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topp 로고
칼럼진
한동일의 공부법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로마로 유학 가서 10년, 그리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로타 로마나(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도합 30년 넘게 공부한 한동일 변호사.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한마디로 공부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공부는 매듭짓는 겁니다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비결
입력 : 2021.03.15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치고 로타 로마나 변호사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졌을 때였습니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사법연수원에 입학할 때 제 동기들은 모두 40명이었습니다. 유급생을 포함해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을 본 사람은 12명이었는데 그중 3명만이 합격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은 판례학 한 과목만 봅니다. 일반적으로 시험 문제는 각 나라의 법원에서 1심과 2심을 거쳐 올라온 200쪽 분량의 실제 사건인데요. 판결문은 ‘사건 개요(Facti Species)’, ‘법리(Iniure)’, ‘사실(In facto)’의 순서로 총 20쪽 분량을 라틴어로 작성해야 합니다. 시험 시간이 무려 12시간이나 되지만 200쪽이나 되는 문제를 읽다 보면 그 시간도 짧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2009년 첫 변호사 자격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시험을 본 후 동료들과 답안을 맞춰 보면서 제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모두들 ‘기각’으로 판결문을 작성했는데 저만 ‘인용으로 작성했던 겁니다. 전체적인 추리는 합당했으나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오해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년 학년 시험을 마치고 한 달 후에 곧바로 변호사 자격시험을 본 게 무리였습니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쫓기는 마음이었던 저는 더 지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들 합격할 거라고 용기를 주는 바람에 진짜 합격할 것 같은 착각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봤어야 했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혼자서 캔맥주 3개를 단번에 마셔버렸죠. 7월이라 모두가 떠나버린 텅 빈 기숙사에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에 떨어진 일은 단순히 시험에 한 번 떨어진 게 아닙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제겐 더할 수 없는 절망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시험을 단번에 붙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런 실수를 한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매듭을 지어야 했어요.

저는 이전보다 더 공부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에 떨어진 사람에 한해 1년 동안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필요하다면 1〜3학년 수업 내용을 모두 청강할 수 있습니다. 저는 판례학 위주로 시험 준비에 집중하며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 날은 너무 떨려서 시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종 변호사 자격시험은 두 번밖에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교황에게 청원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저는 펜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지그시 감싸 쥐었습니다. 10분 동안 시험 문제도 읽지 않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떨어야 할 이유가 뭐지? 이제 너는 갈 곳도 없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는 거야.”

여기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왔으니 당장은 합격 불합격을 생각하지 말고 마지막 힘과 정성을 답안지에 쏟아부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배우고 익힌 모든 걸 총동원해 답안을 작성했습니다. 펜을 놓는 순간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홀로 진공 상태의 작은 유리병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지요.

12시간이 지났습니다. 시험장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텅 빈 것 같았으나 왠지 느낌이 좋았습니다. 공중 부양한 것처럼 발이 땅에 닿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늘 보던 풍경이 낯설고 아름답게 보였어요. 저는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 끝났구나. 진짜 끝났어.”

01242018021302930528.jpg
제게 “공부가 뭐냐?”라고 묻는다면 버티는 거라 말하고 싶습니다. 공부도 삶도 버텨나가는 겁니다. ⓒ조선DB

한 달 후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좋았던 느낌대로 저는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됐습니다. 길고 고단했던 공부는 그렇게 이정표를 찍으며 매듭을 지었습니다.

제게 “공부가 뭐냐?”라고 묻는다면 버티는 거라 말하고 싶습니다. 공부도 삶도 버텨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는 매일 ‘하루’라는 매듭을 지어나가고, 자신에게 이정표가 될 의미 있는 매듭도 짓게 됩니다. 그 매듭들이 모여 삶이라는 단단하고 굵은 동아줄이 되는 거죠.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앞서 지은 매듭을 돌아보며 우리는 다시 버텨낼 힘을 얻고 이겨낼 방법을 배웁니다.

오늘 매듭짓기에 실패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면, 오늘 계획하거나 결심한 걸 실천하지 못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면 기뻐하세요. 그건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임을 확인하는 일이니까요. 기쁨과 위로는 거기까지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마음을 추켜세우기 위해 다시 결심해야 합니다. 잘하든 못하든 그렇게 또 다른 매듭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매듭을 짓고 있나요?

 

Totam rem efficiamus, quandoquidem coepimus.

토탐 렘 에피치아무스, 콴도퀴뎀 체피무스.

일은 일단 손댄 이상 모두 마쳐야 한다.

 

20210110182713_rfczieaf.jpg

*본 편은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한동일 지음, EBS BOOKS 발행)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한 것입니다.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