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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나요? 남편의 위대한 예술 알리는 삶 살았던 아내, 코지마 리스트
입력 : 2021.05.17

요즘 저는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인사동의 갤러리를 좋아하던 제 직장 선배인 추명희 작가와 함께 작업 중이에요. 화가와 음악가들의 사랑의 기쁨과 슬픔, 배신으로 얼룩졌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쓰고 있으니, 문득 제 곁의 사랑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랑을 했었는지에 대한 상념부터, 지금은 잘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코로나 팬데믹 시대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 대한 제 역할, 그 외에도 제가 해야 하는 매일의 역할을 소화하느라, 정작 사랑으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했던 제 남편과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을 깨달았어요. 다 핑계지만요. 

그러다 문득 제 남편이 제가 하는 일에 꽤 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데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찾아온 평화랄까요. 현재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장소는 자전거 덕후인 제 남편의 ‘자전거 방’인데요. 이 작은 방에는 커다란 자전거 두 대와 제 아들의 자전거까지 총 3대의 자전거가 놓여 있어요. 원래 자전거 한 대가 더 있었는데, 몇 달 전에 서울 선배님 댁으로 입양을 보냈네요. 다행입니다. 

여튼 이 비좁은 공간에서 제가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쓴다며, 온갖 피로를 느끼고 있을 때 하필 남편이 자전거를 수리한다거나 자전거 바퀴를 확인한다거나 하는 행동들을 하면, 그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나, 밤잠을 잘 때 틈틈이 글을 쓰는 제 옆에서 사부작사부작 거릴 이유가 있느냐, 라고 톡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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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던가요. 제 남편도 제 이상기류를 읽었던 모양이에요. 어느 날부터 제 반응을 눈치 챘는지, 글을 쓰려 앉아 있으면 말도 걸지 않고 애지중지하는 자전거를 보러 들어오지도 않더라고요. 이것이 저를 도와주는 남편의 마음이라 느꼈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 일을 존중해주고 도와주려는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요즘 제 남편은 제가 글을 쓸 때, 몇 가지 규칙을 지키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가령 제게 먼저 말을 걸지 않기, 식사 때가 되어도 밥 먹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기, 글을 다 썼는지 묻지 않기 등이에요. 이것은 제가 글을 쓸 때 굉장히 예민한 상태라는 것을 결국 제 남편이 받아들인 결과겠지요.  

저는 글을 쓰던 중간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면, 머릿속 이야기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듯 종종 불안해지더라고요. 또 배부른 상태에서는 글이 잘 안 써지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있어서, 그것 역시 어떻게 되어가냐 물으면 조바심이 들고요. 글을 쓰는 일이 요리하는 것처럼 혹은 다림질하는 것처럼 착착 순서대로 되지 않거든요. 물론 글 쓰는 분들마다 다르겠지만요.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어떤 단어를 쓸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까지…. 또 원고를 보내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는데, 글이 써지지 않던 날들이 길어지면 마음이 무겁기까지 해요. 주제도 있고 자료도 다 찾았고 저만의 생각까지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데도, 도저히 그것들이 하나의 글이 되어 흐르지 않을 때는…. 이렇게 저는 글을 쓰며 예민해질 대로 예민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나 마감 이후에는 제 자리로 돌아오곤 하니, 다행이지요. 

생각해보니 배우자가 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심지어 존중해준다면 그것만큼 내실 있는 사랑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처럼 남편의 배려를 받으며,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몇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서양 음악사에도 배우자의 직업에 헌신적으로 매진했던 분이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람둥이였던 독일의 작곡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년 5월 22일~1883년 2월 13일)의 아내, 코지마 바그너(Francesca Gaetana Cosima wagner, 1837년 12월 25일~1930년 4월 1일)에요. 코지마는 남편 바그너를 진심으로 존경했는데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위대한 남편의 예술 자산을 세상에 소개하는 삶을 살았고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바그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진정 코지마 바그너의 노력 덕분일거에요. 


모든 사랑을 사랑했던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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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바그너는 모든 사랑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던 남자였습니다. 결혼 이후에도 여러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바그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 한 번도 지나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에 대한 기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어요. 작곡가로 이렇다 할 성공도 하지 못 한 상황에서, 즉 최소한의 돈도 벌지 못하던 상황에서 바그너는 첫 결혼을 했습니다. 심지어 이 결혼에 대해 바그너조차도 어리석었다고 회고할 정도로요. 

