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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희대의 바람둥이 작곡가가 ‘두고두고 못다 한 말' 이봉조下 <떠날 때는 말없이>
입력 : 2021.02.12
1970년대 MBC의 ‘여대영과 그의 악단’, KBS의 ‘김강섭과 그의 악단’과 더불어 ‘아무개와 그의 악단’의 트로이카를 이뤘던 TBC의 ’이봉조와 그의 악단‘의 이봉조는 TBC 간판 쇼 프로그램이었던 <쇼쇼쇼>를 비롯한 모든 음악 프로의 반주를 맡았고 편곡도 자주 했다. 작곡가로서 수많은 명곡을 썼으며 요즘으로 치면 기획자로 현미, 정훈희, 김추자 등의 빅 스타를 발굴했다.


이봉조 上편에 이어서...

이봉조가 매년 TBC-TV 신년 특집 쇼에 나와 부르던 <떡국>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봉조 이외의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봉조가 새해 말고 다른 날 나와 부르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신은 공평한가 보다.

작곡과 재즈 색소폰 연주에서 천재적 재질을 갖고 있던 이봉조는 걸걸한 목소리에 그저 음치보다 조금 괜찮은 노래 실력을 지녔다. 하지만 ‘뜩국 맛이 그르케도’ 하는 경상도 억양을 구수하게 섞어 부르는 노래가 듣기 좋아 우리 삼형제는 신년만 되면 언제 이봉조가 나와 <떡국>을 부를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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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과 재즈 색소폰 연주에서 천재적 재질을 갖고 있던 이봉조. ⓒSBS 화면 캡처
  

이봉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우리 형제들은 가끔 <떡국> 이야기를 하며 아마 그 노래를 아직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튜브에서 <떡국>을 찾아보니 웬일! 이봉조가 현미, 정훈희와 함께 녹음한 스튜디오 버전까지 있다.

우리만 아는 노래로 생각하고 애정을 가졌었는데 생각보다 꽤 유명한 곡이었나 보다.

 

보고 싶은 그 얼굴 이봉조, 하지만 '떠날 때는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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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은 대학 때 외삼촌 댁에서 봤던 이봉조 추모특집 <가요무대> 비디오에서 처음 들었다. 지금 생각에 최성수가 불렀던 것 같다. 최성수는 내가 즐겨 듣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날 노래를 아주 잘 불렀던 기억이 난다. 영화 주제가였으니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북으로 도주해 그곳에서 역시 간첩 혐의로 처형된 연인 이강국을 그리워하는 김수임의 마음을 그린 노래인 것 같다.

<가요무대>의 이봉조 추모특집의 피날레는 역시 이봉조와의 사이에 자식을 둘이나 둔 현미가 장식했다. 그녀가 그날 오열하며 부른 노래는 <떠날 때는 말없이>였다. 이 노래 역시 <가요무대>에서 그날 현미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듣는 즉시 매료되어 지금도 나의 애창곡 중 하나이다.

당대의 스타 커플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동명 영화의 주제가를 당대의 스타 커플 이봉조-현미 콤비가 만들어 불렀다. 작사는 유호이다. 유호는 유명한 극작가 겸, 방송작가, 시나리오작가, 작사가이다. 자신이 집필한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가 가사를 늘 직접 쓰곤 했는데 하나같이 걸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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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피날레로 정해지고, <가요무대>의 제목이 <떠날 때는 말없이- 이봉조 특집>으로 정해진 것은 유호가 이봉조의 인생을 미리 보고 쓴 것처럼 이 가사와 이봉조의 인생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미와의 만남, 이별 그리고 죽음이 노래에 모두 들어있다.

시트콤의 원조인 미국의 유명한 <왈가닥 루시(I Love Lucy)>의 주인공 루실 볼과 데지 아르네즈는 시트콤 시작할 당시 실제 부부였다. 후에 이혼을 했지만 데지는 늘 자식들에게 농담으로 “너희 엄마랑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게 아냐. 처음 만나고 한 5분쯤 있다가 사랑에 빠졌지”라고 했다. 만나자마자 불같이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만나는 순간부터 불꽃이 튀더라는 경우가 많다. “그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만났을 때 똑같은 순간에 똑같은 마음이 달빛에 젖은 채 밤새 불렀죠.” 그렇게 현미와 이봉조는 사랑에 빠졌다. 똑같은 순간에 둘이 한마음이 되어 밤새 달빛에 젖어가며 불같은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노래 후반부에서 이제 그 사랑은 떠나고 달빛 대신 그는 비에 젖어 ‘아, 그 밤이 꿈이었나’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말한다. ‘두고두고 못다 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2절은 후반부만 다른데 그건 마치 남겨진 현미의 노래인 것 같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 어이 달래라고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떠났는가.’

