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비인기·비메달' 종목 선수들에게 바치는 찬가 김민기 上 <봉우리>
입력 : 2021.08.18

화신(化神) 같은 사람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맘속에 불가사의한 사람이 둘 있었다. 영어 단어 중에 ‘Enigmatic’이라는 형용사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수수께끼 같은, 불가사의한’이라고 나온다. 중학교 때인가 어려운 문장을 독해하다 이 영어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도 그 두 사람의 얼굴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하나가 이소룡이다.

어떻게 이소룡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흐릿하지만, 그의 영화들이 한국에서 개봉하기도 전부터 이소룡에 심취해 책받침도 연습장도 모두 그의 사진이 들어간 것을 샀다. 그간 그의 영화들을 보고 그의 생애에 대한 기사들을 읽었다. 그가 기인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으나, 신화 속 인물 같은 신비로운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commonPIVUK1OA.jpg
이소룡 사후에 개봉된 <사망유희>의 한 장면.

이소룡과 함께 나에게 ‘Enigmatic’한 인상을 주었던 사람이 김민기이다. 김민기가 작곡했다는 노래들은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들었다. 내가 자라던 1970-80년대에는 ‘무슨무슨 애창곡집’이라고 해서 팝송이나 포크송들을 모아 거기에 기타 코드까지 붙여 노래 모음집을 발간한 것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나도 포크송 애창곡집들을 펼쳐 놓고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친구>를 서툴게 기타를 튕기며 불렀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어디서 배워왔는지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어 외운 노래가 <늙은 군인의 노래>와 <금관의 예수>이다.

대학 시절 야외로 놀러 갔을 때 선배 하나가 처음 듣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마음에 들어 물었더니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노래들은 거의 100% 금지곡이었지만, 입에서 입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운동권 애창가요 모음집’이 있다면 그 책의 반이 김민기가 만든 노래였을 것이다.

귓가에 익은 노래들 속에 주문(呪文)처럼 반복해서 들려오는 그 이름 김민기. 김민기라는 인물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나에게 ‘Enigmatic’이란 단어의 화신(化神) 같은 사람이다.

 

일 년 만에 김민기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위의 글을 써 놓고 1년 넘게 방치했다. 전설처럼 듣고 배운 그의 노래들이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이다. ‘내가 그를 제대로 표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문득 고등학교 때인가 어머니가 사온 여성 월간지에 실렸던 그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그가 농촌에서 야학을 운영할 때 저녁 모임에 다녀왔더니 집에 불이나 홀라당 다 탔다. 그가 소장하던 천여 권의 장서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방화 같았다. 김민기는 그 잿더미 위에 불을 피우고 사람들을 불러 불 주위에서 소주 파티를 했다.

기자가 일부러 그런 어투로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김민기가 자기 집이 전소된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우리 집에 불을 질렀을 것이다’라고 목청을 돋우는 이야기도 없었다.

한 번 글을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다 2015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 그리고 2018년 JTBC 뉴스에 출연해 손석희와 인터뷰 한 영상을 찾았다. JTBC 영상은 처음으로 그가 말하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역시 그 월간지 기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여성 월간지 기사를 읽으며 받았던 그에 대한 인상이 그리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민기1.jpg
지난 2018년 JTBC 뉴스에 출연해 손석희와 인터뷰 하는 김민기.

흔히 그를 저항의 상징이라고 부른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 예술계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게 정권에 맺힌 것이 많다. 지금도 과거 정권에 대한 그의 감정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두 인터뷰를 통해 느낀 것은 좀처럼 저항이니 항쟁이니 하는 단어들을 그와 연관시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관련 영화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세월호 참사가 너무도 슬픈 일이지만 “어떤 목적을 갖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작업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라고 했다. 군복무 시절 건전가요를 작곡하라는 것을 거부했다가 영창까지 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세월호 관련 음악도 거부했다. 자신은 그저 안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만을 만들 뿐이지 일부러 만들려고 노래가 만들어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이 사람은 과연 저항적인 인물인가? 이 사람의 음악에는 정치적 성향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원칙이 있는 것인가? 과연 그가 이 모든 저항가요를 저항이라는 목적을 갖고 만들었을까? 저항이라는 모티브 없이 그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영국의 유명한 고음악(古音樂) 전문가인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는 그의 저서 《바흐: 천상의 음악(Bach: Music in the Castle of Heaven)》에서 우리는 바흐를 너무도 신성시한 나머지 그의 많은 음악들이 실은 춤곡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고 했다. 김민기는 시어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하다시피 했지만 결국 떠난 것은 그들이 관용구를 함부로 내뱉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김민기의 많은 노래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그리고 일상적인 자연의 신비를 노래하는데 우리는 ‘김민기’ 하면 우왕좌왕 우르르 나서 저항, 이데올로기, 정치적 성향에 빗대는 것은 아닐까? 바흐의 성스러운 곡들을 춤곡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김민기의 저항가요들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로 바라보며 따라가 보기로 했다.

김민기3.jpg

 

올림픽 선수들에게 바치는 찬가 <봉우리>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면서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가 생각나 몇 번 들었다. 이 노래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 조기 귀국한 선수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의 주제곡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양희은이 불렀다고 하는데 나는 한 20년 전 김민기의 음성으로 처음 들었다.

2020 도쿄올림픽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연기되어 열리고 올림픽 선수촌에서 코로나 환자가 속출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구소련과 미국 사이의 냉전이 한창이던 1984년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도 그에 못지않은 사연이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서방세계가 보이콧하면서 선수들은 허망함을 달래고 1984년을 기약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우리 선수들에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구 공산권이 올림픽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올림픽은 또다시 반쪽으로 열렸다. 그래도 선수들은 8년 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잡으려 비지땀을 흘렸다.

아직도 기억나는 경기들이 몇몇 있다. 그 당시는 양궁에 개인전밖에 없었다. 세계가 탄복하는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초대 여왕은 김진호였다. 그런데 세계를 석권하고 경쟁자가 없던 그녀가 그만 실수 한 발로 동메달을 따고 대신 서향순이라는 신예가 금메달을 땄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가 올림픽 때만 되면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동메달에 ‘그쳤다’ 혹은 ‘머물렀다’는 말이었다. 요즘은 이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던데 얼마 전까지도 수시로 들려왔다. 신문에 실린 양궁 기사에 김진호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그쳤다’와 ‘머물렀다’가 넘쳐났다.

여자 농구팀은 애초에 지역 예선에서 탈락 올림픽 티켓을 받지 못했지만 동구권이 불참하면서 출전권을 얻었다. 사상 최약체 팀이라는 이유로 외화 낭비하며 보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말도 많았다. 예선에서 탈락하는 즉시 데려온다는 치욕적인 조건으로 겨우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그런데 이 여자 농구팀이 준결승에서 숙적 중국 (당시는 중공)을 꺾고 결승에 올라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농구 기사 중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잘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 양궁의 경우에는 김진호 자신도 국민들도 금메달을 원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자 농구는 매 1승이 기적이었고, 은메달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런 여자 농구를 놓고 아쉽게 그쳤다니.

그나마 은메달, 동메달에 그치기라도 한 사람들은 우리 기억 속에 남는다. 1976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양정모에 가렸지만 유도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장은경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4위에 머문 사람들, 준결승에서 탈락한 사람들, 예선전에서 탈락한 사람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사람들, 국가대표 선발에 탈락한 사람들 그러나 열심히 땀 흘려 운동했던 사람들은 우리 기억 속에 흔적도 없다.

이들에게 바치는 찬가가 김민기의 <봉우리>이다. 

김민기 下편에 이어서...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달의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