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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고, 이어 예술가들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를 담은《발칙한 예술가들》펴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새해맞이... 트로트 스타의 힘 브람스가 발굴한 음악 천재, 드보르자크
입력 : 2021.01.06

저는 10년 넘게 어머니와 해넘이, 해맞이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혼 한 후에도 매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텅 빈 집에서 혼자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시는 모습이 요즘말로 아팠거든요. 평소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이신 제 어머니이지만, 해가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에 일부러라도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어머니는 제 행동에 대해서 나무라시기도 하셨어요. 제가 결혼했으니, 이런 날에는 남편과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말씀이셨죠. 물론 그 말씀도 백번 맞지요. 그런데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제 남편은 연말과 새해 첫 날 둘 중 하루는 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닙니다. 남들 다 쉬는 날에 출근할 때 종종 짜증도 나는데요. 어머니께 꾸중을 덜 듣고, 제 마음 편한 일도 진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환불받고 싶던 지난해의 마지막 날과 코로나 팬데믹 2년차의 첫날도 어김없이 저는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이 새해 첫날 근무였거든요. 아들이랑 둘이 집에서 있으면 뭐하냐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어머니와 1박 2일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저희 가족만의 해맞이 의식이 있거나 하지는 않고요. 평소처럼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저녁을 해먹고, 그릇을 정리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적당한 시간에 아들을 재웠고요. 8살의 마지막 밤과 9살의 첫 날을 맞이할 거라며 신나하던 제 아들 녀석은 일찍 곯아떨어지더라고요. 아이가 잠든 가장 평화로운 밤, 저와 어머니는 ‘미스트롯2’를 틀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새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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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트롯은 임영웅, 이찬원, 장민호, 영탁, 정동원 등 매머드급 트로트 스타를 배출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모두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사진 출처 미스터 트롯 홈페이지

‘미스트롯2’ 참가자들의 무대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흘러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래에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여러 참가자 중 이혼 후 아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 트로트 가수 강유진의 말이 자꾸 맴돌았습니다. 저와 제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 말을 들었던 모든 분들이 그러하셨겠지요. “10,000밤 동안 아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던 그녀의 고백에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입니다. 부디 그 소원이 이뤄지길 저도 응원 드리겠습니다. 

다양한 장기와 노래실력을 뽐낸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또 웃었습니다. 특히 화면에 이찬원의 점잖은 미소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께서 활짝 웃으셨어요. “애들이 착해, 자기들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하니까 예뻐”라며 평소에도 입이 닳도록 미스터 트롯 4인방을 칭찬하시거든요. 또 종종 “장민호 장가가야 하는데”라는 말씀과 함께 “찬원이가 참 반듯해, 이제 임영웅은 귀티나네”라고도 하시고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미스터 트롯 4인방을 생각하시는 지 처음에는 의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준 트로트 스타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스터 트롯에서 올하트를 척척 받으며, 세상에 나아갈 계단을 차례차례 올라온 그들이 없었다면…. 불운한 천재의 삶처럼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들의 음악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본 이야기.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승승장구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희망을 만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만들어진 이미지로 팬들 앞에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마음일까요. 미스터 트롯 4인방을 포함해 여러 트로트 스타들의 진짜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이런 신드롬은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새해에도 우리 모두에게 또 우리들 부모님 마음에 따듯한 노래를 불러주길 기대합니다! 


늦게 빛 발한 드보르자크의 음악  

클래식 음악가 중에도 미스터 트롯 4인방처럼 오디션을 통해 재능을 펼친 분들이 꽤 많습니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지난 2017년 한국인 최초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대상을 차지했고요. 세계적인 팬덤을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었고요. 또 K클래식을 화려하게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포함해 총 7개의 국제 콩쿠르의 수상자로 이름을 알린 바 있고요. 이밖에도 손열음, 김선욱, 임동혁, 성시연, 클라라 주미 강 등도 각종 국제 콩쿠르를 통해 세계무대에 실력을 알렸습니다.   

이른바 앞서 소개한 연주자들은 콩쿠르라는 오디션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성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는데요. 만약 그들이 밤잠 설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콩쿠르에서 선보이지 않았다면? 심사위원 중 어느 한 명이라도 그들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면? 연주자로 그들의 행보는 지금과 같았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 어떤 가능성도 그들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로막지 못했다에 한 표 걸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콩쿠르가 자주 개최되지 않던 시대의 음악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었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1863년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합스부르크제국은 재능이 뛰어난 음악가를 선발,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었는데요. 이 오디션은 직업 음악가의 길을 반대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음악학교 학비 이외에 한 푼도 받지 못하며 어렵게 살았던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년 9월 8일~1904년 5월 1일)가 늘 꿈꾸던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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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체코의 국민 음악가로 추앙받습니다. 그는 빈, 뉴욕, 프라하에 살며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드보르자크의 음악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당시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그랬듯 그 또한 이렇다 할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살고 있었거든요. 드보르자크는 자신이 이 오디션에 통과해 국비 장학생이 된다면, 앞으로의 음악인생이 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졌을 겁니다. 음악에 관심 없는 귀족 학생들 레슨부터 교회 오르간 연주 등 각종 활동을 통해 힘겹게 벌던 자신의 수입보다 무려 3~4배나 많은 돈을 5년 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드보르자크는 이 오디션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쳤는데요. 자신의 <교향곡> 두어 편과 실내악 작품을 심사위원회에 보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성을 드러냈는데요.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의 당선에 확신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구나 오디션의 우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한 스푼의 운과 한 스푼의 실력 그리고 한 스푼의 마법이 더해질 때 치열한 경쟁률을 뚫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드보르자크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성을 알아 본 당대 최고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던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년 5월 7일~1897년 4월 3일)가 그의 음악성을 알아 본 덕분이었습니다. 


브람스의 추천으로 인기를 얻게 된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무곡>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에 성공합니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과 베를린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슬라브 무곡, Op.72-2번>입니다. 

 

이후 브람스는 드보르자크를 자신보다 더 유명한 음악가로 성장시키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브람스와 드보르자크는 10살도 채 안 나는 사이였지만, 브람스는 당시 저명한 음악가 반열에 올라있었거든요. 우선 브람스는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여러 작품을 베를린의 짐로크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한 작품은 <마라비아 2중창곡집>인데요. 이 악보집은 브람스의 예상대로 뜨거운 반응을 받았고요. 이후 출판사 측은 드보르자크에게 새롭게 출판할 수 있는 작품을 써달라고 의뢰합니다. 당시 드보르자크의 인기를 상상해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슬라브 무곡>인데요. 이 작품을 통해 드보르자크는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빈과 뉴욕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결국 프라하로 다시 돌아왔고요. 삶을 마치는 날까지 체코의 국민 음악가로 추앙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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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성에 감탄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유명한 음악가로 성장하게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브람스의 확신과 도움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드보르자크는 오디션에서 탈락해, 귀족 학생들의 수업을 전전하다, 이름 모를 음악가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지금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대의 수많은 예술가들 처럼요.

그러나 유명한 음악가로 성공한 삶을 살다 갔을지라도, 생전의 추문으로 무덤에서 곤욕받는 분들도 있죠.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유명 음악가로 살다 간 삶, 정 반대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삶, 그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새해 여러 다짐 중 하나로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만한 일이 또 있을까 싶어서요.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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