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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산울림 下 <청춘>
입력 : 2020.12.25

1981년 군에 갔던 두 동생이 돌아오면서 산울림은 7집을 발표한다. 7집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울림 앨범이다. 우리나라 녹음 기술이 좋아진 것인지 산울림이 돈을 벌어 녹음기기를 좋은 것을 사용한 것인지 예전의 촌스럽던 음향이 세련되기 시작했다. 

산울림의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면서도 음치들이 노래 부르는 것 같다고 하던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그 불안한 음정이 좋아지고 음정이 불안해서 좋기 시작했다. <독백> 하나만 들어도 음정이 완전히 틀리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지만 그 부분들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 

이 앨범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산울림 본연의 매력이 있는 <가지마오>였다. 하지만 <독백> <청춘> <하얀 밤> <하얀 달> <노모>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다. 이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산울림의 음악 세계가 예전의 비트 강한 실험적 곡들에서 점점 인생에 대한 고찰로 바뀌는 걸 느꼈다. 

10집의 <너의 의미>, 11집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등이 그렇다. 사족을 붙이면 <너의 의미>의 오리지널 가수는 아이유가 아니라 산울림이다. 이 노래 처음 나올 때 아이유는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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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젊은 세대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김창완이 TV에 나와서 이야기한 <청춘>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원래 가사가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이었는데 ‘갈 테면 가라지’가 심의에 걸려 반려되었다. 그래서 개사한 것이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다. 

심의 과정에서 반려되어 개사했으면 애초에 음반이 나올 때는 ‘언젠간 가겠지’로 나왔을 터인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계속 ‘갈 테면 가라지’로 불렀다. 몇 년 전 《응답하라 1988》에 <청춘>이 삽입되었을 때 처음 ‘갈 테면 가라지’가 아니라 ‘언젠간 가겠지’인 것을 알았다. 김창완도 TV에서 그랬고 내 생각에도 갈 테면 가라지가 훨씬 노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하긴 원래 가사이니 나머지 가사와 더 잘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예술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들과 권력에 붙은 예술인들이 바꾸라고 해서 바꾼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외설, 왜색, 소비 조장, 위화감 조성, 하다못해 대통령이 텔레비전 보다 한마디했다 등의 이유로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개사 명령을 내리고, 영화는 난도질당했다. 

어떨 때는 건전가요 목록에 올랐던 노래가 데모가로 사용되자 갑자기 불온가요가 되어 금지곡이 되는 일도 있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그랬다. <아침이슬> 이후 김민기의 그 어떤 노래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모든 곡을 양희은 작사, 작곡 등으로 심의를 받아야 했다. <청춘>은 가사 한 소절 고쳐 세상의 빛을 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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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한국에서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에서 일할 때 할리우드의 유명한 변호사와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반은 한국 영화가 막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할리우드 변호사는 나에게 한국의 영화가 갑자기 일취월장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검열이 사라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검열이 사라진 빈자리를 그간 외곽에 숨어 눈치만 보던 상상력이 달려들어 메웠다. 정권이 검열하고 열성분자가 선동하는 여론이 생매장시키고, 예술이 알아서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맞추면 예술은 퇴보한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7집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걸작 <노모>의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 읽어보면 이렇게 절절한 시가 없다. 나는 이 노래를 일부러 잘 듣지 않는다. 마치 방금 숨을 거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쓴 것 같은 가사가 무거워 함부로 듣기 겁난다

하루하루 약해지는 부모님을 보면 흩어진 시간을 잡으려 애써도지나간 시간들은 재 되어 바람에날아갈 뿐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데려오고, 키워 주셨다. 그분들을 잘 떠나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지만 자식은 늘 부모가 우리보다 강하고 우리를 보호해 주길 원한다. 그래서 자식 사랑은 본능이지만 효는 도()인가보다

어머니에 관한 노래 중에 김창완 독집 기타가 있는 수필에 들어 있는 <어머니와 고등어>는 요즘도 운동하며 들을 정도로 좋아한다. 내가 워낙 고등어를 좋아해서 그런지 이 노래에 마음이 끌린다. 우리의 타령 같기도 하고 미국 애팔래치아 지방 음악(Appalachian Music)이나 컨트리뮤직 기분도 난다.

 

가끔 노래도 꽤 잘하는 배우, 김창완  

1981년 7집 이후로 산울림의 활동이 흐지부지되기 시작했다. 동생들이 사회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창완 혼자 산울림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김창완이 드라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김창완을 ‘가끔 노래도 꽤 잘하는 배우’로 알게 되었다. 

1997년 오랜만에 삼형제가 다시 뭉쳐 내놓은 것이 13집이다. 이 앨범에서 단연 나의 원픽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이다. 한동안 침울한 노래를 부르던 김창완이 예전으로 회귀한 듯했다. 나는 서울의 한 학원에서 영어회화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내가 가르치던 학생에게 영어로 “오늘 (교통편) 뭐 타고 왔어요?” 하고 물었더니 그 학생이 “어로바이(오토바이를 영어식으로 굴려서 발음한 것) 타고 왔다”고 영어로 대답했다. 오토바이는 영어가 아니다. 오토매틱 바이시클(자동 자전거)이라는 말을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발음하기 편하게 줄인 것이다. 

