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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울어주렴, 잠든 밤에 혼자서 산울림 上 <안녕>
입력 : 2020.12.23

펭수도 없고 나태주도 없던 초등학교 시절 대한민국 초통령은 육백만 불의 사나이였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는 미국 ABC 방송이 5년간 인기리에 방영했던 시리즈이다. ‘우주 시험 비행 도중 사고로 인하여 두 다리와 한쪽 팔 그리고 한쪽 눈을 잃은’ 미 공군 대령 스티브 오스틴의 팔, 다리, 눈을 육백만 달러를 들여 초능력을 갖도록 복원해 OSI라는 정보기관의 요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환율이 약 500대 1 정도였으니 ‘30억 원의 사나이’였다. 그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문방구점들마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 역의 리 메이저스 모습을 담은 연습장, 책받침들이 그득했다. 나는 한동안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그려진 도시락통도 들고 다녔다. 

미국에 사는 나의 외삼촌과 외숙모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육백만 불의 사나이 인형을 사다 주신 적도 있다. 한쪽 눈에 작은 망원렌즈를 끼워 뒤통수에 뚫린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면 오른쪽 눈에 박힌 망원렌즈를 통해 멀리 볼 수 있고 등에 붙은 단추를 철컥철컥 누를 때마다 ‘불도저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는 오른팔이 조금씩 올라가는 신기한 인형이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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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BC 방송이 5년간 인기리에 방영했던 시리즈 《육백만 불의 사나이》.

우리나라에서는 TBC에서 이 시리즈를 방송했는데 방영하던 2년여 사회가 늘 시끄러웠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방영한 다음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아침에 “육백만 불의 사나이 흉내 낸다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주의를 줄 정도로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났다. 

게다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외화라는 이유로 다른 모든 외화들처럼 밤 10시 30분에 편성해 놨다. 아이들이 《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본 다음 날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잦았다. 신문에서 난리가 났다. 조금 과장을 해서 이야기를 하면 일찍 편성해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지장 없이 보도록 하자는 파와 계속 심야에 편성해서 아이들이 아예 못 보도록 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고를 예방하자는 두 파로 나라가 반동강이 난 것 같았다. 

나의 어머니도 어떻게든 우리를 일찍 자게 하려고 애를 쓰셨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설상가상 《육백만 불의 사나이》의 인기에 힘입어 TBC와 MBC가 경쟁적으로 아류의 외화들을 수입해 수요일 밤에 《투명인간》 금요일 밤에 《특수공작원 소머즈》를 역시 밤 10시 30분에 방송했다. 

나와 내 동생은 월, 수, 금만 되면 하루 종일 “오늘 엄마가 텔레비전 보게 해주실까?” 하며 전전긍긍하고 화, 목, 토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침대에서 뒹구는 질곡의 삶을 살았다.   

 

아니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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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던 수많은 늦은 밤 중 어느 날이었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 직전에 하던 임성훈, 최미나 진행의 《쇼는 즐거워》가 미처 끝나지 않아 그냥 보고 있는데 끝 순서로 삼형제로 구성된 그룹이 나와 노래를 했다. 

‘쿵쿵따리’ 하는 드럼 비트에 맞춰 전주를 하더니 셋 중 제일 어벙하게 생긴 아저씨가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우리 형제들은 그 첫 소절에 으하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무슨 개그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노래가 버젓이 《쇼는 즐거워》의 엔딩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어느 개그쇼에서 정광태가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렇게 웃지는 않았다. 

<독도는 우리 땅>은 애초에 웃기기 위해 만든 개그 송이었지만, 기발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아니 벌써>는 가수들의 얼굴 표정을 보건대 웃기려고 만든 노래 같지는 않으면서 그래서 더 우스웠다. 초등학생이었으니 연주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 년 바이올린을 배운 귀로 들으니 노래의 음정이 매우 불안정한 아마추어 같았다. 희한한 것은 우린 그렇게 웃으면서도 그 노래를 끝까지 다 들었다. 

