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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공부법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로마로 유학 가서 10년, 그리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로타 로마나(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도합 30년 넘게 공부한 한동일 변호사.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한마디로 공부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깊이는 타인이 주지 않습니다 당신의 그 생각, 진짜 당신의 생각입니까?
입력 : 2021.03.08

로마로 유학 가서 구술시험을 볼 때였습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덕에 교수님의 질문에 술술 대답했고 교수님은 30점 만점을 주셨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교수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잘했네. 그럼 지금 내가 묻는 것에도 대답을 해보게.”

교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트렌타 에 로데(trenta e lode, 만점 외 추가 점수)’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추가 점수를 받을 생각에 들떠서 흔쾌히 “네! 교수님”이라 대답했죠.

“지금까지 자넨 내가 물어본 것에 대해 대답을 아주 잘했네. 하지만 그건 내가 강의 시간에 한 이야기이고, 그럼 그에 대한 자네의 생각은 무엇인가?”

헉! 순간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이 텅 빈 듯해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내 생각? 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늘 혼났는데. 그럼 난 생각하지 않았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외에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나?’

이런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교수님은 서둘러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30점으로 하세.”

한국에선 수업 시간에 제 생각을 말했다가 좋은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을 닫고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생각도 멈춘 걸까요?

신학교 시절에는 요한네스 힐쉬베르거(Johannes Hirschberger)가 쓴 두꺼운 『서양철학사(A Short History Western Philosophy)』 상하권을 끝까지 읽으며 페이지 여백에 빼곡하게 제 생각을 적어넣은 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으로 후배들이 그 책을 끝까지 읽은 유일한 사람으로 기억해주었는데 그런 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왜 이처럼 선택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까요? 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걸 힘들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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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왜 선택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까. ⓒshutterstock

저는 여러분이 길 한복판에서 멈추거나 혹은 주저앉지 않길 바랍니다. 요즘 학생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뛰어난 언어 능력과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도전하기를 즐깁니다.

세계적 수준의 IT 환경 아래 창의적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꾼 걸 해내고 있으면서도 지레 포기하거나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좋은 능력을 갖추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춰 있거나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보다 앞서 웰싱킹(well thinking)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웰싱킹은 시험 문제를 풀 때만 가동되는 급조된 사고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를 했을 때, 그게 누적되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회인가? 나는 생각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가? 타인이 줄 수 없는 깊이를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유효한 공부가 아닐까요? 그것으로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Qui se ipsum norit(noverit), aliquid se habere sentiet divinum.

퀴 세 입숨 노리트(노베리트), 알리퀴트 세 하베레 센티에트 디비눔.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신성한 무엇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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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편은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한동일 지음, EBS BOOKS 발행)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한 것입니다.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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