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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팝송] 라떼는 대중문화계에 두 양요가 있었지 비지스 上 《토요일 밤의 열기》 OST
입력 : 2021.04.09

H.O.T.나 신화 이전 세대는 어떤 아이돌을 좋아했을까?

라떼는 아이돌 스타도 주로 서양 팝스타였다. 조선 말 두 번의 양요(洋擾)가 있었다. 병인년과 신미년에 서양 오랑캐들이 쇄국정책을 내세우던 조선의 바다로 밀려든 사건이다. 20세기 우리 대중문화계에도 두 번의 양요가 있었다. 1969년 클리프 리처드 양요와 1980년 레이프 개럿 양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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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리처드(왼쪽)와 레이프 개럿.

클리프 리처드 양요는 전혀 기억에 없고, 레이프 개럿(Leif Garrett) 양요는 내가 산증인이다. 레이프 개럿의 이름은 리프 개럿, 리프 가렛, 레이프 개럿, 레이프 가렛 등으로 불렸다. 성은 개럿이 확실하고 가렛은 틀린 발음이다. 이름은 리프냐 레이프냐 미국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레이프 자신이 텔레비전에 나와 레이프라고 했으니 레이프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마지막 날 내일 다시 등교한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며 텔레비전 외화 《원더우먼》을 보는데 레이프가 특별 출연한 에피소드가 방송되었다. 이 방송이 나가고 갑자기 한국에 레이프 개럿 붐이 일어났다. 얼마 뒤 《기동순찰대(CHiPs)》라는 외화에도 그가 특별출연을 했다.

그의 인기가 계속 올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기동순찰대》가 방송된 직후인지 직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무렵 레이프가 한국에 와서 공연도 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음악당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관심이 좀 있었는데 그 당시 과외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줘 만난 여자아이가 가고 싶어 해서 용돈 모은 것을 털었다.

나에게는 가로세로 한 뼘씩 되는 양철로 만든 금고 모양의 저금통이 있었다. 금고 비밀번호가 83-46-29였는데 그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나만이 열 수 있었다.

1주일 전에 만난 여자가 가고 싶다니 그 금고를 열고 1만 원을 꺼내 그걸로 두당 5000원짜리 입장권 두 장을 샀다. 그 당시로서는 어린 학생이 선뜻 내놓기 힘든 큰 액수였다. 어머니께는 혼자서 보러 간다고 둘러대고, 별로 좋은 좌석이 아니라 혹시 몰라 망원경도 챙겨서 일요일 오후 공연을 보러 갔다.

첫 공연이었다. 중학생쯤 되는 소녀 팬들이 내가 체육 수업을 받던 그 운동장에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남자라고는 나 하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가끔 망원경으로 무대 광경을 보며 노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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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I Was Made for Dancing’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유명한 노래는 늘 맨 마지막에 부르니 모르는 노래만 계속 부르고, 공연이 지루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주인공이 나타나지도 않고 오프닝 밴드가 연주할 때부터 소리를 지르고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껑충껑충 뛰며 노래를 하던 레이프가 더웠는지 웃옷을 벗고 반바지만 입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난리가 났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 나에게 망원경 좀 빌려 달라고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컴컴한 극장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망원경을 건네줬더니 순식간에 ‘나도, 나도’ 하는 사람들에 실려 망원경이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어, 내 망원경’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망원경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오른쪽으로 건네준 망원경이 내 왼쪽에 앉아 있던 나의 소개팅녀 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망원경을 빌려줘서 화가 났는지 그 소개팅녀는 공연 끝나고 고맙다는 말도 별반 없이 집으로 가버리고, 나는 지끈거리는 골치를 움켜쥐고 나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부터 신문에 난리가 났다. 나도 사춘기 시절이 있었고, 자식 키우는 엄마라고 전제를 단 주부 명사들이 앞다투어 ‘내 경험에 비춰 보건대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꼭 이런데 가서 소리 지른다’는 논조의 칼럼을 신문에 실었다. 명사 칼럼니스트나 기자들이나 모두 1969년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당시의 이야기를 들춰내며 ‘그때도 그랬다’고 빗대어 글을 썼다.

레이프가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불렀던 노래 중에 ‘I Was Looking for Someone to Love’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이 노래를 가끔 찾아 들으면 그때 그 요란했던 신문 사회면 생각이 나 미소 짓는다. 그때의 여중생들이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그때도 그랬다…’ 하며 레이프 개럿에 대한 기억을 들추며 글을 쓰는 사람은 없는지 궁금하다. 

