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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발칙한 사랑들
입력 : 2021.08.31

'고집이 세다’, ‘귀가 어둡다’, ‘지나치게 관대하다’, ‘이성의 탈을 쓰고 감성적이다’, ‘가끔 너무 대담하다’, ‘본의 아니게 무례하다’. 현재 세계 미술계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를 두고 그의 친구들이 장난스레 묘사한 것입니다. 물론 젊었을 때의 일이지요.

2018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의 <예술가의 자화상>이 9030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한화로 1019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지요.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가 된 그는 올해로 84세의 노장이 되었습니다. 동성애를 포함해 인물, 풍경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실험 정신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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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Portrait II, 14 March 2012 ©아트바젤 홈페이지

팝과 동성애의 결합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떠한가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형 스크린에 펼쳐질 나의 작품과 마주할 모든 이들이 이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2021년 5월, 호크니는 새로운 영상 작품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를 선보였습니다. 그가 프랑스 노르망 디에서 아이패드로 제작한 이 작품은 ‘해돋이’를 주제로 한 2분 3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 디지털 아트 프로젝트였는데요. 서울뿐만 아니라 런던, 뉴욕, 도쿄의 최첨단 옥외 스크린 네트워크를 통해 한 달 동안 동시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엔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못난이 유충이 하룻밤 사이에 황제잠자리로 변신하는 것 같은 찰나의 신비로움이 느껴지지요. 한순간에 양 날개가 촤악하고 펴지고 공기역학적으로 완벽한 네 개의 날개가 아름답게 펄럭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비행체로 변신하는데요. 바로 그 순간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세상에 퍼트리는 듯한 황홀함이 뿜어져 나옵니다. 태어날 때부터 평범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예술가들은 분명 무언가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와 피의 온도가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크니는 1960년대부터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피터 블레이크 같은 미술가들과 함께 영국 팝아트 운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그는 동성애 주제를 공공연히 다룸으로써 유명해졌고 사진작가, 판화가, 삽화가 등 여러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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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No.1 from The Yosemite Suite(2010) ©아트바젤 홈페이지

오페라나 발레를 위한 무대 디자이너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요. 1975년에는 모차르트의 <마적>과 스트라빈스키의 <방탕아의 추이> 를 위한 무대를 디자인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과 아파트 그림이었지요.

호크니는 1937년 7월 9일 영국의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출생했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밖에서 폭탄이 떨어지면 계단 밑 찬장에 숨어 엄마와 함께 소리를 질러댔던 것입니다. 그는 그 기억이 늘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배급은 그가 16세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요. 일주일치 용돈으로 겨우 사탕 하나밖에 못 사 먹을 만치 궁핍하게 살았지만 그는 힘들었다기보다는 사는 게 재미있었다고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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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wo Boys Together Clinging(1961) ©위키피디아

“나는 내가 좋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그는 1959년에 런던에 있는 왕립예술대학에 들어갑니다. 그의 아버지는 늘 “남들이 뭐라 생각할지 걱정하지 말고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그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뉴욕에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아주 잘나가고 있었는데요. 그는 달랑 두 달치 생활비에 불과한 350파운드를 들고 뉴욕으로 날아갔습니다.

뉴욕은 24시간 깨어 있는 곳이었지요. 뉴욕이야말로 그가 있어야할 곳이었습니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친구 집에서 TV 염색약 광고를 보던 중 바로 뛰쳐나가서 염색약을 사다가 금발로 물을 들였는데요.

“금발은 더 즐거우니까 금발로 염색하세요”라는 카피에 ‘그거 정말 재밌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평생 금발로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금발에 두껍고 검은 뿔테 안경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호크니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그의 작품 세계도 선명한 색과 밝은 패턴 그리고 평온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사람 들은 그에게 “이런 문화적 불모지에 왜 왔냐”고 물었지만 그에겐 전혀 사실이 아니었는데요. 그곳엔 바로 할리우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전후 세대인 그는 영화를 보며 자랐고 그때 본 영화들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였습니다.

그는 극장에 자주 갔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면 차창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하나의 그림으로 만났습니다. 더 많은 풍경을 보기 위해 2층 맨 앞자리에 앉곤 했지요. 데이비드는 LA에 살면서도 드라이브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항상 애완견을 무릎에 앉히고 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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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리고 헨리

LA에서 그는 보통 아침에 작업을 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더워져 햇살이 내리쬐는 산타모니카 해변에 나가 눕곤 했는데요. 호크니는 젊고 섹시한 서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에로틱하고 아름답다고 느꼈고 <샤 워하는 소년>, <풀장의 두 소년> 같은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그는 저녁이 되면 다시 작업을 시작했고 밤 11시쯤 되어서야 술 한잔하러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선 술집이 새벽 2시까지 열려 있었지요.

