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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다.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브 투 헤븐> 속 클래식 음악들
입력 : 2021.05.31

내가 알던 누군가의 죽음   

제가 2001년도 수능 시험을 마친 직후의 일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제가 다니던 학원에서는 수능 시험 이후에 학원에 나와서 몇 점 받았는지 적어내고, 선생님이 간식을 사주시는 등 파티를 했어요. 수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실기 준비를 시작했던 터라 정신없어 안 가도 됐지만, 사탐 선생님께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학원에 갔죠.   

고2때부터 2년 정도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지만 따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어요. 선생님께서 주전부리를 드시던 중 제가 피아노를 전공하는 예고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집에 가기 전에 강사실로 잠깐 오라하더라고요. 무슨 일일까 궁금한 마음에 잠시 들렀더니 대뜸 제게 핸드폰 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주셨어요.   

“우리 딸 피아노 좀 가르쳐 줘. 입학시험 끝나면 꼭 전화해.”

제 인생 최초의 돈 벌이를 할 수 있던 기회였습니다. 아직 대학에 입학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레슨 경력도 없는 저 같은 고등학생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거죠. 막연하게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마침 선생님이 사시는 동네와 멀지 않았기에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라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해보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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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고, 다잉 메시지를 읽고, 그것을 실현시켜주려는 유품 정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그길로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자랑하고, 이제 대학가서 레슨 아르바이트하면 신나겠다며 들떴던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 그렇게 한두 달 후에 저는 대학에 합격했고요. 사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뜻밖에도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들렸습니다. 선생님이 번호를 잘못 적어주었거나 번호를 바꾸신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학원에 전화를 해본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때 제 동창 중 사탐 선생님께 팀 과외를 받았던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대형 학원 강사로, 또 근처 동네에서는 팀 과외 선생으로 바빴던 분이시거든요. 겸사겸사 제 동창에게 연락해서 사탐 선생님에 대해 슬쩍 물었더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가벼운 시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했는데, 깨어나지 않으셨대요. 제가 피아노를 가르치려고 했던 선생님의 초등학생 딸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돌아가실 수가 있나? 아직 젊은 분인데? 그것은 제 인생 처음으로 경험했던, 제가 알던 누군가의 죽음이었어요.   

2년간 매주 1번 정도 수업을 들었던 것이 전부이고, 어쩌면 처음으로 제가 사회에서 돈을 벌어본 기회를 주신 분이시기도 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프고 슬프네요. 이후에 제 할머니, 제 아버지, 제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호상이셨기에 크게 슬프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사탐 선생님과 제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면, 누구는 더 살고 누구는 덜 살고 하는 문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참 사탐 선생님이 제게 남긴 유품은 핸드폰 번호를 적어준 메모지가 되어버렸지요. 한동안 그 메모지를 다이어리 안쪽에 접어 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은 그 다이어리도 메모지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유품 정리사 그루의 플레이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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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 투 헤븐> 유품 정리사 탕준상(한그루 역)은 고인의 다잉 메시지를 읽어내고 그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넷플릭스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 입니다>(연출 김성호)를 보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하고, 심지어 망자가 남긴 다잉 메시지를 찾아 그의 소망을 이뤄주는 역할까지 맡고 있는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와 남겨진 그들의 물건,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과 함께 다시는 두 번 다시 세상에 빛을 볼 리 없었던 소중한 사연들이 눈물겹게 때로는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자식이 없어 무연고자로 남겨질 한 노 부부가 함께 생을 마쳤던 이야기, 직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던 청년 근로자가 고시원 작은 방에서 삶을 마쳤던 이야기, 데이트 폭력 끝에 결국 전 연인에게 살해당한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 해외 입양 후 파양되어 다시 고국을 찾았지만 무국적자라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가까이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떠올려줍니다. 

극 중 유품 정리사로 출연한 탕준상(한그루 역)은 유품을 정리할 때마다 음악을 듣습니다. “지금부터 00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공손한 말을 고인의 방에서 들려드린 후에요. 탕준상은 헤드폰을 조심스럽게 착용한 후, ‘그루의 플레이 리스트’라고 저장된 음악을 트는데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베토벤 ‘월광 소나타’, 에릭 사티 <짐노페디>, 드뷔시 <바다> 등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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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탕준상은 고인의 이불을 접어서 검은 비닐 봉투에 담고, 통장이나 가족사진 등 중요하고 또 추억할 수 있는 몇 가지 물건들은 노란 종이 상자에 조심스레 넣으면서, 아름답고 차분한 또 조금은 느린 템포의 음악들을 듣습니다. <트로이메라이>의 여운과 <짐노페디>의 노래가 고인의 물건들과 함께 흐릅니다. 비제의 <카르멘>이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처럼 밝고 신나는 음악은 듣지 않아요. 왠지 실제로도 유품 정리사들께서 이런 조용한 음악을 들으시면서 누군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차분하게 만져주시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되더라고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 이 음악을

위로가 필요한 순간,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을 알려달라고 한다면 저 또한 느린 전개와 잔잔한 분위기가 흐르는 음악을 추천할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이 작품 어디에서도 <레퀴엠>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어볼 법도 한데 말이지요. 참 악마와 거래했다는 소문에 시달렸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도 자신의 장례식에서 절대로 그 누구도 <레퀴엠>을 연주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요. 서양 음악사의 여러 음악가들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달라고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유언이죠. 

참, 제가 유품 정리사에 대해 처음 알았던 것은 지난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유희란 작가의 <유품>을 통해서였는데요. 그 당시만 해도 저런 일도 있구나, 싶었지만 이제는 당연히 우리들 곁에 있어주셔야 할 분들임을 깨닫습니다. 가족의 형태가 변했고, 홀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과 무연고자라는 이름으로 죽음 이후의 공간에서도 외로우실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또 유품이라는 낯선 단어를 통해, 아직 살아있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꼈는데요. 우선 저는 죽음 이후 제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은 단 한 개도 없다는 것,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을 때 제가 느꼈던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어요.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면, 그때까지 나만의 유품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려고요.

독자 여러분의 마지막 이사에는 어떤 물건이 남아있기를 바라시나요? 저는 작은 사진 앨범 한 권을 만들어둘까 싶습니다. 아직 선명하지 않은, 막연한 바람이에요. 그 앨범을 간직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가끔 펼쳐보면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들이 한 장 한 장 담겨있는 사진들로 채우고 싶어요.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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