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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박사의 슬기로운 연구생활
공학박사 취득 후 한 사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80년대생 허용강입니다. 정보의 진실을 가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미래관이 혼재돼 있는 오늘을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한 '공학적 사고'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두 개의 준비물 '고도원의 아침편지' 고도원 이사장을 만나다 中
입력 : 2021.06.26
저에게는 ‘인생의 북극성’처럼 길을 안내해주시는 ‘고도원’ 선생이 계십니다. 선생과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제가 스무 살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선생은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담당 비서관 업을 수행하면서 추천 도서에서 발췌한 짧은 글귀와 개인 평을 적어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이름의 이메일을 매일 아침 보내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인생에서 불현듯 깨달은 소중한 바를 주위에 공유하던 분입니다.

인생의 답을 찾고 있던 어린 저에게 선생과의 만남은 천운과 같았습니다. 제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지혜를 구하러 다니면서 연을 맺게 된 선생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고도원 이사장을 만나다(1)에 이어....

*이하 필자는 '허', 고도원 선생은 '고'로 표기한다.

미래를 대응하기 위한 첫번째 준비물, 인문학

 ‘책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임무나 의무라는 단어로 설명됩니다. 풀어 말하자면 `해야만 하는 일’ 입니다. 공학연구원인 저의 책임은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일단 많이 알아야만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눈앞이 아득할 정도로 끝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또한 커지곤 합니다. 

 허 :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임을 위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앎의 기쁨도 커지지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모두 익히기란 쉽지 않아요. 인문학의 기본 소양은 마음으로 하는 공부라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 : “그것 참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허용강 님의 직업이 연구원이잖아요? 연구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허 :  “공학연구원의 입장에서 답하자면, 문제점을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  “모든 지식의 첫 출발이 연구죠. 있는 것들을 재조합해서 새로운 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공부하고 시스템화하는 사람이 연구원이고요. 이런 활동이 유형일까요? 무형일까요?”

허 : “연구는 무형입니다.”

 고 :  “그렇지요. 그리고 결과는 유형이지요. 즉, 안 보이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만드는 이가 연구원이에요. 이를테면 공장에서 단순·반복 기능 업무를 하는 기술자와는 다르지요. 기술자는 정확한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고, 그 기능으로 챔피언도 될 수 있어요. 이분은 딱 8시간 일하고 쉬어도 되요. 그런데, 연구원은 주어진 시간에 업무만으로 해결이 되던가요?”

 허 : “아니요. 전혀 안됩니다.”

 격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습니다.

 고 : “24시간 중 자다가도 ‘번쩍’한단 말이에요. 예술가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글을 쓰잖아요. 글도 그렇고요. 주어진 8시간에 앉아는 있지만, 사념이 많고 정신집중을 하지 못해서 1분도 일을 못 할 수도 있어요. 8시간이 지나 책상에서 벗어났다고 업무가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죠. 걸으면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면서, 대화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다음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요. 특히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던 5년 동안 저의 모든 마음은 대통령의 뱃속에 들어가 있어야 해요. 당시 벌어진 모든 상황에 대해서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할지, 혹은 어떻게 표현할지를 화두로 하루 종일 사는 거예요. 연구도 마찬가지죠. 그러기에 저나 허용강 님과 같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인 소양이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을 참 좋아했었기에 별 의구심 없이 이과를 선택했고, 자연스레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공학에 파묻혀 살다가 19년 전 고도원 선생을 만나며 가랑비에 온몸을 적시듯 인문학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고도원2.jpg
웰니스 '잠깐멈춤'. 사진 조송희 ⓒ깊은산속옹달샘

 고도원 선생은 인문학의 배경을 설명하던 중 저에게 “인문학이 뭐라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허 :  “어렵네요.”

 고 :  “인문학이란 인간의 삶과 관련된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인간 삶의 족적을 남긴 것이 `역사`, 그 역사에 남겨진 지식들을 사념 체제로 만든 것이 `철학`, 그 지식을 스토리로 엮어 엔터테인먼트와 버무린 것이 `문학` 이런 것들이에요. 인문학의 보고(報告)가 독서에요. 책속에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어요.”