“어떻게 보면 나한텐 딱 좋은 시간이에요. 문을 닫을 거라면 그때가 딱 좋죠. 새벽 2시쯤에는 뭔가를 결심할 수도 있잖아요. 4시는 좀 늦죠.”

LA의 술집에선 브루클린에서 온 배관공 같은 사람이 옆자리에 앉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런던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호크니의 대표작이자 LA의 첫 수영장 그림인 <더 큰 첨벙>은 물이 흩어지는 찰나를 표현하기 위해 2주간 공을 들여 그렸는데요. 아이러 니하게도 수영장 물이 튀는 시간은 1초 정도인데 튀는 물을 그리는 데는 7일이나 걸렸습니다.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선들로 섬세하게 표현 되어 있지요.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클라크 부부와 퍼시>는 미니멀 스타일로 세련되게 꾸민 1970년대 아파트 실내를 배경으로, 패션 디자이너인 오시 클라크와 셀리아 버트웰 부부, 그리고 그들의 고양이인 퍼시를 그린 작품입니다. 

정지된 듯 고요한 장면이 오히려 등장인물들의 삶에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그는 몇몇 주제를 반복해 그렸는데요. 특히 그의 뮤즈로 알려진 버트웰을 많이 그렸습니다. 당시 추상화가 주류를 이룬 미술계에서 호크니는 유일한 구상화가였어요. 하지만 추상미술에서 영향을 받긴 했습니다.

그는 여러 작품을 컬러필드 페인팅처럼 칠했고, 예술을 향한 새로운 접근법은 물론 게이의 삶을 솔직히 그려내는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성 정체성 때문인지 그는 경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경계가 있다는 건 넘어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죠. 그는 “나는 그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1964년 그는 LA에 사는 영국인 동성애자 중 제일 유명한 크리스 어셔우드와 돈 버카디 커플을 찾아갔습니다. 30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남자 둘이, 둘 중 하나가 상대를 총으로 쏴 죽이거나 헤어지지도 않고 15년이나 살다니. 그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지요. 어쩌면 그는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나도 애인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1967년 여름, UCLA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호크니는 피터 슐레진 저(Peter Schlesinger, 1984~ )를 만납니다. 피터는 호크니가 찾던 바로 그런 사람이었죠. 젊고 매력적인 남자였는데 잘생겼다기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호크니는 그야말로 홀딱 빠졌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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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ograph of Water Made of Lines(1978) ©아트바젤 홈페이지

“만약 내일 아침에 나라가 무너지는데 바로 그날 마침 당신이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죠? 세상이 멀쩡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샌드위치와 맥주만 있으면 아무 상관없죠.”

두 사람이 함께하는 단란함은 호크니에게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였 습니다. 호크니는 나란히 연결된 집 두 채를 구입한 뒤 그 사이의 벽을 부쉈습니다. 양 끝에 큰 방을 만들고 그 방을 연결하는 긴 복도는 갤러 리로 만들었죠. 피터는 커튼과 타일 작업을 맡았고 가구를 배치했습니 다.

피터는 아늑한 분위기의 집을 원했지만 데이비드는 세련된 집을 갖고 싶어 했지요. 둘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남녀 관계도 유지가 어려운데 남자끼리 게다가 둘 다 그런 관계를 맺는 게 처음이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지요.

피터와의 이별은 너무나도 가혹했습니다. 호크니는 하염없이 울었고 진정제까지 먹어야 했습니다. 그는 기분이 극도로 좋아졌다가 우울 해지기를 반복했는데 다행히도 그의 옆에는 오랜 친구 헨리 겔트잘러 (Henry Geldzahler, 1935~1994)가 있었습니다. 침대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고 우는 데이비드의 등을 헨리는 엄마처럼 자상하게 문질러주었지요.

헨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였습니다. 어쩌면 호크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지요. 둘은 매일같이 30분 정도 전화로 대화를 했고 삶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예술, 책, 우정, 연인, 가십 모든 부분을. 정말이지 더할 나위없는 우정이었죠.

헨리는 호크니의 성격이나 예술에 대해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는데요. 단, 특유의 다정함으로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호크니는 6개월에 한 번씩 자기가 그린 그림을 헨리에게 골라달라고 부탁했고 일부는 헨리의 손에 찢기거나 쓰레기통에 던져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헨리의 얼굴엔 자랑스러움과 오만함이 스쳐 지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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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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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발칙한 예술가들》( pp.309~319 일부 발췌) 

 

추명희 칼럼니스트, 《발칙한 예술가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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