영어로는 모토사이클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로바이란 말은 있지도 않은 합성어를 쓸데없이 힘껏 혀를 굴려 발음한 것이다. 산울림은 오토바이도 아니고 ‘오도바이, 오도바이’ 해가며 노래를 해서 더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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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위)'과 '하얀거탑(아래)'에서 열연하는 김창완.

김창완과 김창훈이 다른 이들에게 곡을 써 줘서 히트한 것들도 꽤 많다. 유명한 것만 몇 꼽아보면 우선 1979년에 나온 노고지리의 <찻잔>을 들 수 있다. 쌍둥이 형제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목소리가 김창완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탁하긴 하지만 비슷해서 처음 들을 때 산울림인줄 알았다

그때는 FM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요를 잘 틀어주지 않았다. TBC-FM에서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오후의 희망가요였던가 하는 배우 정소녀가 진행하는 프로가 있었다. 드문 가요프로였다. 어느 애청자가 노고지리의 <찻잔>을 신청하면서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하는 <찻잔>의 가사 전체를 예쁘게 적어 보냈다

애청자가 시를 적어 보냈다 생각한 정소녀는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신청곡 보내드립니다. 노고지리의 찻잔하고 음악을 틀었더니 방금 낭송한 시가 노래로 그대로 나왔다. 내가 그 방송을 직접 듣진 못했고 나중에 정소녀 자신이 방송에 나와 막 웃으며 그 이야기를 했다.

<회상>1984년에 나온 산울림 8집에 실린 노래로 <독백>과 함께 김창훈이 작곡한 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1987년 임지훈이 그의 1집에서 불렀다. 산울림의 연주보다도 즐겨 들을 정도로 훌륭하다. 임지훈의 목소리가 호소력이 있고 음정도 정확하고 무엇보다 노래를 참 잘 부른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좋다

1984년 이은하가 발표한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은 가사와 리듬이 서로 따로 놀아 처음 얼핏 들을 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시집을 펼쳐읽는거스으은하고 노래를 부르니 누가 시집을 가는 건가 생각했다. 나중에 잘 들어보니 지금 시집(詩集)’ 한 권을 펼쳐 읽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은하 자신도 악보를 읽는 실력이 꽤 된다고 자부했는데 김창완의 곡은 처음 악보를 보고 정신이 없었다고 방송에서 고백했다. 나는 이은하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이 노래를 매우 좋아했다

김창훈은 김완선의 데뷔곡 <오늘 밤>을 작곡했다. 열일곱 살의 김완선이 백분쇼에 나와 피아노를 치며 <오늘 밤>의 첫 몇 소절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뿅 가던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완선 신드롬의 시작이 김창훈의 손에서 나왔다. 김창완은 곡을 써 준 것뿐 아니라 후배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

노고지리, 이치현과 벗님들,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장기하는 내가 산울림만큼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의 기발한 노래들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그러게 왜 그랬어>이다.  

이 글을 쓰며 산울림의 노래들을 1집부터 들었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귀에 박혔다. 노벨 문학상은 시상식에 나타나지도 않는 밥 딜런에게 갈 것이 아니었다. 김창완에게 가야 했다. 예전에 산울림의 불안한 음정과 함께 내 귀에 거슬리던 것이 전자오르간 소리였다. 

어려서 길을 가면 거리의 악사들이 돈 받는 바구니를 땅에 놓고 녹음해 온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하곤 했다. 산울림 초창기 앨범에도 이 전자오르간 소리가 많이 나온다. 오랜만에 들으니 왜 그리도 그 소리가 정겨운지 모르겠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다시 돌아온 듯, 나의 어린 시절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사운드가 점점 세련되어 가는 후반 앨범보다도 연주는 조금 미숙하지만 익살스럽기도 하고 촌철살인의 메시지도 주는 가사와 도발적인 음악으로 가득 찬 초창기 음반들이 진정 산울림의 아마추어 정신과 실험 정신을 대변하는 것 같아 좋았다. 

산울림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난 너무 어려 사회적 반향을 잘 느끼지 못했다. 3분 동안 전주만 나오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지금 들어도 섬뜩한데 그 당시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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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보컬, 기타), 김창훈(세컨드기타, 베이스, 건반), 김창익(드럼)으로 구성된 그룹 산울림.

산울림은 2008년 막내 김창익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글을 쓰며 산울림의 명곡들을 일일이 언급하자니 글이 수박 겉핥기가 될 것 같고, 한두 곡에 집중하자니 편중된 글이 나올 것 같아 고민이었다. 마침표를 찍어도 끝나지 않는 산울림의 역사를 글 한 편에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존 레넌이 없는 비틀즈가 없듯, 김창익이 없는 산울림은 없다. 그들의 신곡은 이제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표 왼편에서 산울림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50년 넘는 내 인생에서 산울림 없이 산 세월은 10여 년뿐이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고, 늘 곁에 있는 산울림. 헤어짐이 아니라 반가운 인사를 하듯 외쳐본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산울림이 되돌아온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산울림이 부르는 '청춘'. ⓒ유튜브 옛송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Part 1. 가수 김필이 부르는 '청춘'.(Feat. 김창완) ⓒStone Music Entertainment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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