그들의 순서가 끝나고 광고가 나가는 사이 우리는 “아니 벌써, 아니 벌써” 하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그날의 기억은 <아니 벌써>를 듣던 순간과 그 이외의 시간들로 나뉜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니 벌써>만 떠오르고 다른 기억들은 다 지우개로 뭉개 뿌옇게 지워진 것 같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다. 그 다음 날도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니 벌써>가 맴돌았다. 그 뒤로 나와 내 동생은 무슨 일만 있으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니 벌써?“ 하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산울림 . ⓒ유튜브 옛송TV   

이 삼형제 그룹은 더이상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산울림이다. 음치가 겨우 음정 잡아 하는 노래처럼 부르는데 그 노래가 그렇게 끌릴 수가 없었다. 《아니 벌써》 앨범이 1977년에 나왔는데 1978년 그들은 이미 컬트가 되어 버렸다. 2집과 3집 앨범이 같은 해에 나왔다. 그들이 애초에 1집 녹음을 할 때 이미 작곡해 놓은 곡이 150여 곡이나 있었다니 그렇게 속성으로 앨범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초창기에는 <특급열차> <카멜레온> <내 마음은 황무지> <그대는 이미 나> 등의 하드록이나 사이키델릭 록적인 분위기의 노래를 좋아했다. 어린아이가 뭘 알아서 선호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음악이 신났고 악을 쓰니까 음치의 약점이 좀 가려지는 듯해서 좋아했다. 

2집에 들어 있던 <나 어떡해>는 멜로디가 강한 노래였지만 막판에 또 악을 쓰듯 노래를 해서 좋아했다. 3집에 실렸던 18분짜리 <그대는 이미 나>를 심야시간대 FM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번 듣고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히며 좋아했는데 그 뒤로 다시 들어본 적이 없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3집은 실패였기 때문에 방송에서 잘 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들어 있던 는 멜로디가 강한 노래였지만 막판에 또 악을 쓰듯 노래를 해서 좋아했다. 3집에 실렸던 18분짜리 를 심야시간대 FM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번 듣고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히며 좋아했는데 그 뒤로 다시 들어본 적이 없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3집은 실패였기 때문에 방송에서 잘 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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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의 동요들은 처음부터 좋아했다. 특히 <바람 그리기>는 지금도 가끔 들으며 먼 기억을 더듬는다. 가사는 짧고 단순하다. 당연히 유아적인 발상이다. 세상은 어린이들의 눈으로 볼 때 더 잘 보인다. 우리가 안다생각하고 지나친 것들 아니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을 보며 우리가 세상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람은 보이질 않으니 무슨 색을 칠해야 할까듣고 생각해 보면 난감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담임 선생님이 자연 시간에 우리 모두를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그리고 무엇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지 적어 내라고 하셨다. 나는 몇 가지를 써냈는데 그중 하나가 선생님의 치마가 흔들린다였다. 선생님이 관찰을 아주 잘했다고 특별히 칭찬해 주셨다.

우리 학교에는 학부모들이 한 달에 한 번 방과 후에 학교로 와서 선생님이 우리를 지도하며 느낀 이야기도 듣고 개별 상담을 하는 교육 상담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교육 상담일에 다녀와서 나보고 자연 공책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난 또 나의 개발새발 글씨를 혼내려 그러시나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공책을 드렸더니 한 장 두 장 넘기던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이구, 우리 철재였구나.” ‘? 뭐가 또 나야?’ 상담 시간에 선생님이 어머니들에게 한 학생은 바람을 관찰하라고 했더니 선생님 치마가 흔들린다고 써냈다며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그 자연 시간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며 별걸 다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자연 시간이 늘 기억에 남아 있고 중학교 때 <바람 그리기>를 처음 듣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이 노래만 들으면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생각난다. 나는 바람을 써냈고, 김창완은 바람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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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할아버지>는 내가 고1 때 나온 동요이다. 이 노래도 참 좋아했는데 이 노래에는 한 가지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숨어 있다. <산할아버지>를 음담패설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 학교 안에 은밀히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암기력은 왜 그리도 좋았는지? 짝이 수업 시간에 소곤소곤 불러 준 것을 단번에 외워 집에 가서 동생에게 불러줬다

동생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 오랜만에 불러보니 처음에 잘 나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 음담패설로 샌다. , 그 시절 외운 것은 왜 이리도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인지. 선생님의 치마가 날리는 것을 보며 바람을 그려보던 여덟 살의 동심이 열여덟이 되기 전에 이렇게 타락했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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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인 골수암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여고생 민초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생명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아픔과 삶을 다루었다.

