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topp 로고
칼럼진
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故 김현식이 유언처럼 남긴 그 말 김현식 上 <내 사랑 내 곁에>
입력 : 2021.03.08

1992년 여름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군 소집 영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원래 술이 약한데 이때 한 2〜3년간 악으로 술을 좀 마셨다.

무덥던 8월의 토요일 친구 몇 명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가볍게 시작했던 술자리는 청하로 바뀌었다. 청하는 그 당시 새로 출시된 제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술이다. 그날 처음 마셨는데 달달한 것이 잘도 넘어갔다. 술을 마시던 그 그룹에는 내가 좋아하던 아가씨가 같이 있었다. 고백도 못 하고 나는 그 앞에서 애꿎은 청하만 계속 마셔댔다.

청하는 막판에 갑자기 취기가 올라온다더니 술자리가 파하고 방향이 같은 친구 서너 명과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세상이 아련해지며 내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걸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버스를 기다리며 다짐했다.

‘술에 취해 길에서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경멸했던가? 절대 버스 안에서 흔들리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버스를 타고 내렸다.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언덕길은 길고 험했다. 직선으로 올라가도 긴 길을 갈지자로 걸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또다시 이를 악물고 중심을 잡았다.

부모님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고 꼿꼿이 걸어 2층 내 방으로 갔다. 세상이 무너져도 하루 두 번 세안의 원칙을 고수하는 나는 그 와중에 미식거리는 속을 달래며 씻고 자리에 누워 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동생이 “아, 시끄러”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벌떡 깨어났다. 자면서 뭐라 잠꼬대를 했나 보다.

다시 자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동네 어느 집에서 부부싸움을 대판 벌이는 소리가 났다. 여름이라 집집마다 창문을 열어놓아 욕설이 조용한 새벽에 그대로 생중계되었다. 급기야 남편이 부인을 때리는 것 같았다. 자려던 나와 내 동생은 다시 일어나 경찰을 부르려고 하던 중 싸움이 끝났다.

이미 조용해졌는데 어느 집인지도 모르면서 신고를 할 수 없어 다시금 자려 누우며 동생이 무심결에 우리 방에 있던 작은 텔레비전을 켰다. 그림이 보이기도 전에 목소리부터 들리던 흑백 텔레비전이었다.

처음 들려오는 말이 “황영조 선수 이만하면 우승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에이? 이게 무슨 소리야?' 그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몬주익 그 영광의 길로 들어가는 마지막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잠을 설치고 온 식구가 일어나 황영조 선수가 골인하는 장면을 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청하 마시고 취하면 황영조가 우승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commonC39G198A.jpg
1992년 8월 제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42.195㎞ 풀코스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완주하며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황영조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제패는 손기정 선수 이후 56년 만의 쾌거였다. ⓒ국가기록원

 

2년 후 비슷한 멤버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다 내가 외쳤다. “나 오늘 청하 마시고 취해야 내일 황영조가 우승해.” 나의 떠벌리는 말을 익히 들어 알던 친구들은 “여기 청하 주세요” 하고 외쳤다. 나는 그날 2년 전 만큼은 아니었지만 정신이 알딸딸한 상태로 집으로 갔고, 그다음 날 황영조는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황영조 우승을 두 번 시키면서 나는 체력 소모가 많아 그가 은퇴하면서 나도 술자리를 은퇴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 동생은 왜 그 1992년 여름날 밤 나에게 시끄럽다고 소리를 쳤을까? 황영조가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고 곧이어 열린 폐막식까지 다 끝난 뒤 “내가 아까 뭐라 그랬는데 시끄럽다 그랬니?” 하고 물었다. “막 노래를 하더라.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이다.

뭔가 중얼거렸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노래를 불렀을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 그 당시 제일 핫한 노래를 불렀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우리 집 언덕을 갈지자로 올라가면서도 그 노래를 불렀다.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결국 고백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며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오는 길이 낯설고 먼 것이었을까 아니면 가뜩이나 긴 언덕길을 갈지자로 올라가려니 늘 다니던 길이 멀기만 했던 것이었을까?

