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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평안하세요"...천국가는 길을 동행해 줄 음악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Op.24 2악장
입력 : 2021.05.27

갑작스런 지인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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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일찍 세상을 등지고 가버린 분이었기에 깜짝 놀랐어요. 아직 50대 초반의 나이인 데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에도 많이 힘쓰시고, 직장생활도 취미생활도 자기개발도 늘 열심히 하시며 즐겁게 사시던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전조증상도 없이 갑작스레 발견된 병이라니요.

10여 년 전 클래식 음악 감상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된 그분은 항상 말이 없고 조용하신 편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으셨죠. 하지만 진지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면 툭하니 한 말씀 묵직하게 던지시며 사람들에게 음악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셨어요.

그분의 말씀엔 음악을 오랫동안 깊이 들어본 자만이 꺼낼 수 있는 의미심장한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는 피아니스트로 그분은 강의를 듣는 회원으로 만났지만 어떤 때는 오히려 제가 그분께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했죠.

어른이 된 이후로 가끔 사람들의 부고를 접하지만, 친한 지인의 부고는 정말 가슴이 먹먹합니다. 드물지만 가끔 안부를 전하면서 음악 이야기를 나눴던 그분의 SNS를 열어보니 프로필 사진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음반이 떠있네요. 평상시 그분이 좋아하셨던 음악인가 봐요. 그분이 외롭지 않게 천국에 잘 가셨길 바라면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2악장 띄어봅니다. 

 

31살의 베토벤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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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베토벤은 소나타(Sonata)’라는 음악 장르를 아주 많이 사랑했습니다. ‘소나타란 고전주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3, 4악장 구성의 기악곡을 말하는데, 베토벤은 피아노 소타나 32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10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9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엔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반해 바이올린은 피아노만큼의 실력을 갖추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 악기에 대한 사랑이 컸기에 초기 소나타들은 직접 자신이 연주하려고 만든 곡입니다. 1번부터 3번 소나타까지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실제로 직접 연주까지는 불가능했지만 그는 이 소나타에 많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의 나이 28살인 1798년경 제1번을 시작으로 1812년까지 근 15년 동안 끊임없이 작곡을 했어요.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을 작곡했던 시기는 그의 작품세계가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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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는 5<>9<크로이처>가 있죠. 두 곡 모두 저도 참 좋아하는 곡인데, 대부분 1악장을 많이 듣습니다. 5번 소나타 <> 같은 경우 1악장은 따뜻한 봄을 만끽하거나 그런 봄을 기다리며 듣기 좋은 곡이고, 2악장은 지나온 따뜻한 봄을 회상하며 듣기 좋은 곡입니다. 어느 날 문득, 회상을 하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그 옛날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즈넉하게 혼자 듣기 좋은 곡이죠.

개인적으로 2악장을 충분히 느리게 연주해주는 음반에 훨씬 손이 갑니다. 급하고 씩씩하게 보다는 옛날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지를 주는 연주가 좋더라고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비가 오는 새벽인데 지금 이런 순간에도 참 좋네요. 빗방울이 조용히 음악을 피처링해주는 것이 썩 잘 어울리는군요.

5번 소나타는 1801년 베토벤의 나이 31살에 작곡되었습니다. 베토벤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사건은 일 년 뒤에 발생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사실 31살이던 이쯤부터 베토벤은 슬슬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했을지도 모릅니다. 음악만이 전부였던 그의 삶에 청각상실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신의 형벌이었을 테니, 그만 살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음악에 자신의 마지막 감정을 숨겨놨을지도요. 

1번부터 3번까지의 초기 소나타에선 보지 못했던 베토벤 식의 낭만이 넘치는 5번 소나타입니다그는 <소나타 4a#단조><소나타 5F장조>를 거의 동시에 작곡했지만 곡의 분위기는 굉장히 다릅니다4번은 어둡고 내향적인 반면에 5번은 밝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이라는 제목이 썩 잘 어울리죠.

물론 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 이 곡엔 뭐니 뭐니 해도 이 제목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제목은 왠지 어색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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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1악장은 우리가 아는 그 선율이 바이올린과 동시에 바로 등장합니다만, 2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말을 겁니다. 느린 악장인데 베토벤의 낭만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바이올린이 그 위에 살며시 응답을 하면서 천상의 2중주가 펼쳐집니다.

두 개의 악기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연인들처럼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처음 42초 정도는 피아노가 수줍은 여자처럼 말을 거니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남자가 무심한 듯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이어서 여자 역할의 피아노 멜로디를 남자 역할의 바이올린이 이어받아요. 그야말로 사랑의 대화입니다.

무대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를 할 때마다 두 연주자의 케미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아무리 독주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라도 상대방과의 음악적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듣는 이에게 감동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러시아 연주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와 레프 오보린(피아노)의 연주를 즐겨 듣습니다. 옛 연주자들은 넘치지 않게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쓸데없는 기교나 연기를 뺀 담백한 그들의 연주에서 넘볼 수 없는 비르투오소(대가)의 숨결이 느껴져요.

또 환상의 케미를 자랑하는 이작 펄만(바이올린)과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의 연주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음악적인 브로맨스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오이스트라흐나 오보린에 비해 젊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들의 연주는 베토벤의 30대처럼 그들 나이 30대 초반에 녹음된 음원으로 들어봅니다. 예술가들의 30대를 만끽하면서요.

천국을 가는 모든 이에게 이 음악이 따뜻한 동행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Beethoven violin sonata No. 5 Spring Mvt 2 (2/3) Perlman
바이올린- 이작 펄만, 피아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DAVID OISTRAKH & LEV OBORIN: Beethoven Sonata No. 5. 2nd Mov.
바이올린-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노-레프 오보린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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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유성인   ( 2021-05-27 )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0
조현영선생님.
 저도 그분과 이땅에서의 작별의 시간....
 애통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습니다.
 음악을 좋아했던 그분은
 인생에 대해 진지했던 그분은
 천상의 세계에서....
 베토벤과....
 멋진 2중주를 하고 있을거 같습니다.
 승석샘....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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