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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구나 이상은 下 <삼도천>
입력 : 2020.11.17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직후 귀국해 서울의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에서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내가 얼마나 가요에 관심이 없었으면 인기 절정의 한 아이돌 그룹의 중국 순회 공연 계약서를 검토하다 사무직원 한 명을 내 방으로 잠깐 불렀다. 창피한 마음에 방문을 닫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 그룹 멤버가 총 다섯 명인 거죠?”

하지만 인터넷에서 노래를 다운 받아 MP3 플레이어에 저장해 듣고 다니는 것에는 재미를 붙여 퇴근하면 예전에 좋아하던 가요와 팝송들을 다운 받으며 하루의 피곤을 풀었다.

정신없이 노래를 찾아 다운 받다 발견한 곡이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이다. ‘담다디 아냐?’ 하는 마음에 들어봤다. 웬걸. 담다디는 온데간데없었다. 처음 북소리부터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우리 전통 가락도 들리고 재즈 리듬도 들리고 남미 민속 음악의 분위기도 나는 기가 막힌 조합의 음악이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공무도하가>를 배울 때의 기억이 났다.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를 타며 불렀다는 슬픈 노래이다. 학창 시절 늘 여옥이 부른 노래의 가락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다. 이상은이 붙인 가락이 원 곡조와 많이 달랐겠지만 글자로만 존재하며 나에게 궁금증을 주던 그 노래에 처음으로 이상은이 음악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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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의 앨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MP3에 다운 받아 출퇴근 시간에 늘 들었다. 언제나 헷갈리던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하는 후렴구도 순서대로 외우게 되었다. 열심히 노래를 듣다 6집 앨범에 담긴 다른 노래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삼도천>이 내 가슴에 푹 꽂혔다. <공무도하가>처럼 여러 장르와 민속 음악이 결합된 듯하면서 뉴에이지적인 맛이 훨씬 더 강한 노래다. 

아무 반주 없이 ‘너와 나 사이에’ 하면서 뒤따라 나오는 강한 비트는 독일의 뉴에이지 그룹 이니그마의 음악을 연상케 했다. 삼도천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강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그 강을 건너 저승으로 간다. 제목이 <삼도천>이니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가사가 무겁게 느낄지 모르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삶과 죽음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이 어언 20년이 되어 오지만 아직도 자려고 누워서 곧잘 듣는다. 이상은의 많은 노래 가운데 내가 가장 즐겨 듣는 노래이다.

 

《호텔 델루나》 장만월과 청명이 건넌 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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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호텔 델루나》 중 장만월과 고청명.

 

근래에 《호텔 델루나》라는 드라마를 봤다. 아직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고 유튜브에 올라온 조각 비디오들을 하도 봤더니 직소퍼즐 맞추듯 이야기가 얼추 그려졌다. 삼도천과 우리 고유 신앙의 여신인 마고신이 등장하고 구천을 떠돌던 영혼들이 삼도천을 건너기 전 쉬어가는 달의 객잔이라는 곳이 주 무대인 판타지 드라마이다.

1300년 전 패망한 고구려 유민들로 구성된 도적 패거리 속에 살던 장만월은 같은 고구려인으로 무주국 공주의 호위무사인 고청명과 사랑하게 된다. 만월은 청명이 고구려 저항군에 합류하려던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을 배반하고 동료들을 학살했다 생각해 청명을 증오한다. 청명과 무주국 공주의 혼례 날 침실로 숨어든 만월은 공주를 칼로 쳐 죽이고 그녀의 혼례복을 입고 기다리고 앉아 있다 침소로 들어온 청명의 목에 칼을 겨눈다.

만월이 살아남기만을 바랐던 청명은 만월이 살아갈 증오라는 힘을 주기 위해 아무 변명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칼을 겨눈 만월을 와락 끌어안으며 스스로 칼에 찔려 죽는다. 만월은 슬픔과 증오로 범벅되어 광야를 헤매다 마고 할멈이 주는 술을 마시고 그 술의 주술로 원념이 달의 객잔 마당에 서 있는 월령수라는 나무에 묶여 저승으로 갈 수도 없이 달의 객잔의 주인으로 산다.

1300년의 시간이 흘러 달의 객잔이 호텔 델루나로 개명한 현대에도 만월은 환생한 청명이든 청명의 혼령이든 찾는 즉시 죽이고 자신은 악귀가 되어 소멸하겠다 벼르며 원념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진실은 만월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청명은 만월의 달의 객잔 첫 손님이었다. 저승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 반딧불이의 형상으로 남아 1300년 동안 월령수를 떠돌며 만월의 곁을 지켰다. 그는 배신자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배신자의 누명을 쓴 것뿐이었다. 결국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만월에게 마고 할멈은 마지막 죗값을 치루는 의미로 지친 천명의 혼을 삼도천까지 데려다 주고 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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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호텔 델루나》 중 장만월과 구찬성.

