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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친정엄마는 딸을 몇살까지 키우나 아이를 키운건 팔할이 할미밥이었다
입력 : 2021.10.21

엄마는 매일 우리 집에 왔다. 아이를 낳은 뒤 우리집 현관을 여는 엄마의 손에는 늘 장을 봐온 바구니나 집에서 만들어온 음식이 있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많아지는 날이면 엄마는 혹시나 염려되는 마음에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은 되는 거리를 걸어서 왔다. 아이는 11월 말에 태어났고 조리원에서의 2주를 보내고 나와 집에 온 뒤로는 산후 도우미가 2주 가량 상주했다. 엄마가 매일처럼 오던 때는 12월 말, 혹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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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따뜻한 니트나 스웨터 대신 얇은 면티를 입고 왔다아이의 얼굴에 닿을지 몰라서였다엄마는 밤사이 잘 잤느냐고 아이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그리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밥솥에 밥을 지었다엄마가 가져오는 건 전복낙지소고기 같은 것들이었다엄마가 소파에 앉을 새도 없이 차려낸 음식 앞에 내가 앉으면 엄마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몸에서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지 킁킁 맡아보곤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가 잘 먹는 게 얼마나 대단한 효도인지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시원하게 다 비우지 못한다. 입이 짧으면 늘리면 될텐데 그게 마음처럼 안 된다. 엄마는 옆에서 혀를 차며 애기 엄마가 2인분은 먹어야지했다. 아마 엄마가 오지 않았다면 나의 주식은 짜장범벅이나 우유에 만 후레이크였을 것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떼고 완전식을 먹는 지금, 내가 주로 해주는 음식은 아기 치즈를 넣은 치즈 김밥이다. 김과 치즈를 잘먹는 아이를 겨냥한 야심작이다. 솜씨 없는 내가 만들기도 간편하다. 영양에 대한 걱정이 들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엄마 밥이다. 엄마의 굴비, 엄마의 갈치, 엄마의 소고기야채볶음과 엄마의 전복죽은 딸뿐 아니라 손녀도 먹여 살리는 중이다. (8년 전 언니가 조카를 낳았을 때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다만 그 때의 엄마는 지금보다 더 젊었고, 언니는 나보다 입이 긴 편이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해다 준 음식을 제비처럼 잘 받아먹는다. 나는 부모님께 드리지 못한 잘 먹는 기쁨을 손녀는 톡톡히 드리고 있다. 엄마는 평생 엄마 밥을 해먹이며 딸 둘을 키웠는데, 이제는 딸의 딸까지 키우고 있다. 엄마는 내가 아이 밥을 먹이느라 숟가락 올라가는 게 드문드문해지면 아이는 내가 먹일 테니, 너부터 먹어라한다. 나는 또 나보다는 아이가 먹었으면 해서 한 숟가락 먹은 뒤엔 또 아이의 밥을 먹인다. 아이가 밥 한 술을 크게 와앙 먹고 볼이 빵빵해지면 나의 뇌하수체에도 기쁨의 포만감이 분비된다. 나는 내 부모님께 가뭄에 콩 나 듯 드렸을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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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먹겠습니다아!

나는 마감을 앞두고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출근한다. 그동안 아이를 봐주는 나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가 밥먹는 사진을 찍어 보낸다. 아이는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일 열심히 하고 오라는 메시지다. 그게 나를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모른다. 아이는 외갓집에서 보내는 일주일 동안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엄마는 얘가 엄마 일하는지 아는가 보다한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엄마보다 나은 엄마가 되진 못하겠지만 나보다는 나은 딸을 낳았다. 이래저래 내가 수지맞은 기분이다. 나는 내 딸의 아이에게 그런 외할머니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 나이 곧 마흔인데, 우리 엄마는 딸을 몇 살까지 키우는지 모르겠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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