본부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현미는 이봉조와 헤어지고 그 후로 13년 그녀는 이봉조가 본부인에게 돌아간 줄로만 알았다. 마지막 그를 만났을 때 그가 현미를 그리며 홀로 13년을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이 늙고 병들어 틀니를 끼고 색소폰을 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재결합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처 합치기도 전에 이봉조는 혼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떠날 때는 말없이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정훈희, 김추자의 대마초 파동과 함께 묻힌 곡  

가수 현미가 라이브로 부르는 <밤안개>.

<밤안개>는 내가 즐겨 듣는 버전이 몇 가지 있다. 현미가 라이브로 부르는 것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2012년에 올라왔는데 언제 쩍 영상인지 흑백이다. 현미의 모습이 나이가 지긋하다. 현미의 목소리 상태도 최고고 라이브에서 흥이 돋을 대로 돋아 스캣까지 넣어가며 소울풍의 느낌을 가미해 신나게 노래를 불러제낀다.

윤복희가 1967년에 녹음한 <밤안개>도 좋다. 현미의 조카인 노사연도 신인 시절 종종 기타를 치며 <밤안개>를 불렀는데 유튜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OST에 삽입된 스팅이 부른 ‘It’s a Lonesome Old Town‘은 밤에 불 끄고 침대에 누워 잘 듣는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봉조의 노래 중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소월의 시에 이봉조가 곡을 붙이고 이은하가 부른 <초혼>이다. 처음 들을 때부터 홀딱 반했는데 자주 부르지도 않고 흐지부지 사라졌다.

<무인도>는 정훈희와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디바였던 김추자가 칠레 가요제에 나가 부르려다 여러 사정으로 정훈희가 출전했다. 현미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정훈희와 이봉조의 스캔들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 ‘헛소문’을 잠재우고자 정훈희가 나가도록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정훈희는 현미에게 “언니 나 믿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칠레로 떠났다.

김추자의 버전도 몇 번 들었는데 내게는 정훈희의 목소리가 더 귀에 익다. 칠레 가요제 몇 개월 후인 1975년 12월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크게 터져 정훈희, 김추자 등을 비롯한 톱 가수들이 무더기로 출연 정지를 당하면서 한동안 <무인도>도 방송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조기 은퇴한 김추자와 달리 정훈희는 성공적으로 재기해 지금까지 노래를 계속하면서 <무인도>를 자주 불렀다.

 

“이건 훈희 겁니다"... “언니 나 믿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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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와 이봉조.

이봉조는 자신이 발굴해 키우고 여러 차례 함께 가요제에 나가 상을 타온 정훈희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애정이 남달랐나 보다. 그녀가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한 중에 <꽃밭에서>라는 노래를 써 놓고 그녀가 무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노래는 1979년 TBC 세계가요제에서 패티김이 게스트로 출연해 <이렇게 좋은 날>이란 제목으로 한 번 불렀다. 패티김이 노래를 탐내 녹음하고 싶어 했고, 주변에서도 이런 고음을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있을 때 녹음하라고 권했지만 이봉조는 패티김에게 “이건 훈희 겁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떠날 때는 말없이>는 역시 현미의 노래가 최고이다. 하지만 의외로 박인희가 부른 것도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현미처럼 다이나믹하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박인희가 예전에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낭송해 톱 가수의 노래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도 마치 시를 낭송하듯 그녀의 작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부른다. ‘이 노래에 이런 분위기도 있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토냐와 라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가슴을 움켜쥐고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 지바고처럼 두 여인 사이에서 살다 말없이 떠나버린 이봉조. 혹자는 두 여인 모두 사랑했을 것이라 하고, 혹자는 두 여인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음악 세계를 흠모하는 팬으로서 단 하나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이봉조가 가슴을 움켜쥐고 세상을 떠나면서 ‘두고두고 못다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나오지 못한 절절한 한 편의 노래가 아닐까? 들어봤으면. 

가수 현미가 부르는 <떠날 때는 말없이>

가수 현미와 정훈희가 함께 부른 <떡국>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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