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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다.
베토벤의 히로인, 레오노레 혹은 피델리오 대세는 우먼파워
입력 : 2021.02.07

지금 지구촌의 대세는 여성입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사회 이후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여성의 힘이 빛나고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일상 속에서도 여성 역할에 대한 변화를 종종 눈치 챌 수 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체감했던 변화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서사였어요.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 속 주인공들은 왕자가 공주를 구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었지만, 요즘은 그런 작품을 찾아보기도 어려우니까요.       

제가 여성 캐릭터의 변화를 인상 깊게 느꼈던 애니메이션은 2017년 개봉했던 디즈니의 <카 3> 시리즈인데요. 지구촌 모든 아이들의 사랑을 받던 슈퍼스타 맥퀸, 물론 남성 캐릭터입니다. 그가 최첨단 레이스 카인 젝슨 스톰의 등장으로 인해 왕년의 기량을 뽐내지 못하던 상황이 벌어졌고요. 그러던 어느 날, 구세주 같은 트레이너가 등장합니다. 여성 캐릭터인 레이스 카 트레이너 크루즈 라미네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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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카3>.

크루즈 라미네즈는 늘 레이스 카로 성공하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여성 레이스 카가 없었던 극중 내용에 따라 그는 레이스 카의 트레이너로 일했고요. 그러다 맥퀸을 맡게 되고, 여러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맥퀸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경기에서 맥퀸이 자신의 등번호 97번을 크루즈 라미네즈에게 넘겨주는 모습이었어요. 지금부터 여성의 시대라는 메시지를 주면서요. 경기장을 씽씽 달리던 크루즈 라미네즈는 기쁘고 행복한 표정으로 레이스 카로 새 삶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기승전결은 주요 관람 층인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미 어른인 모두에게도 생각해볼 거리를 준 것은 아닌가 싶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라는 메시지를 듣는 듯 했거든요.      


히로인에 반한 베토벤        

루트피비 판 베토벤은 크루즈 라미네즈 같은 여성 캐릭터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순종적이고 약한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강인하고 주도적인 여성의 활약에 푹 빠졌어요. 그녀의 이름은 레오노레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한 채 여러 어려움에 맞서 싸운 캐릭터인데요.

실제로 17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레오노레 혹은 결혼한 사랑>의 주인공이에요. 실제로 베토벤이 살던 18세기의 유럽에서 여성 영웅의 이야기는 인기가 없었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여성의 역할은 남성에게 순종하고 자녀를 잘 돌보는 등의 그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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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순종적이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에 반해서 최초이자 최후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

사실 베토벤은 늘 오페라를 써보고 싶었지만, 마음에 드는 원작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페라를 쓰지 않던 상황이었는데요. 당시의 오페라들은 대부분 사랑과 배신을 주제로 한, 마치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을 주로 올리고 있었는데요.

도덕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그런 상황들을 경멸했던 베토벤은 뻔한 오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요. 아내와 바람난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이는 이야기보다, 더 고귀한 이야기가 자신의 음악에 어울린다고 여겼거든요. 베토벤은 그런 예술가였습니다. 이상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래서 인생에 더 힘든 날이 많았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본을 만날 때까지 오페라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모차르트의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썼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오페라에 대한 레슨을 2년간 받았고요. 오페라에 대한 베토벤의 열정에 감탄한 살리에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오페라의 많은 부분을 가르쳐주곤 했어요. 살리에리는 베토벤이 쓰는 습작 오페라에 대해서 여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살리에리는 빈의 노익장 음악가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는데요. 참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로 온 이방인이었는데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직접 살리에리를 스카우트해서, 자신의 궁정 음악가로 모셔온 경우에요. 그런 극진한 명분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살리에리는 평생 빈에 살면서도 빈의 언어를 익히지 않았다고 해요. 때문에 베토벤과 살리에리는 원활한 대화를 이끌기 어려웠는데요. 오페라 레슨 시간마다 그들은 짧은 독일어와 이탈리아 어로 두 거장 음악가가 대화를 나눴다고 해요. 재미있죠?

또 베토벤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살해범이라는 소문을 듣고,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스승과 제자, 때로는 동료 음악가로 살리에리를 가까이에서 만나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겠지요. 참 모차르트의 진짜 살해범은 프리메이슨이라는 학계의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 또한 증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슬픈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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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오>는 초연 이후 연이어 실패를 맛 본 작품입니다. 당시 전쟁 이슈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영향이 큰데요. 베토벤은 이 작품에 대해 슬픈 아이라는 의견을 남긴 바 있습니다. ⓒ프랑스국립박물관

오랫동안 오페라 공부도 했겠다, 마음에 드는 대본도 찾았겠다! 베토벤은 레오노레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창작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베토벤이 남긴 단 한 편의 오페라 <피델리오>가 탄생했고요. 피델리오는 극 중 레오노레가 남자로 변신한 후 사용한 이름인데요. 이름의 뜻도 남다릅니다. 독일어로 지조 있는 남자라고 풀이할 수 있고요, 충실하다는 의미의 영단어  Fidelity로도 확대할 수 있어요. 즉 레오노레는 남편을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랑에 충실하는 캐릭터인거죠.      

