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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공 타계...여왕을 굽어 살피소서 유럽의 유명 음악가 스카우트 즐겼던 영국 왕실 이야기
입력 : 2021.04.14
<더 크라운>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편 필립 공, 에든버러 공작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장면입니다.

영국 여왕의 남편, 별이 되다

베토벤이 빈을 떠나 런던으로 갈 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빈에서의 입지에 불만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이 때 그는 영국 국가를 주제로 한 피아노 변주곡 <영국 국가 주제에 의한 7가지 변주, WoO 78>을 작곡했습니다. 


며칠 전 영국의 윈저 성에서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영국 현지 시각으로 4월 9일 오전 윈저 성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 에든버러 공작이 타계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세상에서 유명한 아내를 둔 남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그는 상수(上壽)를 넘긴 101살(만 99세)까지 살았습니다.

지난 2017년 공식적으로 왕가의 의무에서 은퇴한 후 필립 공은 수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요. 영국 왕실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노인성 질환들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파파라치들을 통해 퍼지기도 했었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합니다. 

필립 공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으로, 영국 왕실의 일원으로 여러 의무를 마쳤습니다. 물론 그는 젊은 시절 몇 차례의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평생 여왕의 내조를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며느리였던 다이애나 비 스캔들부터 시작해 왕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왔다고요.

영국 여왕의 남편이라는 특별했던 삶, 고단했던 그 의 마지막 여정은 윈저성의 평화로운 금요일 아침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참, 영국 왕실 등 한 왕가의 일원을 소개할 때는 그의 이름이 아닌, 왕에게 수여받은 작위 등 공식 명칭으로 소개하는 것이 관례인데요.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으로 알려진 그의 이름은 필립 마운트배튼(Philip Mountbatten, 1921년 6월 10일~2021년 4월 7일)입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결혼을 위해,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로 가진 모든 혜택, 자신의 성마저 버리고 영국인으로 귀화했어요. 당시 사용한 성 씨인 마운트배튼은 그의 외할아버지의 성 씨인 바텐부르크(Battenberg)를 영국식으로 변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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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기념 사진입니다.©Library and Archives Canada

 

“이 남자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필립 공과의 결혼을 강하게 원했어요. 물론 그의 부모는 둘의 결혼을 반대했고요.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던 필립 공은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였지만,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거든요. 자연스레 영국 왕실의 맏사위로 환영받지 못했고요.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죠. 결국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들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몰타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영국 해군으로 복무 중이던 필립 공이 몰타로 발령받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몰타에서의 날들이라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달콤했던 신혼으로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였던 조지 6세가 서거하면서 그들의 인생은 대전환을 맞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2세와 갑자기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아내를 내조해야 하는 필립 공의 삶,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립 공의 이름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그는 여왕의 남편이었기에, 자신의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대관식에서 여왕에게 평생 순종할 것을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더 크라운>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기도 했지요. “왜 내 자식들은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지 못하는 것인가?”고 필립 공이 분노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여왕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가 감내해야 했던 부분도 분명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고요. 지금까지 그의 남성계 후손들은 결혼 증명서 등 중요한 서명에 마운트배튼-윈저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한 단락을 장식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아무쪼록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왕에게 평화로운 시간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내년 즉위 70주년을 맞는데요. 조만간 세기의 대관식과 새로운 영국의 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유명 음악가 스카우트를 즐긴 영국 왕실 

