구석 비추고 덕선의 내레이션 뒤로 박보람이 부른 <혜화동>이 흘러나온다. 남자 조카는 한국말이 서툴러 조금 보다 혼자 딴 짓하고, 여자 조카는 “정환이 불쌍하다”며 훌쩍거리고, 나는 아무 말 없이 화면을 응시하며 과외 다녀오다 4호선 공사 현장에서 넘어진 일부터, 성원이 면회 가던 일 등 지난 40년을 주욱 머릿속으로 훑었다.

성원이와 나는 오래전에 예비군 소집에 가서 본 것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기가 막힌 건 소집 장소가 4호선 남태령역 근처라 역에서 마주쳐 함께 걸어갔다. 우리는 4호선과 깊은 인연이 있나 보다. 그 뒤로도 내가 부지런히 연락을 해야 했는데 신부님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다른 임지로 옮겨다니다 보니 한 번 놓친 것이 오랜 공백이 되고 말았다.

근래 성원이가 다른 분을 통해 나의 안부를 물어 왔다. 인터넷 시대에 어디 있는지 몰라 오래 연락 없이 살았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사실은 서로가 얼마나 변했을까 좀 두렵기도 하다. 성직자로 살아온 그와 변호사로 살아온 내가 만나 성직자와 속세의 사람이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만나도 “야, 성원아”라고 해도 될까? 우리가 서로 너무 변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이 초등학교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공부를 하는 것처럼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일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신부님”하고 공손히 불러야겠지.

 

오리지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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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리메이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박보람이 부른 버전일 것이다. 늘 오리지널을 좋아하는 나는 동물원이 부른 것을 좋아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박보람 버전이 오리지널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함부로 자기 귀에 익은 버전을 오리지널 혹은 원곡자라고 부르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이 ‘꼰대’의 바램이다.

<혜화동>의 오리지널은 엄연히 동물원이고, <그리움만 쌓이네>는 노영심이 아니라 그 노래의 작사, 작곡가이기도 한 여진, <아름다운 강산>은 이선희가 아니라 작곡자 신중현이 오리지널이다.'I Will Always Love You'의 원곡자는 휘트니 휴스턴이 아니라 얼마 전 모더나 코로나 백신 개발에 백만 달러를 쾌척했던 돌리 파튼이다.

동물원의 노래 중에서 가을에 들으며 인생을 관조하기 좋은 노래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이다. 김창기가 의대 시험 전날 공부하다 말고 만들었다고 한다. 흐린 가을이라고 하는 걸 보니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나 보다.

시험 전날 할 건 많은데 일단 책을 접어놓고 일어서면 좀처럼 책상으로 돌아가기 힘들 때가 있다. 마음은 한없이 불안한데 리모컨을 손에 쥐고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고 그 앞에 계속 앉아 있다든지, 쓸데없이 집안 대청소를 한다든지 공부 말고 그동안 미루었던 모든 일을 다 한다. 김창기는 대청소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명곡을 썼다.

시험 전날 ‘시간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초조함과 떨칠 수 없는 ‘상념’ 사이에서 힘들어하다 책을 덮고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연다. 그리고 쌀쌀한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 ‘잊혀져 간 꿈들아 어디로 갔니? 난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니?’

 

이 노래 리드보컬인 김광석이 ‘편지를 써~~’ 하고 고함칠 때는 창문 밖으로 ‘아!’ 하고 한 번 크게 소리를 질러보는 김창기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때로 이 노래를 들으며 ‘잊혀져 간 꿈들’이라는 대목을 들을 때면 ‘김창기는 요즘 이 노래를 부를 때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이제 명망 높은 정신과 의사가 되었지만, 그가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한창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하면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이 크다. ‘내가 왜 그 속을 좀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까‘라는 자책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정신과 의사이니 그런 마음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아마 그런 마음이 그를 인술을 베푸는 훌륭한 의사로 성장시켰는지 모르겠다.

 

기억을 담은 노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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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한 장면.

동물원의 노래는 아니지만 가을에 즐기기 좋은 또 하나의 노래를 소개한다면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가 있다. 얼마 전 ITX 청춘열차를 타고 춘천까지는 아니고 가평을 다녀왔다. 볼일이 있어 다녀왔지만 오가는 기차여행이 마치 명상수련 같은 느낌이었다. 가사처럼 ‘조금은 지쳤다’고 생각될 때 평일 하루 비울 수 있으면 조용히 혼자 다녀오면서 이 노래 들으면 좋다.

노래 좀 듣다보니 내 인생 스토리에 개똥철학까지 다 나왔다. 그게 바로 노래의 힘이다. 실은 요즘 오래전에 쓰다 만 글들을 다시 읽으며 싹수가 노란 것들은 아예 지워버리고, 괜찮은 것들을 다시 보완하고 덧붙여 글을 완성시켜 보려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글도 쓰다 만 것이 1년은 족히 된 글이다. 그 1년 사이 나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시간이 많이 남아 서울 성곽을 모두 돌았다. 낙산 구간을 돌 때 혜화문에서 출발해 낙산을 올라 흥인지문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다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혜화역으로 갔다. ‘우리 아버지가 사시던 곳은 어디일까? 김창기가 살던 곳은 어디일까?’ 두리번거리기며 걷다 오랜만에 학림다방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과 신학교 입구를 지나 한성대입구역까지 걸어가 그곳 5번 출구에 있는 오래된 제과점에도 들어갔다. 가는 내내 위의 모든 추억을 되새겼다. 그때는 동생네 가족과 《응답하라 1988》 보며 추억을 되새기던 것조차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지금 서울 성곽 낙산구간을 걷던 것도 추억이다.

요즘 이촌역 앞에 임시 인도를 따로 내고 철저한 안전장치를 하고 공사를 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던 나는 피식 웃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널브러진 자재들에 걸려 넘어지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이다. <혜화동> 노래 한 곡 속에 내가 중학교 시절 걷던 이촌역 앞길과 지금의 길 그 사이의 모든 이야기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비단 나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억이 함께 엮여 있다. 우리의 기억이 대물림 되고 새 이야기가 첨가되어도 끝없이 그 기억들을 수용하는 것이 노래이다.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튼은 “우리의 기억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을 압도할 때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에만 묶여 연연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시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또한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등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건기가 오면 그곳에 흐르는 수맥을 찾아 무리에게 물을 먹이는 나이 많은 코끼리의 지혜, 그것은 기억이다. 우리는 그 귀중한 기억들을 노래에 새겨놓고 서로 나누며 산다.

이 가을에 한 번 권한다.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시간 여행 한 번 떠나보길. 노래 속에 새겨진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살던 동네와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한 번 돌아보길.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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