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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언어가 남긴 흉터의 불편한 진실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탐험
입력 : 2020.12.31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왕따 가해자 친구가 내게 했던 ‘너 겁도 없다?’라는 말. 중학교 때 어떤 선배가 내게 했던 ‘뭐야, 못생겼잖아’라는 말. 아직도 그 말들을 떠올리면 그들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까지 함께 재생되는 것 같다.

말과 글은 순간적으로 소비되기 쉽다. 또한 우리에게 물리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내뱉은 말은 공기 중으로 점점 사라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쓴 댓글은 새로운 댓글 덕에 점점 묻히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계속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기억’이 상대에게 어떻게 작용될지 항상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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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뼈저리게 실감한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께 ‘문과치고는 수학을 잘 하네’라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칭찬을 들은 것이 기뻤지만,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는 부끄러워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 글은 공교롭게도 인기 글이 되었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핵심은 ‘문과치고는’, ‘그래봤자 너는 문과’와 같은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의도치 않는 결과에 상처 입고 글을 황급히 지웠다. 달콤했던 그 기억은 순식간에 쓰라린 기억으로 바뀌었다.

과연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은 그 댓글이 이 정도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아마 댓글을 달았던 사실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내가 한 줄도 몰랐던 말이 누군가에게 ‘흉터’와 같이 기억될 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초등학교 때 왕따 가해자가 했던 말, 중학교 어떤 선배가 했던 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이 말을 기억할 때면 기분이 묘해지고 선득한 마음이 든다. 이 말을 가장 처음 들었을 때의 수치스러움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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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남긴 흉터는 어찌 보면 실제 흉터보다 더욱 고약하다. 몸에 남은 흉터는 시간이 오래 지난 뒤 만져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렇지만 언어가 남긴 흉터는 떠올릴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 같다. 이것에 무덤덤해지려면 아예 잊어버리거나, 태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무심코 던진 말과 글에 오늘도 끙끙 앓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악플에 시달리던 사람이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을 보면 언어가 남긴 흉터의 무서움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언어는 때로 더욱 심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는 별다른 생각 없이 올린 말과 글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섬세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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