베토벤이 그토록 기다려 온 오페라 작품 <피델리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실패했습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침공한 지 며칠 후에 초연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요. 빈의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 군을 피해 피신을 간 상황이었거든요.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전쟁 중 음악회를 열였다는 것은 마치 팬데믹 와중에 연주회를 개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실내 공연장에서의 연주를 감행하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마음이 좋지는 않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의 공연이라니,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아 다시 베토벤의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베토벤이 전시 중 초연을 강행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지만, 여러 요인으로 인해 사랑받지 못하게 된 <피델리오>. 심지어 베토벤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베토벤은 비운의 오페라에 대해 “슬픈 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슬퍼하는 아이, 어딘지 모르게 참 처량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이들은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그럴 때 행복해보이니까요.      

여러 심리적 기저로 인해 베토벤은 더 더욱 망가진 오페라에 집착하게 되었고요. 총 3번에 걸쳐 대대적인 개편을 감행합니다. 그래서 <피델리오>는 세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요. 첫 공연의 버전, 두 번째 버전, 최종 버전입니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버전은 전쟁으로 인해 초연이 늦어졌고요. 오페라의 모든 버전이 수정된 것은 아니고요. 가령 3악장이던 것을 2악장으로, 서곡은 모두 다르게, 인물들의 대사를 순화하는 등 수준이라고 해요. 

간략하게 베토벤의 슬픈 아이, <피델리오>의 줄거리를 소개해드릴께요. 스페인 세비야의 한 감옥에 억울하게 끌려간 남편 플로레스탄이 죽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플로레스탄의 아내 레오노레는 자신의 남편이 죽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목숨을 건 남편 탈옥 프로젝트를 위해 레오노레는 남장을 하고 피델리오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레오노레 아니 피델리오의 계획처럼 무사히 감옥에 취직하고, 호시탐탐 남편과 도망칠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 형무소장이 자신의 남편을 사형시키려 하는 계획을 알게 됩니다. 다급해진 피델리오 아니 레오노레는 서둘러 탈출하려 하지만,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 상황. 그때 운명처럼 총리 대신이 감옥을 방문하는 이벤트가 펼쳐지고, 어린 시절 죽마고우였던 자신의 친구 플로레스탄을 구해줍니다. 이렇게 두 부부는 운명처럼 다시 만나고, 행복하게 삽니다! 이런 내용이에요.      

 

250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지난해 12월 17일은 베토벤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년이 되는 날입니다. 맞아요, 그의 생일입니다.  위대한 악성의 특별한 생일을 맞아 지구촌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수많은 음악회는 대부분 취소되었고요. 특히 그의 고향인 독일 본과 두 번 째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1년 내내 아름다운 베토벤의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는 페스티벌도 사라졌고요. 그러나 예술보다 안전이 우선이죠. 그가 남긴 음악들은 모두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참 베토벤의 세례 증명서에 기록된 생일은 12월 17일인데요. 당시 관습은 아기가 태어나면 24시간 안에 세례를 받는 것이 관례였어요. 때문에 베토벤의 진짜 생일은 12월 16일로 추정합니다. 안타까운 그의 사연 중 하나는 빗나간 부정(父情)으로 벌어진 출생의 비밀인데요. 당시 유럽을 들썩였던 신동 모차르트를 롤 모델로 자신의 아들을 키우려던 베토벤의 아버지는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들의 나이를 2살이나 어리게 소개한거죠. 누구든 어린 아이가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하면서 감탄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에요. 

더 안타까운 사실은 불혹이 돼서야 베토벤은 자신의 진짜 나이를 알았다고 해요. 베토벤이 친한 친구에게 썼던 편지에 기록된 팩트입니다.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나이의 비밀을 누군가 알려주었거나, 자신의 세례 증명서를 성인이 된 후 찾아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겠지요. 17세에 고향집을 떠나 빈으로 유학 갔던 베토벤이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던 마음,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부모는 부모입니다. 분명 베토벤의 아버지도 베토벤을 사랑하고 아꼈을 텐데요. 보편적인 방식이 아니었을 지라도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베토벤과 아버지의 사연을 통해 저 또한 반성하게 됩니다. 나를 서운하게 했던 부모님일지라도, 살갑게 한 번 더 안아드릴 수 있는 용기를 내보고 싶어지네요! 연말이기도 하고, 또 모두가 마음고생하며 보낸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베토벤의 <피델리오>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아리아 ‘말할 수 없는 이 기쁨’을 소개하며 인사드릴께요. 억울하게 감옥으로 끌려간 남편을 구하러 간 레오노레 아니 피델리오가 감옥에서 몰래 남편을 알아보고 만나는 장면이에요. “남편의 품에 다시 안기다니!, 레오노레를 다시 안다니! 고통의 깊은 어둠으로부터 기쁨이 날아올랐도다!”라며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이중창을 부릅니다. 밝고 경쾌해요. 기분이 막 좋아지는 노래입니다.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1막 중 ‘말할 수 없는 이 기쁨’.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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