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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박일 때까지 공부하다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
입력 : 2021.02.09

신학교에 다닐 때 방학이면 두 달 동안 꼬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 경험을 쌓았는데, 고랭지 배추 농장에서 트럭에 배추를 싣는 일을 한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선 동이 틀 무렵 일이 시작됐는데요. 저는 해가 지면 당연히 일을 그만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웬걸요. 해가 지자 발전기를 가져다가 커다란 조명을 켜고 일을 계속했습니다. 비가 오면 우비를 나눠줍니다.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입고 물먹은 배추를 쉼 없이 들어 올리면서 날이 저물기를 바란 적도 있습니다.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셔도 다음 날 또 나가야 했지요.

‘인이 박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뭔가를 여러 번 되풀이하여 습관처럼 몸에 깊이 배는 현상을 말합니다. 함께 일했던 아저씨들은 저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일에 인이 박였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런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저보다 요령도 잘 알고, 또 그 일을 오래 해서 몸의 저항감이 상대적으로 덜 하기에 수월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였겠지요. 하지만 그분들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공부만 하던 학생으로서 몸을 쓰는 노동의 고단함을 제대로 경험한 저는 그때 처음으로 ‘그래도 공부가 쉽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그 일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생계가 달린 업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어찌어찌하긴 했겠지만, 힘들다고 하루 일당으로 받은 돈을 모두 술 마시는 데 썼을지도 모릅니다.

공부하기 싫고 놀고만 싶을 때, 성적이 좋지 않아서 우울할 때, 공부하다가 짧은 집중력에 실망할 때마다 그때의 고된 육체노동이 약이 됐습니다. 공부하다가 몸이 들썩거리면 고랭지 배추가 시시포스의 신화 속 돌처럼 느껴진 그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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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싫고 놀고만 싶을 때, 성적이 좋지 않아서 우울할 때, 공부하다가 짧은 집중력에 실망할 때마다 고랭지 배추 농장에서의 고된 육체노동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조선DB

 

너무 힘들어서 술을 마시고 울다가 어딘가에서 고꾸라져 잠들고 ‘그까짓 공부, 안 하면 죽냐’ 하면서 호기롭게 지낸다고 해도 그 시간이 전혀 의미 없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를 탓하기보다 다시 돌아갈 곳이 어딘지를 의식하고 있다면 이런 시간조차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건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주지 않고 오로지 ‘노오력하라’고 하는 세태라 생각합니다. 자기 공부에 대한 사명이나 당위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방황의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이어야 스스로 납득하게 되고 목표를 달성할 힘도 솟아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시간조차 낭비라 생각하고 일찌감치 낙오나 실패의 낙인을 찍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넘어지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야구에도 스리아웃이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방황이나 실패의 시간이 없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방황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큰 역경 없이 단번에 이룩한 성공은 이후 계속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면역력이 없는 사람에게 오는 도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에게 오는 시련은 분명 더 힘겨울 겁니다.

힘들어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배추 농장의 사람들처럼 공부 습관이 몸에 밸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에 매달리면 감정 소모만 커질 뿐입니다. 사람은 갈등과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 그게 삶이라 생각합니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ambulare.

베룸타멘 오포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세퀜티 암불라레.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성경, 루카복음 13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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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편은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한동일 지음, EBS BOOKS 발행)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한 것입니다.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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