1836년 11월 24일 바그너는 독일 출신의 여배우 크리스틴 빌레미네 민나 플래네르(Christine Wilhelmine Minna Planer, 1809년 9월 5일~1866년 1월 25일)과 결혼했는데요. 덕분에 바그너의 첫 번째 아내 민나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렵게 살아야 했고요.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었는지 설명해드리자면, 살림살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도 바그너와 민나는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한 신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결혼 이후 새로운 사랑을 만났어요. 당시의 도덕적 잣대로도 결혼 이후에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는데요. 그러나 바그너는 아내를 잊은 채, 설레는 감정을 즐겼고요. 영국 피아니스트이자, 이미 한 남자의 아내로 살던 제시 라우소트(Jessi Laussot, 1826년 12월 27일~1905년 5월 8일)와 밀회하던 중, 심지어 제시와 먼 곳으로 도망치려는 계획까지 세웠어요.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바그너와 제시의 계획은 주변 가족들의 반대로 물거품이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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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첫 번째 아내 민나는 오직 바그너에 대한 사랑만 믿고 결혼했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남편을 지지했고요. 그러나 결국 바그너의 바람으로 인해 심장병까지 얻었고, 30년의 결혼 생활 중 10년은 아예 만나지도 않고 살다 죽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다시 아내 민나 곁으로 돌아온 바그너는 가정에 충실할 틈도 없이, 또 새 사랑을 만납니다. 역시 이번에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바그너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라 꼽은 그의 뮤즈, 아녜스 마틸데 베젠동크(Agnes Mathilde Wesendonke, 1828년 12월 23일~1902년 8월 31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그너는 마틸데의 남편의 후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은혜를 갚기는커녕 뒷통수를 제대로 친 상황이었죠. 마틸테와 바그너는 둘 만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속임수를 쓰기도 했는데요. 우리말로 예를 들자면,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라는 메시지는 ‘나너정사’ 이렇게 앞 글자를 따서 적었고요.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잖아요. 가장 먼저 그들의 사이를 눈치 챈 것은 바그너의 아내 민나였어요. 

당시 바그너와 마틸데의 사랑은 세간의 비난을 받았고요. 결국 마틸데는 남편에게 돌아갔고, 민나는 영영 바그너를 떠났어요. 마틸데의 남편은 큰 병을 얻었는데, 마틸데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요. 역시 이 스캔들 이후 심장병을 앓게 된 민나를 위해 바그너도 여러 도움을 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차라리 바그너와 마틸데가 결혼했다면, 또 다른 한 가정을 파괴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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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뮤즈, 마틸데는 바그너의 음악을 먼저 사랑했습니다. 이후 바그너와 몰래 사랑을 나눴지만, 결국 남편에게 돌아갔습니다. 훗날 마틸데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거액을 기부하며, 옛 사랑을 추억하기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이후 바그너는 자신보다 무려 24살이나 어리고, 역시나 이미 결혼해 남편과 아이까지 있던 여자와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자,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네 번째 자녀인 코지마 바그너(Francesca Gaetana Cosima wagner, 1837년 12월 25일~1930년 4월 1일)와 세 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거든요. 바그너의 이전 사랑들은 대체적으로 만나다 헤어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살림을 차렸다는 점이 달랐어요. 참 이 이야기는 코지마의 부모인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이야기와 꼭 닮았는데요.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도 이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지 않은 채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면서 함께 살았죠. 

또 바그너는 코지마와 사실혼 관계로 살면서도 첫 번째 아내 민나와 이혼하지 않았는데요. 작곡가로 성공한 바그너가 민나에게 일정 금액의 연금을 법적으로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서류 상의 이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민나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정식으로 코지마와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렇게 마지막 아내와 합법적인 가정을 꾸렸고, 10년 정도 코지마와 함께 살다 죽었습니다. 


바그너 알리기 

코지마는 자신의 아버지인 리스트의 영향으로 음악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남편 바그너의 오페라 등 여러 작품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고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예술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24살이나 많았던 남편 바그너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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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가 가장 먼저 추진했던 일은 축제를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여러 노력 끝에 코지마는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를 알릴 수 있는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 Festival)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1876년 여름 첫 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 중 하나인데요. 오직 바그너의 음악과 바그너의 철학 등 바그너를 주인공으로 한 콘텐츠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 이 페스티벌에 마틸데는 두 차례 큰 액수의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코지마의 노력 덕분에 점차 이 축제는 유명해졌고요. 바그너를 좋아하는 계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코지마의 목표이자 바람대로요. 참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바그네리안’이라 부르는데요. 오늘날의 바그네리안들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티켓을 미리 예약하는 등 음악가 바그너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깊은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코지마는 바그너가 쓴 편지와 일기를 책으로 엮어 냈는데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유일하게 바그너가 자신의 뮤즈라 칭송했던 마틸데에게 받은 편지들이 많았는데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후 코지마는 그들이 나눴던 사랑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해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마틸데의 편지 몇 통은 코지마가 발견하지 못한 편지가 대부분입니다. 아마 코지마는 마틸데에게 질투를 느꼈을 겁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추진하며 바그너 알리기에 앞장섰던 코지마는 사별 후, 약 50년 간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바이로이트페스티벌에서 일했어요. 이후에는 바그너와 코지마의 아들이 이 페스티벌을 맡았고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유명 음악가를 내세운 페스티벌도 많지만, 이렇게 직계 가족의 헌신으로 이어진 페스티벌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유일합니다. 여러 사랑이 있었지만, 늘 진심으로 대했던 바그너의 마음 덕분일까요, 그의 음악이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까닭, 코지마의 지극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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