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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예술이 남긴 증언, 영화 '쇠파리'의 OST 쇼스타코비치 '로망스'
입력 : 2021.03.12

퓰리처상 사진전이 특별 연장을 한다고 해서 부리나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사진 찍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보는 것은 좋아하는 터라 내심 반가웠습니다. 코로나 걱정에 마스크 단단히 조여 매고 일요일 첫 관람을 했어요. 시간제로 인원을 한정하는 데다 첫 관람이라 사진을 여유롭게 볼 수 있어 좋더군요.

함께 간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은 사진전에 별 관심은 안 보이고 관람 후 맛있는 거 먹자고 했더니 오로지 잿밥에만 관심을 보입니다음악과 그림은 꼭 공연전시장에 가서 봐야 제 맛이라고 항상 이야기하는데 사진도 마찬가지죠. 도록이나 컴퓨터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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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 앵콜전시 포스터(왼쪽)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피살된AP통신 소속 사진기자 안야 니드링하우스. 그는 독일 출신으로 지난 20여년 간 전쟁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왔고, 200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나는 셔터를 눌렀다.”-안야 니드링하우스 

 ‘사진가는 목격자인 동시에 기록자다라는 말도 실감 났습니다. 1942년에 신설된 퓰리처상 사진전은 세계 각국의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죠. 백인 영웅 베이브 루스에서 흑인 대통령 오바마까지, 한국 전쟁,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베를린 장벽, 구소련의 붕괴, 뉴욕 911 테러, 아이티 재해에 이르는 모든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1998년에 첫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진전이 됐죠. 

저에게 이번 사진전은 퓰리처상의 위상을 떠나 세계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줘서 참 의미 있었습니다. 2시간 동안 차분히 전시를 보고 아이에게 사진전을 본 기분이 어떠냐고 했더니 조금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사진이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파요. 난 사람들이 배고프거나 아프지 않고, 가족들과 자신의 나라에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행복인 것 같아요.”

전시 보기 전에는 억지로 따라오는가 싶었는데 아이의 말 한마디가 저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사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죠. 아들의 말처럼 그저 하루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무탈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일겁니다 

오랜만에 사진의 기록을 보고 오니 음악으로 시대의 기록을 남겼던 어느 작곡가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예요. 

 

해리포터를 닮은 축구광 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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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쇼스타코비치.

동그란 검은 안경을 걸친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합니다시사 주간지 타임(TIME)에 소방관 모자를 쓰고 등장했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축구란 대중의 발레라고 말하면서, 축구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평상시의 모습은 무뚝뚝한데 축구를 볼 때만은 완전히 해맑은 소년이 됐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축구를 소재로 발레모음곡 황금시대도 작곡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태어나 1975년까지 살면서 두 번에 걸쳐 발생했던 전쟁과 공산주의 사회 아래에 철저하게 탄압 당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어렸을 때 소련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구 소련이죠. 소련(蘇聯)은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19221230일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던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시절 많은 예술가들이 그 정권 아래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 작품으로 쓴 교향곡 1번은 독특한 시선으로 쓴 작품이라 정부의 환심도 사고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이후 교향곡 4번까지 당국의 검열을 피해 잘 버텨내고 있었고, 1932년에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까지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소련과 서방에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936년 국가 지도자인 스탈린은 이 오페라를 보고 크게 비난을 합니다. 스탈린은 자기 마음에 안 든다며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공연장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완전 미운털 박힌 거죠. 그 이후 <프라우다>라는 신문에서 이 오페라를 두고 음악이 아닌 혼돈이라며 매도하며 공격을 해요. 스탈린의 마음에 들지 않은 죄로 그의 오페라는 회수되고 더 이상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당국의 검열로 예술 작품의 생명이 꺼져버린 거죠. 게다가 그 당시의 분위기는 까닥 잘못했다가는 사형을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추방되는 상황이었어요. 예술가 입장에선 마음에 안 들어도 목숨을 부지하려면 적당히 당국의 비위를 맞춘 작품을 만들어야 했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니 참 슬픕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스탈린이나 레닌 같은 지도자들의 귀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지 여러모로 고민하며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공개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랍 속에 숨겨야 했던 그의 작품도 많았어요.

라흐마니노프나 스트라빈스키와는 달리 망명도 하지 않고 계속 러시아에 남아 음악 활동을 이어간 그는 교향곡을 15개나 만들며 자신의 음악을 지켜냅니다. 교향곡 한 곡 한 곡에 사연들이 많으니 현대 교향곡 좋아하는 분들은 한 곡씩 음미하면서 들어봐도 좋을 겁니다.

스탈린이 죽은 195335일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간 그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느껴집니다. 그는 스탈린 사망 후 22년을 더 살다가. 1975(69)의 나이로 마지막 작품 비올라 소나타를 작곡하고는 89일 모스크바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 중에서 영화음악 한 곡 들어보겠습니다. 1955년 봄에 알렉산드로 파이치머의 영화 <쇠파리>에 들어갈 음악 '로망스'를 작곡했습니다. 이 작품은 유명한 여류소설가 에델 릴리언 보이니치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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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스파이 정보원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쓴 소설인데, The Gadfly(쇠파리)의 다른 뜻은 쇠파리처럼 사람들을 괴롭히는 약간 삐딱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랍니다. 이 소설은 영문판 작품 중에서 소련에서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입니다.

전 요즘 쇼스타코비치가 궁금해져서 여러 책을 읽고 있는데요,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증언>이란 책도 읽어 보세요. 살아생전에 출판하지 말고 꼭 죽고 난 후 출간하라고 부탁했다는데, 읽을수록 그의 절절했던 시간들이 느껴집니다. 두껍고 어렵지만 쇼스타코비치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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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의 사진 안에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안에도 그 시절의 시간과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바이올린 기돈 크레머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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