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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조'는 오페라를 보기 위해 일찍 퇴근한다 예술가의 도덕에 대하여
입력 : 2021.03.15

제가 출연 중인 부산MBC의 클래식 라디오 방송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녹음 전 대본을 살피던 안희성 아나운서께서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가르쳐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쉽게 설명하고자, 대화체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안은 안희성 아나운서, 정은 필자입니다.

: , 세 번째 음악은 다른 음원으로 바꾸고 가죠.

: 왜요,국장님?이 아리아가 오늘 방송에 딱 인걸요?

: 다른 연주자의 음반으로 찾아보면 되죠그 사람 성추행 스캔들 있었잖아요. 공중파에서 그런 사람의 음악을 틀면 안 되죠.

아뿔싸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너의 성추행 스캔들이 보도된 후였는데요. 수십 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동료와 후배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폭로자가 있어 클래식계의 빅 이슈였어요. 피해자 측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는 세계 3대 테너라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받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추악(醜惡)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난 2미국 음악인 조합(AGMA)측은 성명서를 통해 그가 영원히 미국 음악인 조합을 떠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처음부터 결백을 주장했던 그를 지지하는 분위기고요. 현재도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지휘와 오페라 공연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혹여 누군가는 예술은 예술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다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청취자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전하는 것이 목표인 라디오 방송에서만큼은 적어도 도덕적 결함이 없는 예술가의 노래를 들려드려야겠지요. 이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 중 확실한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빈센조 변호사의 승리하리라  

2021-03-13 (3).png 드라마 <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변호사로 일했던 송중기(빈센조 까사노 역)가 한국에 오며 벌어지는 일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빈센조> 공식 홈페이지

매회 오페라가 울려 퍼지는 드라마 '빈센조''빈 변' 송중기(빈센조 까사노 역)은 오페라를 사랑하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퇴근 후 실크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 오페라에 몰입하던 장면도 인상 깊었어요. 또 자신에게 유리한 재정 증인을 설득하던 장면에서 "오페라는 제 삶의 가장 큰 안식처입니다"라며 오페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장면에선가 흐른 아리아 한 소절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 중 송중기가 첫 번째 복수를 성공리에 마치고 사라지던 장면에 흐른 한 편의 아리아 때문인데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의 <투란도트>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앞서 말한 테너의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이가 아닐까 해서 다시 듣고 또 들었지만, 그의 음색이 맞았습니다. 저는 음악이 아닌, 그의 추문과 그로 인해 벌어졌던 그날의 일들이 떠올랐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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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초연 후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작품입니다. 푸치니는 자신의 오페라 중에서 이 작품만 빼고 다 버려도 좋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식 홈페이지

 
지금도 유튜브 등 여러 채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여전히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어요지금 이 순간에도 불특정 다수의 클릭 속에서 흐를 테지요. 다만 의문이 들 뿐입니다. 예술은 예술가가의 도덕성과 관계없는 것일까요. 누구의 것이든 예술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일까요


파렴치한 리스트의 인기는 아직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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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화가 프란츠 한스슈테글이 그린 리스트의 모습입니다. 리스트는 뛰어난 음악성 이외에 수많은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

서양 음악사의 여러 음악가 중에도 사회적 잣대에 반하는 행동으로 손가락질 받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기혼 여성들과 열애 즐겼던 프란츠 리스트, 결혼 생활 중에도 많은 여성들과 밀회 즐겼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이 떠오르는데요. 리스트의 경우 한 순간의 불장난으로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은 전적이 있습니다.

그는 18세기 파리에서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제작사 플레옐 가의 장남 카미유 플레옐의 아내였던 마리 모크 플레옐과 바람을 피웠거든요. 쇼팽이 없던 쇼팽의 아파트에서 불륜 현장을 들켜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파리 사교계에 퍼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마리 플레옐은 결국 남편과 이혼해, 평생 혼자 살았고요.

리스트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듯 평생 승승장구했지만, 마리 플레옐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이 역사 속에 묻히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스트의 부도덕한 행동을 이유로 그의 음악이 금지된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쇼팽은 리스트와 마리 플레옐의 사건 이후 리스트를 사람취급 하지 않았지만요. 그러나 리스트의 음악은 그때도 지금도 연주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예술가의 예술과 예술가의 도덕은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아쉬운 마음이지만, 분명 어느 정도는 그래왔던 것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생활에 대해 전적으로 다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다 누군가의 눈물과 폭로로 부도덕한 사건들이 드러나곤 하지요. 

 예전 제가 인터뷰 잡지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제 기사를 본 독자에게 항의 메일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업계에서도 소문이 안 좋은 작가를 왜 인터뷰했느냐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요. 저는 그 메일이 아니었다면, 그에 대한 추문을 전혀 알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한 쪽의 말만을 신뢰할 수 없기에, 조금 더 알아보았던 기억도 납니다. 다소 씁쓸하지만 그 분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직업군으로 넓혀봤을 때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숫자 3을 숫자 8로 위조해 교수 취직에 성공한 사례, 그 교수를 임용했던 대학의 총장이 발급받았던 가짜 박사 학위 증명서가 들통 난 사례, 농부의 땅에 이동식 컨테이너 하우스와 어린 나무 묘목을 올려 가짜 농부의 집을 연출한 사례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폭로되기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살고 있었던 것 처럼요.

얼마 전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아동 성범죄를 일으킨 작가의 책을 전량 회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분야에서 책임감 있게 일하는 분들이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여러 사건들이 사필귀정의 교훈대로 해결되길 희망합니다.

어쩌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예술가의 도덕성과 큰 관련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 생각은 변함 없습니다. 예술의 영역 또한 그렇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지요. 다만 학폭 논란이 있던 배우가 드라마에서 자진 하차하 듯, 자신의 실수가 있다면 떳떳하게 밝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드라마 <빈센조>에서 주인공 이름인 'VINCENZO'의 뜻은 이탈리어로 '승리한다' '정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승리할 대상도, 정복해야 할 지점도 결국 자신입니다. 자기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예술가에게 전하고 싶은 바입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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