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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뜨거운 여름날은 가고... 서울둘레길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헨델의 수상음악 라장조 HWV. 349
입력 : 2021.09.10

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소식 전해요. 저는 올여름 좀 바빴습니다. 지난 글에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둘레길을 완주하고자 서울을 계속 걷고 뛰었거든요. 가만히 집에 있어도 더워 죽겠는데 무슨 달리기냐며 다들 말렸지만 마음먹은 것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제 치기 탓에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 번씩 새벽마다 길을 나섰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시간이 맞을 때면 함께 했어요. 혼자여도 좋고, 친구와 함께해도 좋았어요. 서울둘레길은 모두 8코스라, 한 번에 1코스씩 완주하면 8월까지는 끝내겠더라고요. 총157km라 하루 평균 20km 정도를 움직였어요. 달리기도 했고, 걷기도 했고, 때론 비를 맞고 멈춰있기도 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둘레길을 절반쯤 돌았을 때 스탬프북을 잃어버린 일입니다. 보통 둘레길은 3~4구간으로 나눠 있는데, 매번 각 구간마다 도장을 찍게 돼있어요. 그래서 둘레길을 모두 완주하면 28개의 도장을 찍을 수 있는데, 도장이 14개가 모인 때쯤 스탬프북을 잃어버린 거죠.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제 실수였습니다. 스탬프북을 잃어버린 그날은 비가 엄청 많이 와서 지나온 길을 다시 걸었는데 끝내 찾지를 못했어요. 찾기를 포기해야 했죠.

그리고 전 결정해야 했어요. 다시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포기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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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한 스탬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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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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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완주증

사실 본업도 아니고, 무슨 대회를 나간 것도 아니고, 뛰고 나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주변에서 모두 말렸습니다. 저를 제외하곤 모두 의사인 제 가족들은 그러다가 사람들이 열사병 걸리는 거라고 스탬프북 잃어버린 마당에 그냥 쉬라고 했어요. 의료진 입장에서 심각하게 충고한다며, 무모한 일이고 무의미한 일이라 했습니다.

그렇죠.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고, 설령 스탬프북을 잃어버렸더라도 그냥 계속 걸어도 되는 거고, 그만둬도 되는 일이었죠. 그런데 전 꼭 그 스탬프북을 채워서 둘레길 완주증을 받고 싶었어요. 저만의 약속이고 도전이니까요.

고민은 딱 하루만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일하는 도중 중간중간 짬나는 대로 운동화를 신고 매번 뛰쳐나갔어요. 한번 갔던 길이라 그런지 두 번째는 시간이 조금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을 걸어 보니 처음에 보지 못했던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도 좋았지만 해 떨어지고 난 뒤 저녁도 좋더라고요. 물론 혼자 가기 위험한 길은 피하고 도심을 둘러싼 길들로 다녔습니다. 때론 친구들이 함께 걷기도 했고요.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동에서 강서로 한강 다리를 미치도록 드나들었어요.

마지막 둘레길 구간은 북한산이었는데, 서울에 그렇게 오래 살면서 이런 길이 있는지, 이런 동네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어요. 여행 못 간다고 투덜대고 안타까워했는데 서울에서 이런 둘레길을 걷는 일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내친김에 한양도성길도 두어 번 더 돌아서 스탬프북을 찍었어요. 한양도성길까지 포함하면 올여름 제가 두 발로 걸어 다닌 거리는 대충 200km 정도 됩니다. 그렇게 올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여름 안녕, 가을 반가워'라고 인사하는 9월이 됐습니다. 제 둘레길 이야기가 좀 길었네요.

 

걸으면서 깨달은 것들 

저의 이번 둘레길 프로젝트는 저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어요. 몇 가지만 정리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실행에 옮겨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 제일 좋았어요. 실수를 인정하는 법도 배웠고요, 실패나 실수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힘도 얻었어요. 아마 둘레길을 평탄하게 완주했더라면 이런 감동은 못 느꼈겠죠. 

몸을 움직이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았어요. 책상에 주야장천 앉아 글을 쓰는 일도,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강의를 하는 일도 모두 제 체력이 돼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제 몸을 알아가고 제 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걷기 힘든 시기에 걸었다는 것도 뿌듯했습니다.

제가 둘레길을 걷고 나서 주변 사람들도 한 두 명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산책도 하지 않던 귀차니즘 최강인 제 친구도 새 스탬프북을 가지고 첫 발을 딛었어요. 걷기 좋은 가을이 됐으니 이젠 더 좋을 겁니다.

 

무모했지만 성공했던 작곡가 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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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

이런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입니다. 헨델은 바흐와 같은 해인 1685년에 태어나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바로크 작곡가입니다. 개인적으로 바흐 마니아인 저로서는 헨델의 관현악 음악에 선뜻 귀가 기울어지지 않았는데요, 이번 일을 계기로 헨델이 달리 느껴졌습니다.

그는 독일의 중부 도시 할레에서 태어났지만 여러 곳을 움직이며 살았습니다. 바흐가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고 살았던 것과는 반대되는 삶이죠. 헨델은 그야말로 글로벌 노마드가 되어 해외취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고향 할레에서 항구도시 함부르크로 갔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북독일 도시 하노버에서는 선제후를 모시는 음악가로 살다가 영국을 방문하고서는 그곳에 눌러앉아 평생을 지냅니다.

지정된 날짜까지 돌아와야 하는 직장인 음악가였는데 25살의 헨델은 무모한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노버에 돌아오지 않고 영국에 눌러앉았는데 하필 자신이 예전에 모시던 그 선제후가 영국의 왕으로 등극합니다.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는 어머니가 영국 왕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앤 여왕과는 가까운 인척관계였고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번째였기 때문입니다. 

헨델은 1712년 런던에 정착해서는 앤 여왕의 사랑을 받으며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앤 여왕 이후 등극한 하노버 선제후에겐 미운털이 박혀 어색한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을 잘하고 융통성 있는 그는 왕의 뱃놀이에 사용될 음악을 작곡하면서 조지 1세의 화를 누그러뜨리는데, 그때 작곡된 곡이 바로 수상 음악 (Water Musi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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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여러 관현악 악장을 모은 곡이지만 흔히 세 곡의 모음곡으로 묶여 연주됩니다. 조지 1세 임금이 템스 강에서 연주회를 요청하여 1717617일 초연되었고, 왕의 반응이 너무 좋아 세 번이나 연주를 계속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1726년에 영국에 귀화하여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46 작품과 오라토리오 23 작품, 교회음악은 물론 많은 기악음악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르간에도 능숙했던 그는 밝고 명쾌하며 호탕한 선율을 아주 잘 작곡했습니다.

무모했지만 도전적이었고, 자신의 무모함으로 벌어진 일에 융통성을 발휘해서 책임도 질 줄 알았던 헨델의 수상음악을 들으며 지나간 여름을 기억해봅니다.

올여름은 진짜 뜨거웠어요.

 

Handel: Water Music Suite No. 2 in D Major, HWV 349 - 2. Alla Hornpipe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라장조 (2번 전곡)

Royal Albert Hall, 18 July 2012

2012년 로얄 알버트홀 프롬스 실황

Handel - Water Music Suite No. 2 in D Major (HWV 349)

 

1 - Overture (Allegro) 0:00

2 - Alla Hornpipe 2:02

3 - Minuet 5:00

4 - Lentement 6:33

5 - Bourrée 8:12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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