나는 레이프 개럿의 팬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면서 팝송을 듣기 시작해 나만의 아이돌이 따로 있었다. 나의 아이돌은 비지스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었다. 내 방문에는 비지스(Bee Gees)의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었고, 내 옷장 문 안쪽에는 《월간팝송》이라는 잡지에서 오려낸 방긋 웃는 청순한 올리비아 뉴튼 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순회공연을 종종 했지만, 이런 특급 스타들이 내한 공연을 가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들의 비싼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나듯 텔레비전에서 그들의 공연 실황 동영상이라도 보여 주는 날은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떠들썩하게 며칠 전부터 선전하고, 시청자들은 시청자대로 군부대 고기 회식 기다리듯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열 일 제쳐두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 3〜4분짜리 영상을 시청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하늘하늘한 목소리와 용모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고, 내가 진짜 음악적으로 사랑한 것은 비지스이다. 게다가 비지스 노래 가사를 공부하다 보면 좋은 숙어와 단어들이 아주 많이 나왔다. 오죽하면 나는 비지스를 내 영어 과외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비지스는 내 영어 과외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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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깁, 로빈 깁, 모리스 깁 삼형제로 구성된 비지스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호주로 이주해 그곳에서부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흔히 호주 출신의 그룹이라고 한다. 비지스라는 이름은 브라더 깁스 (Brother Gibbs, 깁 형제들)의 약자 B와 G를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쓰고 그걸 복수화 한 것이다. 굳이 그 뜻을 직역하자면 BG들이 된다. 비지스의 활동 기간이 1960년대로 거슬러 가기 때문에 나의 전 세대와 나의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가 비지스였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을 처음 접한 것은 그들이 1977년에 개봉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사운드트랙을 맡은 때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주인공 토니 마네로(Tony Manero) 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비지스는 디스코 열풍의 선봉장이 되었다. 앨범 속에서 ‘Staying Alive’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 등의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불러 대히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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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OST 앨범에서 ‘Staying Alive’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 등의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불러 대히트시켰다.
 

내 생각에 비지스의 역사를 쓴다면 《토요일 밤의 열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할 것 같다. 그 전에도 비지스는 굉장히 유명한 그룹이었지만 《토요일 밤의 열기》 이후 그들의 음악 세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로빈 깁의 때로 염소 소리 비슷한 자잘한 바이브레이션으로 서정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이던 전기와 달리 후기에는 맏형 배리 깁이 가성을 쓰는 창법으로 노래를 리드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트랙 이후에도 그들이 연이어 내놓은 ‘Tragedy’ ‘Too Much Heaven’ ‘Love You Inside Out’ 등이 그 예이다. 나도 이 노래들을 좋아해 하도 따라 부른 덕에 변성기가 지난 고등학교 시절에도 배리 깁의 가성을 기가 막히게 흉내 내어 부를 수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주변의 친구들이 나에게 몰려들어 “비지스처럼 노래해 보라”고 시키기도 하고 소풍 가면 늘 나에게 비지스 노래 부르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토요일 밤의 열기》로 인해 비지스가 나의 세대까지 사로잡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최초의 성공을 안겨준 노래는 그보다 10여 년 앞선 1966년에 호주에서 발매된 ‘Spicks and Specks’부터이다. 언뜻 비틀즈의 냄새도 조금 나는 ‘Spicks and Specks’는 호주에서 크게 성공했는데 세계적인 히트곡이 아니어서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제목의 뜻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몇 년 전 미국에 있는데 나의 중학교 1학년 영어 선생님이 한국에서 나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셨다. “얘, spicks and specks가 무슨 뜻이니?” 한국 시간으로 한밤중이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옛날 노래 듣다 생각나서 물어보신다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이런 표현도 처음 들어봐서 여기저기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Spicks’가 푸에르토리코인들을 비하하는 나쁜 말이라고도 하고, ‘Specks’가 멕시코인들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비지스는 그런 말을 노래 가사에 넣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그룹이 아니었다. 선생님도 그냥 됐다고 하시고 더 이상 물어볼 곳도 없어 그렇게 지나갔다.

얼마 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또다시 그 노래가 떠올라 여기저기 묻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친구 하나가 “혹시 호주식 영어의 슬랭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호주에서 히트한 노래니까 그도 그럴 듯했다. 그 친구가 당장 자신의 호주 출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즉각 답이 왔다.

“Spicks and Specks”는 보다 보편적인 영어로 “Bits and Pieces” 즉 산산조각 혹은 조각조각이라는 뜻이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영어 숙어나 단어를 많이 배웠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노래를 통해 영어를 배운다. 정말 배움의 길에는 왕도도 없고, 끝도 없다. 

 

출처 : 유튜브 채널 '마광'.  

 

비지스 中편에서 계속...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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