 선생은 “인문학의 필요성은 인문학을 설명하는 가운데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고 : “바로 ‘설명력’이죠. 예를 들어 발표를 할 때 연구 결과만 발표하기에 그치지 않고 연구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하고, 연구 결과로서 향후 기대 영향을 `설명`한다면 그 연구는 훨씬 더 설득하기 쉬워져요. 또 다른 예로, 기술자도 마찬가지에요. 단순하게 반복하는 일이지만, 그 업무로서 제작하는 상품을 대상으로 그 상품의 배경과 역사를 알고 있고, 본인이 하는 업무가 해당 상품에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개선점을 제안할 수 있을 정도로 인문학적 요소가 스며있을 때, 그 사람은 단순 기술자가 아닌 철학자가 되고 리더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의 인생길에 자리가 바뀔 수도 있어요. 설명력이 좋으니 마케팅 기회가 올 수도 있지요.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에 기인한 `설명력`은 앞서 말했듯이 `설득력`이 돼요. 설득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지요. 따라서 본인 담당 업무가 가장 중요하지만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해요. 인문학적 소양이 본인 업무에 가미가 되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점프가 일어날 수도 있지요.”

 인문학이 인생의 점프를 시킬 수 있다고 들으니 문득 양자역학의 퀀텀점프(Quantum Jump)가 떠올랐습니다. 퀀텀점프란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양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이동할 때 이 현상이 불연속적이어서 계단 올라가듯이 정수(Integer) 단계로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살아가는데 실력이나 성과를 위해 노력을 해도 늘 바닥을 기고 있다가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일이 해결되거나 실력이 향상이 되는 것을 보곤 ‘인생이 물리학의 퀀텀점프와 같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공학 연구를 한 제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연구원의 자세로 살면 참 좋은 세상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1] 이에 고도원 선생이 웃으며 마저 답해주었습니다.

 고 :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요. 물론 모든 사람이 더 좋은 환경을 위한 개선을 연구한다면 사회가 더 발전하겠지요. 그런 의미로 각자도생 및 합종연횡이 필요하지요. 현재와 미래 시대는 누구든 기술과 연구가 필요해요. 심지어 농사를 짓는 사람도 농사 기술뿐만 아니라, 연구가 필요해요. 4차 산업혁명에 맞물려 농사가 IT와 결합해 스마트 팜(Smart Farm)이 생겼어요. 공부와 연구를 하지 않으면 단순한 농민이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면 미래의 농업계에서 신산업을 만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허 : “혹시 모든 사람이 인문학도 공부하고 연구원의 자세로 공부한다면 단점도 있을까요?”

  고 : “그러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지.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에 저는 크게 웃었습니다.
 

고도원5.jpg

 

미래를 대응하기 위한 두번째 준비물, 명상

 고 :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연구해야겠다는 굳건한 마음으로 산다 해서 인사이트나 영감이 쏟아지진 않아요. 다들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이나 계획처럼 잘 안되고 지쳐 쓰러지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잠시 멈춰 섰을 때 쏟아지거나 점프가 일어나요. 이 멈춤이 바로 명상이에요.”

 선생의 다음 이야기는 ‘명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고 : “명상 방법 중에 `멍 때리기`가 있어요. 가장 좋은 명상이 `멍 때리기`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거예요.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놓쳤던 소리를 듣고, 놓쳐왔던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이죠. 가장 고요할 때 들리는 소리를 듣고 보이는 것을 볼 때, 섬광처럼 번쩍해요. 그때 연설문이 써지고,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나오는 것이죠. 내가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았을 때 나와요. 그런데 이 내려놓기에서 화두는 들고 가야해요. 화두를 들고 간다란 말은 문을 두드리거나 구하는 것과 비슷해요. 화두를 가져가되 내던져야 해요. 내던지고 멍 때리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돼요.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고 편안하게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답을 얻게 돼요. 목욕탕에서 몸을 뉘이다가 `유레카!`를 외쳤듯이. 아! 물론, 이전에 고민은 많이 해야지요. 고민을 충분히 한 상황에서 탁 풀어졌을 때, 혹은 고요해 졌을 때 깨달음이 와요. 세상의 위대한 발견들이 그럴 때 나온 것들이에요.”

 우문현답에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어깨에 힘을 어찌나 많이 주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휴가 때도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낸 탓에 휴가가 끝난 뒤에 도리어 더 피곤하기만 했었습니다.
 선생에게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선생께서는 명상으로만 몇 날 밤을 새우며 이야기해도 부족하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었습니다.

 고 : “충주에서 명상을 하고 아침편지를 쓰는 현재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이야기를 축약해야 하니 질문을 하나 할게요. 허용강 님은 어떻게 해야 잘 쉰다고 생각하나요?”

 허 : “본인이 평소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잘 쉰다고 생각해요.”