만월과 청명이 삼도천에 이르렀을 때 청명은 함께 끝까지 가자는 의미로 손을 내밀고 곧이어 “이곳의 모든 기억을 털고 가장 먼 기억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호텔 델루나의 인간 지배인 구찬성을 사랑하게 된 만월은 꼭 돌아오겠다는 구찬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명의 손을 잡지 못하고 돌아선다. 청명과 만월이 다음 생에서 또 만날지는 모르지만 전생의 인연은 그렇게 삼도천 다리 위에서 끝이 난다.

삼도천을 건너면 가장 먼 기억이 나온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내 영혼이 생겨난 그 기억이 있는 곳이 삼도천 너머인가 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승의 기억을 털어내야 한다. 이승에서 덧붙여진 모습을 모두 놓아버려야 내 영혼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잊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놓아버리는 행위이다.

그래서 삼도천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고 한다. 삼도천이 있다면, 그곳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흘리고 간 원념의 조각들이 쓰레기처럼 물에 떠 있을 것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 삼도천을 건너

이상은은 해님(1990년대 표기로 햇님)에게는 ‘시려운 강으로 몸을 담궈 물을 태우렴’이라 하고, 바람에게는 춤을 추어 ‘해님이 태운 물먼지를 훨훨 날리렴’이라 노래한다. 태양처럼 뜨거운 열이 을씨년스런 물을 통째로 태우고 그 먼지가 바람에 날아가야 없어지는 것이 우리 원념의 조각이런가. 이토록 철저히 없애고 강을 건너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영혼의 원형인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강 저편 이승의 소리는 ‘물소리에 잠겨’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영혼은 비로소 모든 것을 놓고 망각의 강, 삼도천으로 들어선다. 그 씻겨 내린 원념의 조각들은 해님이 태울 것이로되 그 조각들을 모두 놓아버린 영혼에게 이제 오롯이 나만이 있다. ‘내가 나로 있느니, 네가 없느니.’ 우리 모두는 인간 사회의 산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딪히는 부모, 형제, 동료, 친구, 원수와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랑, 미움, 기쁨, 슬픔, 부끄러움, 체면이 뒤섞인 나의 이승의 모습이 조형된다. 그 모습이 물에 씻기고 또 씻겨 강 건너에 도달할 무렵 나의 원형의 기억을 찾는다.

2절에서도 이상은은 해님에게 물을 태워버리라고 한다. 헌데 웬일인지 바람에게는 먼지를 날려 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겐가 바람에 맞춰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네 님도 불러라’고 한다. 아니 이승의 모든 것을 다 잊은 영혼에게 ‘님’이 어디 있을까? 흙을 실어다 물을 메꾸고 거기에서 풀이 자라면 그 위에서 뛰어놀겠다고 한다. ‘너와 내가 만나면 비도 참 달다’고 한다.

모두 잊고 겨우 강을 건넜는데 다시 만나 뛰어논다. 기독교의 요단강 건너의 천국,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강 건너의 엘리시움처럼, 삼도천 건너에도 이승의 원한과 슬픔이 사라진 영혼들이 다시 만나 원래의 모습처럼 서로 사랑하고 즐겁게 사는 곳이 있는 것일까?

 

이상은이 20대에 그린 피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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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과연 이상은이 그리는 것이 삼도천과 피안의 세계일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삼도천을 사이에 두고 갈라선 이승과 저승처럼 건널 수 없이 갈라져 반목하는 우리네 현실을 그리는 것은 아닐까. 첫 대목에서 ‘너와 나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구나’까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이야기 같다. 나도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한동안 그들이 바로 곁에 있지만 손을 뻗어 만질 수 없게 우리 사이에 가늘고 긴 강이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은하수도 같고, 피안의 강물도 같이’라는 말은 이상은이 노래하는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물이 피안의 강물 같은 물이지 피안의 강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강물,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강물, 노(勞)와 사(使)를 가르는 강물. 죽음과 삶을 가르는 강보다 더 깊고 더 넓은 우리를 둘로 가르는 현실의 강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강을 흙으로 메우고 바람에 춤을 추며 비마저 달기만 한 세상을 만들자는 염원을 이 노래에 함께 담은 것일까?

이 노래를 발표할 때 이상은은 20대 중반이었다. 그 나이에 이런 시를 쓴다는 것이 놀랍다. 한편 50이 넘은 현재의 이상은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나도 20대 중반에는 강을 흙으로 메우는 꿈을 꿨다. 헌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세상에 패한 것인지 그런 유토피아는 현세에 오지 않는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유발 노아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가진 독특한 능력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실현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욕심이 상상의 나래를 달고 끝도 없이 날아오른다는 뜻이다. 그 능력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끝없이 미증유의 문명을 창조해 내고 있지만, 결국 늘 없는 것을 원하게 되고,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남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 꿈에 젖는다. 만족은 없고 반목은 피할 수 없다.

