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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름으로 러시아 국민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진짜 마음
입력 : 2021.04.30

에이모 토울스의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는 러시아 혁명기에 갓 진입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오랜 기간 작품에 대한 취재를 심층적으로 다녔던 작가의 노력 덕분에, 이 소설에는 실제로 혁명기에 있었던 몇 몇 사건들이 실감나게 등장하는데요.

여러 이야기 중에서 제가 인상 깊게 또 마음을 쓸어내렸던 에피소드 중 하나가 와인이에요. 작품이 펼쳐지는 주요 장소이자 지금도 실존하는 메트로폴 호텔(Hotel Metropol Moscow)의 와인 창고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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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대의 메트로폴 호텔 전경입니다. 러시아의 유서깊은 호텔로, 현재도 운영 중입니다. ⓒmetopolmoscow

 

빵 한 덩이를 원했을 뿐인데, 총알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차르를 처형하는 등 눈엣가시를 모두 처단하던 소비에트. 그들은 귀족 등 상류층이 즐기던 비싼 와인도 문제 삼았는데요. 와인병에 붙어있던 라벨을 문젯거리로 여겼습니다.

 

누구는 하우스 와인을 마시고, 누구는 고급 샴페인을 마시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그렇다고 또 술을 즐기는 러시아 문화에서 아까운 술을 모두 폐기할 수 없는 노릇이고요.
여러 고심 끝에 난 결론, 누구나 평등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고위층이 내놓은 방법은 와인병 라벨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간단하죠. 누구도 비싼 와인을 못 알아보게 한 거죠. 싼 가격에 한 잔 할 수 있는 하우스 와인부터 한 잔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샴페인까지 전부 다요. 그러나 주인공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라벨이 제거된 수백 병의 와인창고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즐겼던, 아주 비쌌던 와인병을 찾아냈습니다. 
이 와인병은 마개 부분에 두 개의 열쇠 무늬가 장식되어 있었거든요. 친숙하게 이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다면, 결코 찾아낼 수 없었던 그 와인을 들어 기뻐하던 백작의 표정이 그려집니다. 며칠 전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윤여정이 LA 주재 총영사관에서 한 손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머금고 지었던 표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참 로스토프 백작은 작품 속에서 차이콥스키에 대해 재치있는 의견을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프랑스, 프로이센, 러시아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차이콥스키가 없었다면 '호두까기 인형은 프로이센에나 있었겠지!'"라는 입담을 통해 러시아의 영웅과도 같은 음악가 차이콥스키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숨겨야 했던 마음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년~1893년)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러시아 혁명의 전 시대를 살았지만, 그 또한 차르와 정교회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죽어서도 지금도 그런 것 같고요. 이는 사랑이란 오직 남성과 여성에게만 허락된 감정이며, 그 외의 것은 부정한 것이라고 못 박았던 당시 러시아의 사회적 규범과 러시아 정교회 측의 단호한 규율 때문이기도 해요. 그러나 그가 절절하게 써내려갔던 편지들이 증명하듯, 그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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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 음악가 차이콥스키는 '백조의 호수', '비창' 등 클래식 음악사의 명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위키피디아

1877년 1월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동생이자 모든 속마음을 여실히 털어놓던 모데스트 차이콥스키에게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알렸는데요. 당시 그가 썼던 편지 내용은 지금까지 잘 전해지고 있어요. 그가 얼마나 새로운 사랑에 설레어하는 지 누구라도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간절한 마음이 담겼고요.

차이콥스키는 음악뿐만 아니라 글에도 큰 재주가 있었거든요. 어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잘 끌어당기던 지요. 독자 여러분께서도 궁금하실 테니, 유명한 그의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해드릴게요. 그는 동생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 남자 제자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를 조금씩 사랑하고 있었어. 내 사랑을 그에게 고백해볼까도 싶어. 하지만 내가 나의 감정을 숨기느라 얼마나 멍청하게 굴고 있는지 넌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열렬했던 사랑의 대상은 당시 차이콥스키가 재직 중이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르치던 바이올린 전공생 로지프 코텍이었고요. 물론 이 학생 이전에도 이렇게 남성인 학생을 사랑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가 사랑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어렸고요.

심지어 그는 자신의 여동생 아들에게도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는 여동생에게 “네가 무슨 상상을 하든, 그 어떤 것이든 네게 미안하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의 사랑은 변치 않았고요. 그가 죽음을 준비하며 썼던 유언장에 외조카에게 자신의 모든 이권을 넘기겠다고 쓸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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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가 사랑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로지프 코텍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위키피디아

이러한 이유로 차이콥스키는 사람들을 피하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그의 편지나 일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성격이 평탄하지 못했고, 감정 기복이 무척 심했으며,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또 엄청난 울보였다고도 해요. 자주 울었다는 기록이 편지나 일기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 차이콥스키가 유일하게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 여성은 벨기에 출신의 유명 성악가, 메조 소프라노 드자이 아르토(Désirée Artôt)였습니다. 아르토가 모스크바에 공연 차 왔을 때, 차이콥스키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거든요. 그러나 아르토의 어머니는 그를 거절했고, 그렇게 아르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요.

늘 머릿속에 아르토를 그리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바라는 편지를 썼어요. 아르토의 동의 없이요. 그 즈음 아르토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받았고요. 차이콥스키의 한 방향 사랑이었겠지요. 이후 그가 사랑했던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자신의 마음 때문에 늘 마음 조려야 하는 삶에 넌더리가 났을 때, 그는 인생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를 좋아하던 여성과 형제 같은 사이를 조건으로 하는 결혼식을 올린 일인데요. 결혼 후 그의 아내는 약속을 어기기 시작했어요. 부부 관계, 집안일, 싸움 등 결혼 이전의 약속을 모조리 지키지 않았던 거죠. 결국 자신의 아내를 감당할 수 없던 그는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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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같은 사이를 약속받고 했던 결혼이었지만, 차이콥스키와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는 서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이혼했습니다. ⓒ위키피디아

참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한 세기가 더 지난 요즘의 인식은 어떤가 생각해봅니다. 러시아 정교회를 형제의 교회로 받아들이는 로마 카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해 한 다큐멘터리에서 ‘모든 사랑의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을 해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러나 곧 바티칸 측에서 동성 결혼의 혼인 성사에 축복할 수 없다는 최종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동성 결혼 시에도 사제는 개인에게 축복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어요. 분명 사랑의 형태는 변하고 있습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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