영국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하면 여러분은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에드워드 엘가 경(Sir Edward Elgar, 1857년 6월 2일~1934년 2월 23일)이 생각나고요. 음, 그 이후에는 잘 떠오르지가 않아요. 사실 서양 음악사를 빛낸 음악가 중에서 영국 국적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거든요. 지난 11일 영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상의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고상한 체 하는 영국인들"이라는 위트있는 수상 소감을 전해, 큰 폭소를 자아냈는데요. 고상한 것의 한 부분이 음악이나 예술이라면, 사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음악 분야는 약한 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17~18세기 영국 왕실은 자신의 나라에서도 유럽 대륙에서처럼 음악이 발전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던 여러 음악가를 초청했어요. 음악가 뿐만 아니라 대륙의 빼어난 예술가들을 자국민으로 귀화시켜 훌륭한 대우를 제공하며 영국 문화 발전에 한참 힘을 썼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활동했던 음악가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 했습니다. 왕가나 귀족, 교회 등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대표적이에요. 요즘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당시에도 음악가의 수입은 불규칙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면 영국 왕실은 자신의 나라로 유럽 대륙의 여러 음악가를 모셔와, 정착시킬 수 있을거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우선 영국 왕실이 유럽에서 활동 중이던 음악가를 스카우트 하던 방식은 높은 연봉과 복리후생이었습니다. 당시 하인과 같은 신분이었던 음악가들을 귀족과 같이 교류할 수 있는 정도의 신분으로 대우해주기도 하고, 영국 왕실을 위한 작품을 의뢰하고, 큰 돈을 주는 등 호감을 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영국인이 되면 음악가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와 부를 약속하겠다는 달콤한 말, 고민하지 않을 자 누가 있었을까요.  

이러한 핑크빛 스카우트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음악가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2월 23일~1759년 4월 14일)입니다. 그는 고국인 독일을 미련없이 떠나, 영국으로 귀화했고요. 죽는 날까지 영국의 귀족으로 살면서 음악가로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고,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의 연주회는 연일 매진을 이어갔고요. 영국 왕실은 헨델이 영국의 음악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고 뿌듯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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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영국으로 귀화해, 영국인 음악가로 성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음악적인 성공과 더불어 연주회 등의 매진 사례 등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영국 왕실의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한 음악가도 있었는데요. 그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년 3월 31일~1809년 5월 31일)입니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며, 그 재능이 돋보일 수 있는 시대를 살았던 그는 평생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음악사의 큰 인물로 살다 죽었는데요.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과 유행을 만들며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던 작곡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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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여러 차례 영국으로 귀화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음악적 재능을 쓰겠다며 귀화 의사를 철회했습니다. ©위키피디아

그가 음악가로 쌓은 명성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의 일입니다. 런던 음악계는 그에게 은밀한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영국인으로 귀화해주세요'라고요. 이미 영국 귀화의 선배인 헨델의 경우도 있었고요. 하이든도 안정적이고 부유한 음악가로 살아갈 상상을 한 번은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하이든의 지인이던 바이올리니스트 요한 페터 잘로몬은 하이든을 런던으로 초대했습니다. 하이든은 1791년부터 1795년 사이에 두 번이나 영국을 방문했어요. 런던에서 멋진 연주회를 열고, 귀족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네, 하이든도 영국인으로 살아갈 마음을 먹었던 거죠.  

당시 런던 사교계에서는 하이든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상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하이든도 그들의 마음에 반해 영국에서 살기로 결심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어요. 12곡의 런던 교향곡은 그가 영국인으로 살아갈 결심을 했던 증거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이든은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선택했습니다. 영국에서 호화롭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재능을 오스트리아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고요. 어떻게 보면 하이든의 마음이 이해도 가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는 대쪽 같은 선비 스타일이 아니었나, 상상해보게 되네요. 

또 런던으로 가고 싶어 했던 음악가 중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1827년 3월 26일)도 있습니다. 독일의 본 출신으로 평생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고 죽었던 그도 영국으로 갈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베토벤은 빈에서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입지를 세웠는데요.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음악이 빈의 청중에게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그는 영국의 국가를 주제로 한 피아노 변주곡 <영국 국가 주제에 의한 7가지 변주, WoO 78>을 작곡했고요. 빈을 떠나 런던에 정착해볼까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은 베토벤은 런던으로 이민가지 않았고, 영원한 빈의 음악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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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빈을 떠나 런던으로 정착할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도 빈을 지켰고, 빈에서 죽는 날까지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위키피디아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필수적인 해외 선수 스카우트와 비슷한 느낌도 듭니다. 영국 왕실이 자국의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모셔오려 했던 대륙의 수많은 예술가들, 그들이 모두 영국으로 자리했다면 오늘날의 서양 음악사와 미술사의 판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은 예술가 고유의 영역입니다. 어느 곳에 살든 누구와 만나든 결국 작가의 세계는 펼쳐졌겠지요!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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