나는 이 노래 <삼도천>이 그리는 두 가지 강 즉 현실에서 우리를 가르는 강과 죽음과 삶을 가르는 강 중에 후자에 더 매력을 느낀다. 세상을 변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졌지만, 있을지 없을지 모를 죽음 뒤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오늘의 내 삶을 삼도천의 시작으로 보고 나를 바꾸려 애써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변한다고 세상이 변할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조금씩 비우고, 놓고, 잊는 행위를 시작해 본다. 이 글을 쓰는 며칠 동안도 수많은 생각들을 잘라내고, 접고, 잊으며 글을 썼다. 때로 내 글에 내가 도취해 읽고 또 읽던 문장도 아낌없이 잘라 내버리는 삼도천의 길을 갔다. 옷장 속에 1년 넘게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그들을 반길 다른 주인을 찾도록, 책장에 그득 쌓인 책들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 한 번 더 읽히도록 꽉 쥔 손을 놓으려 노력한다.

사십대 후반에 오십이 되기 전에 화해할 사람의 명단을 만들어 갖고 있던 적이 있다. 화해하기 힘들 것 같은 한 사람을 환갑 전에 화해할 사람 명단에 따로 올려놓아서 오십 전에 화해할 명단에 있던 사람들과는 마흔아홉이 되기도 전 모두 화해를 했다. 환갑 전 명단은 발전이 훨씬 더디다. 몇 명 늘어나기까지 했다. 일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한 사람도 있다. 때로 사회생활 중에 언짢았던 일보다는 가까운 사람에게 맺힌 것들이 더 오래 간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기대도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끊임없이 명단을 만들고 지워나가노라면 진짜 삼도천을 건널 때즈음 많은 것들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도 나 하나만큼 변해 있지 않을까? 삼도천이 없다 해도 웃으며 죽어갈 수 있지 않을까? 죽을 때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앨버트로스처럼 자유로운 영혼,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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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 앨범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노래는 <새>이다. 이상은이 뉴욕시에서 공부할 때 택시에서 내리는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인도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쓴 곡이다.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라는 가사만 들어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무심히 오고가는 맨해튼 거리에 떨어진 작은 새의 슬픈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죽을 처지라면 차라리 인간이 없는 먼 섬에 가서 죽으라고 한다. ‘가야 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지…’ 그렇지. 높이 날아올라 성냥갑 같은 세상을 내려다보며 날아다니던 새라면 죽는 장소도 인간이 들끓고 자동차가 매연을 내뿜는 도시보다는 먼 무인도라야 더 맞을 것 같다.

인간은 자유로움을 포기하고 사회의 안락함을 얻었다. 사회가 커지며 도시가 생겨났다. 새들은 무엇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인간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일까? 새라면 오랜 세월 바다 위를 쉬지 않고 날다 육지로 돌아와 알을 낳고 또다시 떠나는 앨버트로스처럼 자유로워야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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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의 다른 곡 중에서는 5집에 실렸던 <언젠가는>을 좋아한다. 방송에서 종종 들었고, 나의 친구 중에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이 글을 쓰며 일부러 몇 번 더 들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가사가 가슴에 촉촉이 젖는다. 회심곡에 ‘네가 본래 청춘이며, 내가 본래 백발이냐’라는 구절이 있다. 젊은 날엔 난 그냥 젊고, 아버지, 어머니는 본래 주름살투성이인 것 같지. 두고 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안다. 

탬버린을 흔들며 막춤을 추던 18세의 이상은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30여 년이 흘렀다. 한때 이상은의 호가 담다디인가 할 정도로 담다디 하면 이상은, 이상은 하면 담다디였다. 이제 이상은은 먼 세계를 떠돌다 돌아와 삶과 죽음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또 홀연히 떠난다. 마치 앨버트로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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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돌아올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서 담다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도하가》는 변한 이상은을 처음 만나게 해 준 앨범이라 내게 더욱 오래 남아 있다.

오래전에 읽은 《공무도하가》의 평에 기자가 실험적인 음악을 극찬하면서 그녀의 가창력이 늘 아쉽다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렁차지도 않고, 음역이 넓은 것도 아니고 꺽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악기 중 하나가 되는 그의 음악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그래서 목소리 자체보다 가사에 집중해 곱씹어 듣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끝없이 여러 질문도 던지게 된다.

앨버트로스가 된 그녀의 노래를 이야기하는 나의 글에 유난히 물음표가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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