 

유언처럼 남긴 앨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commonOOLZQIW8.jpg

10여 년 짧은 세월 대한민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리고 활동하다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는 200만 장이 팔려나간 그의 최대 히트곡이다. 그의 목소리는 원래 미성은 아니지만 박력 있고 고음도 잘 올라가는 매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후에 김현식의 목소리는 흡연과 음주로 인해 거칠게 변해 갈기갈기 갈라졌다. 이 노래를 녹음할 무렵에는 간경화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앨범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종종 병원을 탈출해 앨범 작업을 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만 이혼하고 아들은 아내가 키웠다.

그들 부부의 이야기를 모르지만 그게 아내의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현식의 5집 앨범에 있는 <할렐루야>는 기독교 신자였던 그의 전 부인이 불러달라고 해서 녹음한 것이다. 그녀는 김현식이 종교의 힘을 빌어서라도 술과 담배를 끊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약물과 알코올로 점철된 생활이 예술가로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어린 아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아내와 아들은 떠나고, 사랑하는 후배 유재하까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더욱 술과 담배에 의존하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내 사랑 내 곁에>가 김현식의 인생이 담긴 유언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때로 이별을 직감할 때가 있다. 평소처럼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평소처럼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불현듯 스치는 직감은 상대방이 웃으며 평소처럼 이야기해도 떠나지 않고 그 웃음 뒤에 그림자로 있다. 노래 속의 ‘나’ 역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나’도 모르는 척하면 이별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욕심과 미련 속에 ‘당신’을 잡아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신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다.' 당신은 떠났다.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시간이 멀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약속했던 그대가’ 온다고 했던 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뜻일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예전의 약속도 기억도 다 흐릿해졌다는 이야길까? 그것도 아니면 긴 세월 인생이 먼 길 즉 먼 시간을 걸어와 이제 내 영혼이 떠나온 집으로 힘없이 터벅터벅 향해 가고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일까?

‘약속했던 그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 서서 새로 돋아나는 여린 가지를 바라본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지만, ‘이젠 진짜 혼자 내 길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가 되니 ‘그대 기억’이 더욱 아프게 난다. 그는 목 놓아 우는 것 같다.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

그러나 ‘그대’는 답이 없다. 그는 또다시 울먹인다.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돈 맥클레인이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을 주제로 만든 노래 ‘Vincent’에 그런 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은 애초에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었어요(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commonFKCSKL8B.jpg

<내 사랑 내 곁에>의 화자는 여린 가지보다도 더 여린 영혼인 것 같다. 그는 비틀거리며 버겁게 이 세상을 살다 안길 곳을 찾지 못하고 아픔만을 간직하고 떠났다.

 

김현식의 마지막 노래, 그리고 베토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은 베토벤이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한 곡이다. 몇 년 앞서 13번을 초연할 때 사용했던 마지막 악장이 당시로서는 너무 실험적이어서 평이 좋지 않아 다시 썼다. 그는 끝내 새로 쓴 악장이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있었다 해도 듣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죽기 직전 베토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청력을 잃었다. 김현식의 마지막 노래를 들을 때면 베토벤의 마지막 악장이 떠오른다. 베토벤은 만신창이가 된 육신의 귀로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지만 영혼 속에서 흐르는 울림을 하나하나 붙잡아 이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가수의 성대가 망가졌다는 것은 작곡가의 귀가 망가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김현식의 성대는 어떻게 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까 싶게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영혼 속에서 흐르던 회한과 그리움과 간절함을 붙잡아 세상 속으로 게워냈다.

베토벤의 마지막 악장을 들으며 ‘아,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사람 속에 귀가 멀쩡한 내가 듣지 못하던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한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들으며 ‘아, 이렇게 망가진 목소리 속에서 목소리가 멀쩡한 내가 느껴보지 못한 영혼의 눈물이 흘러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거친 소리로 토하듯 떠나간 사랑을 부르다 김현식 자신이 떠나갔다. 우리는 그가 더 이상 머물지 않는 이 세상에 남아 아직도 그 절규를 듣고 있다. 김현식도 베토벤이 그랬던 것처럼 <내 사랑 내 곁에>가 사랑받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김현식 下 편으로 이어집니다.

MBC에서 방영한 故 김현식 20주기 추모 특집 '비처럼 음악처럼' 중

故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생전 마지막 녹음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