 고 : “그렇군요. 명상과 휴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핵심은 멈추는 거예요. 저는 이를 `잠깐 멈춤` 이라 해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찍는 것이라고 봐야 해요. 이 쉼표에는 시간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막 달리다가도 육체적인 피로감이 극대화되기 전에 정신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몸은 쉬게 하고 정신에 피로감을 쌓게 하는 시간을 갖는 것. 정신적인 피로감이 극대화되기 전에 육체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각각의 측면에서 육체가 쉬고 정신이 쉬는 시간이에요."

 선생은 물리학에서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을 뜻하는 '임계점'을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고 : "예를 들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거나 음악 듣기가 쉬는 시간이에요. 반대로 책을 쓰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운동이 쉬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쉬기 위해서는 `멈춤`이라는 결심을 해야 해요. 임계점이라고 하지요. 임계점을 넘으면 강제 멈춤이 돼요. 자동차 엔진이 임계점을 넘으면 과열돼 불이나고, 강물 수위가 임계점을 넘으면 범람하지요. 이럴 때 자동차는 엔진을 쉬게 하고, 강물이면 물줄기를 하나 내야해요. 단, 이러한 멈춤을 언제, 어디서 멈추느냐가 중요해요.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자동차가 터널 안에서 멈춘다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데서 멈추면 안 되기에 빠르게 지나가야해요. 안전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고 또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고도원 선생은 누구보다도 임계점이 높고, 그 임계점 근처까지 상회하던 인생을 사시던 분입니다. 제 3공화국 시절과 《뿌리 깊은 나무》기자 시절,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의 인생을 보면, 임계점과 명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생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 : “명상에도 프로그램이 많아요. 여러 프로그램과 단계가 있는데, 첫 단계는 이완(Relax)에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긴 호흡이고, 특히 내쉬는 호흡을 길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선생은 긴 호흡으로 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들이키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고도원 선생께서는 이를 예상한 듯 말씀을 이었습니다.

 고 :  “많은 사람에게 호흡을 길게 하라고 하면 들이키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숨을 비우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그릇으로 치자면 비워야 들어가는 것이 많아지단 말이에요. 우리 폐활량으로 치면 평생 폐의 허파꽈리를 20%만 사용한다는 결과가 있어요. 깊게 내쉬지를 못 하는 것이죠. 명상의 첫 단계, 이완을 위한 호흡은 깊이 내쉬면서 온몸의 구석구석 끝에 있는 세포 끝까지 숨을 비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요. 이렇게 내뿜으면 다시 들어가는 호흡이 길어져요. 이런 호흡을 반복하면 몸속 깊은 곳까지 산소가 충분히 들어가지게 되지요.”

 호흡법에 대한 짧은 이야기에서 깊은 연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채우기 위한 첫걸음은 비움이다’란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고 : “명상의 두 번째 단계가 `몰입`이에요. 우선은 호흡에 몰입하는 거예요. 그냥 멍 때리기지요. 여기부터는 휴식이 시작이 돼요. 멍 때리기로 몰입을 할 수도 있고, 독서에 몰입하면 독서 명상이 돼요. 걷기에 몰입하면 걷기 명상이 되고, 향기에 몰입하면 향기 명상, 청소에 몰입하면 청소명상이 돼요. 무엇에 몰입하던지 중요하지 않아요. 단 조건이 있어요. 몰입을 하면서 의심하면 안돼요. 예를 들어, 걸으면서 ‘내가 지금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한가로이 걸어도 되는가?’ 라는 의심을 가지면 몰입이 되지 않고 명상이 되지 않으며 휴식도 되지 않아요. 모든 의심을 버리고 당장 내 앞에 대상에 몰입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몰입에 의해 마지막 단계인 변화에 다다르게 돼요.”

 고도원 선생님은 명상의 마지막 단계인 ‘변화’를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고 : “변화의 시작은 얼굴에서부터 보여요. 우선 얼굴이 맑아져요. 마음의 감정이 출렁였는데 고요해지고 마음에 평화가 와요. 그럼 관점이 자연히 바뀌어요. 놓친 것들이 보이고 깨달음이 오죠. 일을 하면서 혹은 쉬면서 팔자타령이나 탓을 하고 있으면 명상이 안돼요. 하지만, 이완, 몰입, 변화의 명상을 거치면 깨달음이 오고 감사함이 와요.”  

고도원11.jpg

 

 [1]topclass 슬기로운 연구생활 : http://topclass.chosun.com/topp/list.asp?ctcd=C41

  

'고도원의 아침편지' 고도원 이사장을 만나다 下로 이어집니다.

허용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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