또 하나의 애창 동요는 <안녕>이다. 어린이 합창이 나온다. 들어보면 너무도 아픈 이야기를 너무도 천진하게 부른다. 1988년 김창완이 CBS-FM의 《꿈과 음악 사이》를 진행할 때 한 애청자가 엽서를 보냈다. 골수암 투병 중이던 여고생 민초희였다. 그녀의 소원은 스무 살까지 사는 것이었다. 그 뒤로 민초희는 종종 엽서를 보냈고, 그때마다 김창완은 그 엽서들을 읽었다. 《꿈과 음악 사이》 애청자들과 김창완은 어느새 민초희를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초희는 끝내 스무 살 생일을 맞지 못하고 죽었다. 1990년 김창완은 민초희의 엽서 사연과 비망록 등을 모아 책을 냈고 거기에 자기의 글도 실었다. 그 책의 제목이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이다. 그 뒤로 동명의 영화가 나왔다. 

<안녕>은 원래 1984년에 발표한 산울림 11집에 들어 있던 곡인데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의 OST에 삽입되었다. 인터넷에 민초희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대동소이하다. 그중 하나가 <안녕>이 민초희가 좋아하던 산울림의 노래 중 하나였다고 한다. 민초희가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할 만큼 그녀의 이야기와 닮았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멀리 있는 다른 세계로 떠나기 전, 그녀는 친구가 자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울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모두가 슬피 울며 아파하는 것은 원치 않았나 보다. 친구에게 모두가 잠든 밤에 뱃고동이 울리면 그 소리에 숨어 혼자서만 조용히 울어 달라고 부탁한다.  

‘안녕 귀여운 내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멀리 갔다고.’ 

죽음이 기쁜 사람은 없다. 그래도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담담하려 애쓰며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다. 민초희도 그랬나보다. 그러나 ‘귀여운 내 사랑’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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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인 골수암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여고생 민초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생명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아픔과 삶을 다루었다.

그녀가 얼마나 삶을 원했는지, 얼마나 스무 살 생일을 원했는지. 그녀는 그 사랑에게 자신의 간절했던 소망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별님과 나누며 지켜달라고 한다.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이 1979년 군대에 가서 작곡한 노래 <독백>에 ‘나 혼자 눈 감는 건 두렵지 않으나 헤어짐이 헤어짐이 서러워’라는 구절이 있다. 죽는 것이 두려운 큰 이유는 헤어짐일 것이다. 헤어짐으로 나는 잊힐 테니까. 민초희도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잊는 것이 더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민초희는 왜 스무 살 생일을 그리도 갈망했을까? 그녀에게 스무 살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내 나이 열아홉일 때 나의 소원도 스물이 되는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것처럼 허망한 꿈도 없었다. 

스물은 앉아서 기다리면 오는 것이고, 스물이 된다고 세상이 갑자기 나를 대접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허비한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 했던가. 나에게 열아홉 살 마지막 날과 별 다를 바 없었던 스무 살 첫날은 민초희에게는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준 등댓불이었다. 

스무 살 뒤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무 살까지 왔기에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작은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울면서 멀리멀리 갔다.’ 내 나이 열아홉일 때 나의 생은 민초희의 생처럼 간절하지 못했다. 내가 내 생의 첫 20년을 살아냈다는 것조차 별 감흥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린아이의 심성을 품은 따뜻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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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topclass DB

김창완은 참 묘한 인물이다. 《하얀 거탑》에서는 섬뜩한 냉혈한이고,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어벙벙한 중년 신사이다. <빨간 풍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스토커 같고, <특급열차>를 부를 때는 하드로커이다. <안녕>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심성을 품은 따뜻한 어른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그 안에 갇힌 어린 학생들과 다른 많은 승객들이 죽었는지 혹시라도 살아 있는지도 모르며 몇 날 며칠을 보내던 때, 운전하고 가다가도 그들을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솟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국 뉴스를 보다 들었던 것 같다. <안녕>이 흘러나왔다. 

어린이 합창이 끝나고 어린이 합창보다 더 해맑은 김창완의 목소리가 나왔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뉴스 틀어놓고 이것저것 하던 내가 갑자기 턱 멎었다. 

나의 어린 시절 국기 강하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겨울철 오후 5시 여름철 6시 관공서에서 국기를 내리는 시간이면 어디에 스피커가 숨었는지 갑자기 길에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행인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뉴스 끝에 김창완의 <안녕>이 나올 때 그 목소리에 나는 국기 강하식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수없이 듣던 노래가 또 한 번 나를 울렸다. 

 

산울림 下에서 계속...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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