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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슬의생 동상이몽 가을 놀이터 앞에서
입력 : 2021.09.08

2019년 우리 책(톱클래스) 6월호 커버스토리와 스페셜이슈는 BTS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BTS는 한 권의 책으로 모자랄 신화를 켜켜이 쌓아올렸고 올릴 것이며 올리는 중이었다. 당시 나는 임신 16주차 정도였는데 모든 꼭지는 여러모로 유익한 태교이기도 했다. 하지만 몸의 기억은 다른지, 아이를 낳고도 나는 한동안 BTS가 나오는 광고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듣지 못했다. 후렴구인 “Oh my my my”를 들으면 단전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오며 거대한 파도 위에 쪽배를 탄 듯 위장이 출렁거렸다. 입덧의 기억은 빌보드 차트의 기록처럼 쉬 허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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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신생아 시절은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부른 돌덩이와 함께 한다. 2020년 3월 아이의 백일 무렵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방영됐다. 나는 아이를 재운 뒤 나를 봐이야이야 끄떡없어 / 쓰러지고 떨어져도 / 다시 일어나아~”라고 외치는 하현우의 포효를 개미만한 소리로 들으며 내적 샤우팅을 하면서 젖병을 삶아 개수대에 얹어놓고 가제 수건을 개켜 바구니에 포갰다.

2021년 9월, 요즘의 BGM<슬기로운 의사생활 2>의 양석형(김대명) 선생님이 부르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제 아이는 뱃속에 있거나 누워있지 않고 방과 거실을 다다다다 다닌다. 붕붕이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공을 굴리며 다니기도 하고 아무튼 분주하다. 거실에 깔아둔 매트가 다행이고, 층간소음에 신경 쓴 시공사가 고맙고, 그럼에도 아랫집에는 늘 송구하다. 그런데 아이는 <슬의생>이 할 때만큼은 얌전히 자기 의자에 앉아있다. 제법 진지하게 율제병원의 이모저모를 눈으로 훑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남편은 아이에게 큰 바람은 없고, ‘저런 의사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종종 말한다. 그 말은 아이의 오른쪽 귀로 들어가 내 왼쪽 귀로 빠져 나온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에게 이제라도 수능을 봐서 의대에 진학하거나, 의전원의 입학과정을 알아볼 것을 권한다. 어른의 꿈이나 바람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서..라기 보다 남편은 실제로 좋은 의사가 될 자질을 갖고 있어 보인다. 소싯적 병원밥도 먹을 만큼 먹어봤고, 의료진의 말과 몸짓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아이의 삶에 '99즈' 같은 우정의 공동체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실력도 인성도 공평한 성취를 한 데다, 언제든 방문을 두드리며 (때로는 노크도 없이) 들어가 밥 먹자”, “차 마시자”, “칼국수 먹을래해도 되는 사이.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나 그것이 열등감도 우월감도 되지 않는 담백하고 돈독한 관계. 아이가 대학을 갈 무렵이면 39학번 정도인데, 그게 어느 학교의 어느 전공이든 인생을 함께 할 '39즈'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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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자라...아니 올라가렴

아이가 의사가 되길 바라는 남편의 바람보다, 나의 바람이 더 이루기 어려운 종류라는 걸 나는 안다. 이제 제법 몸을 쓸 줄 알게 된 아이는 놀이터에 가면 언제든 아이의 곤란을 돕기 위해 아이를 향해 뻗어 있는 내 손을 뿌리친다. 그리곤 미끄럼의 사다리를, 성큼성큼 오른다. 그 위에는 이미 도착해있는 또래의 친구들이 있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에서 아이를 지켜본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서있는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나름의 질서를 배워가는 아이를. 그러면 또 양석형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을 우체국(놀이터)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이 저물도록 몰랐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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