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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모든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 다만..."
입력 : 2021.01.11

저는 30여 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습니다.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2001년 로마로 유학 가서 다시 10년을 공부했습니다. 3년여 동안 석박사과정을 마친 후 2004년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Rota Romana)’ 사법연수원에 입학해서 2010년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되기까지 줄곧 공부만 했습니다.  

유학 시절 저는 ‘공부하는 노동자’로 자신을 규정하고 살았습니다. 멋진 신조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분은 참 지루하고 답답한 호칭이라 생각할 겁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말로 저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교수님, 이 지독하게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은 과연 있을까요?”  

이 한 문장을 읽고 저는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로마에서 학위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제게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가끔 장거리 이동을 위해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숨을 꾹 참고 있다가 빠져나가면 크게 내쉬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지금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라는 생각에서 은연중에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제자의 질문을 받고 저는 가슴이 답답하여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한두 마디로 답할 수 있을까요? 답을 빨리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터널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구불구불한 길에 간간이 터널이 있었지만 요즘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터널이 정말 많습니다. 돈도 없고 기술도 부족하던 시절엔 어쩌다 터널 하나를 만들었다면, 요즘은 자본이 풍부하고 기술이 발달하여 산을 뚫어 여러 개의 터널을 통과하게 했습니다. 터널이 많아지고 길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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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세상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은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산이다’라는 말이 있듯,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산을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직 공부하는 노동자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오르지 못한 수많은 산이 있고, 터널을 지나는 중이며 빠져나간다 해도 언제 또 다른 터널을 만날지 모릅니다.  

산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며 ‘저길 어떻게 오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어두운 터널 안에서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에게 제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속단할 순 없습니다. 그저 공부하며 긴 세월을 보낸 사람의 자기 고백이라 해두는 게 어떨까요? 이 과정을 통해 제 개인적으로는 치유의 시간이 되길 기대하고, 공부하는 분들에겐 무엇이든 함께 생각할 게 한 가지라도 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긴 침묵 끝에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모든 터널은 끝이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에 한해.”  

무언가 확실하고 명쾌한 답변을 기대했을 제자에겐 참으로 원론적이고 답답하게 들렸을 겁니다. 제 답변도 마찬가지였음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세요.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고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속이 불편할 때 사이다라도 마시면 당장은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지만, 그 기분이 소화불량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늘 사이다를 마실 때와 같은 시원한 느낌을 기대할 수 없고, 설령 상쾌해졌다 해도 그게 궁극적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끝맛을 가져다주진 않습니다.   

언젠가 “나는 모든 완성의 끝을 보았노라(Omnis consummationis vidifinem, 옴니스 콘숨마티오니스 비디 피넴)”라고 말하기 위해 우리는 그 끝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를 때 우리는 비로소 편히 쉬게 될 겁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리고 싶습니다.      


Noli hærere in via, et non pervenire ad finem. Ad quidquid
aliud veneris, transi usque quo pervenias ad finem.
놀리 해레레 인 비아, 에트 논 페르베니레 아드 피넴. 아드 퀴드퀴드 알리우드 베네
리스, 트란시 우스퀘 쿼 페르베니아스 아드 피넴.  
길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목표에 다다르지 못할 겁니다.
그대가 다른 어느 곳에 도착하더라도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그냥 지나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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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편은 도서 『한동일의 공부법』(한동일 지음, EBS BOOKS 발행)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한 것입니다.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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