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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의 판타스틱 베이비
코로나가 창궐하던 2019년 11월에 태어나 마스크 너머의 세상을 보는데 익숙해진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불행이 불행만은 아니어서, 재택근무 덕에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그게 질좋은 시간인지는 늘 물음표입니다. 찰나에 지나가는 '반짝이는 지금'을 적어봅니다. 이 '적음'이 먼훗날 아이와 저에게 뜻깊은 '저금'이 되길 바랍니다.
#5. 첫번째 이별 할부인가 일시불인가
입력 : 2021.09.28

아이와 함께 치과에 가면 내 치아를 치료받을 때보다 더 많이 긴장된다. 아무리 천장에 <뽀롱뽀롱 뽀로로>의 친구들이 뛰어 다니고 도구와 의자가 알록달록해도, 팔과 다리가 결박된 채 억지로 입을 벌리고 금속의 질감을 견뎌야 하는 치과 검진은 통곡으로 꽉 채워진다. 아이 눈에선 눈물이 코에선 콧물이 입에선 침이 쏟아지고, 눈코입이 모두 흥건한 아이를 보는 내 손에도 진땀이 난다. 아이를 붙잡고 있는 남편은 “괜찮아. 괜찮아. 곧 끝나라고 아이를 다독이지만, 이 소리는 아이에게 가닿기 전에 오열 속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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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이 지나면 아이의 첫 치과검진이 있다. 치아의 상태를 점검하는 영유아발달검사 중 하나다. 잇몸에 쌀알이 붙은 것처럼 젖니가 봉긋하게 오르기 시작한 게 200일 즈음이었는데 이제 앞니에 송곳니 어금니까지 스무개의 치아가 자리를 잡았다

검진이 있던 날, 아이와 나는 단유 선고를 받았다. 현재 상태에서 더 모유수유를 진행한다면 아이의 앞니에 시작된 충치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경고였다실제로 아이의 윗니 두 개와 아랫니 두 개의 끝부분에는 반달같은 굴곡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치아라, 자라는 중이라,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는 충이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었다. 치아의 상아질에 균이 자리를 잡고 산을 뿜어내며 아이의 치아를 녹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산과 균은 모유의 당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젖니(milk tooth)를 만든 모유는, 이제 유치를 망가뜨리는 중이었다. 

돌이 지나면서부터 수유를 슬슬 끊어야지 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의 젖줄이던 모유를 갑자기 끊자니 나부터가 가혹하게 느껴졌다갓 만들어진 치아로 야무지게 가슴을 깨물때면, '그래 내일은 꼭 끊는다' 하다가도, 품에 안겨 입술을 오물거리다 배시시 잠드는 (이게 더 문제다. 수유하다 잠들면 치아는 더 많이 상한다.)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내 심장에 밀착된 아이의 심장은 내 것의 약 1.5배의 속도로 뛰었다. 내가 '두근두근' 두번 뛰면 아이는 '콩닥콩닥콩닥' 세번 뛰었다. 

하루만한 달 만이 되고, ‘한 달 만19개월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모유수유를 24개월까지 하기를 권한다는 말에도 솔깃했다. 두 돌이 된 아이가 "어머님, 이제 그만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때 중단해도 된다는 전래동화같은 이야기다. 현실의 우리는 외부의 선고를 받고서야 반강제로 수유를 중단했다.

치과의 충격은 나와 아이에게 동일하게 컸는지, 아이는 단유의 이유를 설명하는 내 이야기를 대략 이해하는 듯 했다. “아까 치과에서 선생님이 더 먹으면 더 아플 거라고 하셨어. 이제 많이 커서 안 먹어도 된대. 그러니까 이제 빠이빠이 하자라는 말에 아이는 굵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빠이빠이를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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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추석도 빠빠이

아이에게는 첫 이별이다. 익숙해진, 정들어 버린,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무언가 와의 작별.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더 야속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유는 아이의 생명줄이며, 아이의 전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보건소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산후 도우미께도 배웠었다. 그래서 갓난 아이와 두 시간에 한 번씩 서로 땀을 뻘뻘 흘리며 모유를 먹였었는데, 이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헤어져야 한다

이 헤어짐의 아픔을 아이는 매일 나누어 겪는다. 잠들기 전에, 졸릴 때, 내 품에 파고들 때 아마 더 고플 것이다. 치과에서처럼 남편이 아이를 결박하고 내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입안 구석구석을 칫솔질 한 후 사이사이 치실까지 해주지 않으면 아이의 이에 시작된 부식은 더 깊이 패인다. 같은 품, 다른 경험이다. 아이는 느닷없는 이별이 슬프고, 단호한 분위기의 양치가 서럽다. 이 고통을 매일 할부로 갚아나가지 않으면나중에 치과에서 일시불로 겪어야 한다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아픔도 전혀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는 걸, 21개월 인생도 알아가는 중이다.

아이의 외할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아이가 외갓집에 다녀가며 현관에서 '빠이빠이'를 하면 "아가,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게 인생이란다" 하며 아이를 쓸쓸히 바라보곤 했다. 괜시레 돌아서서 눈시울도 붉어지시는 걸 보며 '아빠도 참..' 했는데 이제는 알것도 같다. '회자정리 거자필반(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이 있다)'.. 생의 법칙이 예외없이 적용되는 세계에 온 손녀가 벌써부터 안쓰러워서였다는 걸.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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