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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타고 베토벤을 만날 수 있다면! 세상 떠난 예술가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입력 : 2021.07.01
여산 양달석 화백은 어린 시절 소를 몰며 백부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 시절의 아픈 추억을 평화롭고 순수한 모습으로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소와 목동>(1971년)

얼마 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여산(黎山) 양달석 화백(1908년~1984년 4월 2일)의 작품들을 처음 보았습니다. 한복 저고리를 입은 소년과 소녀들,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 싱그러운 초원과 귀엽고 순해 보이는 소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도심을 떠나 자연에서 만끽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참 신기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전형적인 ‘미알못’인데요. 양달석 화백의 천진난만한 작품을 보며 ‘그림이 주는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더라고요. 

그러다 전시장 한편에서 양달석 화백의 고명딸이 출연한 영상 인터뷰도 봤는데요. 이제 백발이 무성한 그는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소리 지르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단 한 번도 함부로 하신 일이 없다. 참 다정한 아버지였다”라며, 푸근한 미소로 아버지를 소개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꼭 버스 정류장에 자신을 데리러 왔던 아버지, 딸이 혹여 잘못될 까 수술실에 사정사정해서 따라 들어갔던 아버지, 자신의 작품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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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양달석 <목동>(1968년)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본 뒤, '아!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학문의 잣대에서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김빠지는 일인지에 대해서도요. 가령 '단 6도의 음정이 한 음악가의 작품이다'라는 딱딱한 이론서를 인용하는 것보다, '한 음악가는 고양이를 사랑해서 무려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던 집사 생활을 즐겼다'라는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들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일이 예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참 양달석 화백은 자신의 생일조차 알지 못합니다. 경남 거제의 성내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부모를 잃은 탓이겠지요. 그는 회고록에서 “13살부터 백부 댁에서 머슴살이를 했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모르는 사람만도 못한 친척의 집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냈던 섬 소년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심지어 그는 소를 돌보던 중 깜박 잠에 들어 소 한 마리를 잃어버린 일도 있다고 해요. 당시 소의 재산 가치는 무척 컸을 텐데, 백부 댁에서 얼마나 모진 눈초리를 받았을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는 이 시절의 아픔을 소와 목동이라는 소재로 아주 평화롭게 그려냈어요.

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이 담겼습니다. 만약 제가 인생 최초로 누군가의 그림을 소장할 기회가 생긴다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양달석 화백의 작품이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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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성내마을에서 태어난 양달석은 태어난 날 조차 모른 채, 성장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양달석 <어촌>(1957년)

 

베토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제가 클래식 음악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 칼럼 독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큰 바람이에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클래식 음악이 참 좋거든요.

저는 울고 싶은 날 차이콥스키의 <비창> 4악장을 들으면 더 울고 싶어지더라고요. 울고 싶을 때는 정말 울어야 상황이 해결되는데, 이때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다가 분은 아니에요. 성 정체성으로 늘 긴장하고 늘 고민했던 모습들이 그의 음악에도 녹아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양달석 화백과는 정반대의 경우겠죠.

또 즐거운 날에는 어떤 음악가의 작품이든 더 즐겁게 들리고요. 사는 게 별거 있나 싶은 그런 날에도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통해, 실로 귀한 우리네 인생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생기기도 해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던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구미에 당길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가들의 이론적인 소개나 개인적인 취향을 강조하기 보다는 시시콜콜한 삶을 소개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칼럼을 쓸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제가 소개하는 음악가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직접 만나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 지 인터뷰하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인생의 어떤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등을 물을 수 있다면, 훨씬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나마 과거의 예술가 중 일부는 일기, 편지, 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기록했고, 운 좋은 경우 이것들이 지금까지 후대에게 공개되고 있는데요.

그러나 대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나 기록이 없어요. 오직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손이나 음악 학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문서들이 있을 뿐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악보만 전해지는 분들이 훨씬 많고요.

사실 음악가, 작곡가에게 악보라는 것은 전부죠. 그의 음악이 담긴 악보만이 그 음악가의 세계를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음악만으로 음악가를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중간에 흥미를 잃는 분들도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거에요. 

그래서인지 요즘 따라 저는 베토벤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모차르트랑 인터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엉뚱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곳곳을 다니고 싶고요. 제 칼럼을 통해 보다 더 재미있는 음악가들의 삶을 소개하고 싶은 바람이 점점 커지고 있거든요.

또 저를 포함해 지구의 모든 클래식 음악 칼럼을 쓰시는 분들도 누군가의 기록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기록을 재창조하고 있는 셈인데요. 때문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발굴하고싶은 의지도 큽니다. 만약 제가 로마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 그중에서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서 보전 중인 문서들, 예를 들어 리스트의 결혼 허가 요청 문서 등을 입수할 수 있다면! 최초의 리스트 팩트를 소개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겠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기술의 발달을 통해 오래된 역사의 첫 이야기들이 세상에 공개되길 바라봅니다. 저도 지금처럼 과거의 에피소드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노력하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요즘 몇몇 분들에게 “칼럼 이야기 재미있다!”라는 칭찬 혹은 즐거운 피드백을 들었거든요. 이것이 제가 칼럼 쓰는 재미가 아닌가 하며 웃어 봅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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