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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세 줄 이상 안 읽음"...읽는 법을 배우지 않겠다는 뻔뻔한 선언 탐험대원 '김파랑'의 첫 번째 언어탐험
입력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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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이상 안 읽음, 누가 요약 좀.”

분명 어딘가에서 한 번은 본 댓글일 것이다. 이 말은 각종 SNS의 댓글에서 꽤 흔하게 쓰이는 인터넷 ‘밈’의 일종이다. 논쟁의 상황 속 상대방을 무력화시킨다. 세 줄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거부한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 댓글은 읽지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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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논쟁이 오갈 때뿐만 아니라, 긴 텍스트가 담긴 게시글에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댓글을 종종 볼 수 있다. 단순한 농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가독성 떨어지는 글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태도는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맞고 있다. 정보를 적당히 거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를 관심사로만 인도한다. 각종 사이트는 인터넷 쿠키를 수집하여 내가 평소에 사고 싶어 하던 물건들을 광고로 띄운다.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우리를 한정된 정보에만 노출되도록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각종 미디어로부터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으려면 제대로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세 줄 이상 안 읽음 누가 요약 좀’이 보이는 태도는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우선 세 줄 이상의 글을 배제함으로써 풍부한 정보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활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논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의 독해력이 아니라 타인의 요약 능력에 기대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요약된 결과물에 기대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세 줄 이상 안 읽음 누가 요약 좀’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맹률은 1% 이하지만, 실질 문맹률은 무려 75%이라고 한다. 이 결과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인구의 99%인데, 제대로 읽고, 제대로 쓰며, 제대로 문맥을 파악하는 사람은 25%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통계청이 조사한 13세 이상 인구의 1년간 독서 활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연령의 연평균 독서 권수는 7.3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채 읽지 않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독서 트렌드를 봐도 낮은 문해율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전하는 가벼운 에세이류가 출판 시장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읽기 쉬운 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읽기 쉬운 글은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독서를 완료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과연, ‘이대로도 괜찮’을까?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명 ‘목차 독서법’ 역시 전체를 읽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독서 태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목차는 작가의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작가의 관점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독해를 통하여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또한, “세 줄 이상 안 읽음, 누가 요약 좀”은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글쓴이의 문제인 양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부터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긴 글을 읽지 않겠다는 말은 읽는 법을 배우지 않겠다는 뻔뻔한 선언처럼 들린다.

스마트폰 보급률 1위, 인터넷 사용량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은 그래서 더욱 미디어 리터러시에 주목해야 하는 나라다. 책은커녕 인터넷에 올라온 글조차 읽지 않으려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세 줄 이상 안 읽음을 외치는 당신, 요약된 세상 속에서만 살아가실 건가요?

김파랑(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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