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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심장과 영혼을 뒤흔드는 울림 김동률 上 <잔향>
입력 : 2020.11.02

‘내가 가진 것 감사하며 살기도 바쁜 인생, 남의 것 부러워하지 말자’가 내 인생 신조이다. 그래도 정말 부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김동률의 목소리이다. 굵고 부드럽지만 때로 비음도 섞여 나오는 들어보지 못한 매력적인 목소리이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손으로 꽉 쥘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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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동률.

물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목소리를 20년 넘게 좋아해 왔다. 그런데 막상 김동률에 대해 글을 쓰려다 놀랐다. 그의 노래 제목을 대라면 2박 3일 동안 댈 수도 있지만 그 이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인터뷰 기사 하나 변변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가 김동률을 가리켜 ‘낯가림 심하고 천상 예술가’라고 하더니 워낙 김동률 자신이 은둔형인가 보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목소리와 노래들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았다. 김동률은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 '전람회'라는 2인조 그룹으로 참가해 대상을 탔지만 그때부터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1993년 김동률이 대상을 타던 해의 대학가요제를 보지 않아서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젊음과 열정의 무대, 대학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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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대학가요제는 1년을 기다리는 행사였다. 사진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대학가요제 방영 장면.

나의 사춘기 시절 대학가요제는 1년을 기다리는 행사였다. '산울림'의 김창훈이 작곡 작사하고 서울대생들인 샌드페블즈가 부른 <나 어떡해>(그 당시 맞춤법으로 <나 어떻해>)는 김창훈이 주로 만들던 사이키델릭 록적인 분위기가 나는 시대를 앞서간 노래로, 1회 대회 대상을 탔다. 1회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곡은 이명우라는 국문과 학생이 이스라엘 노래에 고려가요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각각 1절과 2절로 붙여 자신의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른 <가시리>였다.

그다음 해 대상곡인 '썰물'이 부른 <밀려오는 파도소리>는 전주부터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해 남성 일곱 명의 화음이 어우러지는 노래이다. <나 어떡해>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곡조와 가사 화음이 좋아 합창곡으로 많이 불렸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은상을 탄 '활주로'의 <탈춤>이 인기가 많았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도 다음날 학교에 가 아이들과 책상을 두드리며 "탈춤을 추자, 탈춤을 추자"하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3회와 4회 대상곡인 김학래·임철우의 <내가>와 이범용·한명훈의 <꿈의 대화>는 남성 이중창으로, 김학래는 그 후에도 톱 가수로 오래 활동했다.

대상을 받은 곡들뿐 아니라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등은 아직도 내가 즐겨 듣는 노래이다. <연극이 끝난 후>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하고 시작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세상을 이렇게 뒤집어 바라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 기발한 가사에 매료되었다.

우순실이 동상을 탔던 1982년도에는 나의 6촌 누나도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참가해 동상을 탔다. 누나가 작곡, 작사, 피아노 연주에 노래까지 불렀다. 어머니도 우리와 같이 앉아 누나 나오는 것만 딱 보고 옆방으로 가서 이모와 한참 전화 통화를 하셨다. 나도 우리 누나가 나온다니 열심히 봤고 상을 타서 무척 기뻤지만, 우순실의 노래가 더 개성이 있고 매력적이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두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는데 역시 그때 내 느낌이 맞다. 그해 대상은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였다. 가수의 음정이 너무 불안해 대상을 탄 것이 좀 의아했지만 떠나야만 하는 사람과 보내야만 하는 사람의 사랑을 참새와 허수아비에 비유한 아름다운 노래였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도 대학가요제 소식은 종종 접했다. 1985년 대상곡인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는 텍사스 시골에서 학교 다니던 나에게 1986년 여름이 거의 다 되어서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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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대학가요제 1988년 대상곡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방영 장면.

1988년 대상곡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비디오로 봤다. 1989년 1월 학기 막 시작했을 무렵이라 별로 바쁘지 않아 차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운전하고 학교에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곳에 있던 한국 식료품점에 가 비디오테이프에 복사해 놓은 대학가요제 실황을 빌려왔다. 누가 우승을 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비디오를 봤지만 신해철의 '무한궤도'가 부르는 <그대에게>를 들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음악이 나올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대학가요제는 나만 열심히 봤던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관심이 열광적이었다. 몇몇 참가자들은 지금도 활동하는 유명한 가수나 방송인이 되었다. 노사연, 유열, 임백천 등이 모두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1978년 2회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노사연은 그때도 입담이 남달랐다. 수상 직후 TBC-FM의 간판프로인 《밤의 다이얼》에 출연했다. 당시 그 프로그램의 DJ였던 김제건이 생방송 중에 그것도 출연자 소개를 마치자마자 농담조로 “이름이 사연인데 혹시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 대학생 신인 가수는 “사연이 없어서 노(No)사연이에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도 심수봉이 본명인 심민경으로, 1978년 대학가요제 참가해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곡이라고 하면 몇 명이나 믿으려는지. 그러고 보니 1978년에 '활주로'의 배철수, 노사연, 심수봉 등 유난히 대어가 많았다. 나는 대학가요제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그후 비슷한 가요제도 많이 생기고, 좀 식상해서 서서히 관심을 잃었다.

열심히 봤던 것은 무한궤도가 대상을 탄 1989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김동률이 대상을 탄 1993년에는 미국에서 막 돌아와 모든 것이 서먹하던 시절이라 대학가요제를 하는지 마는지조차 몰랐다. 김동률의 목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후에 전람회의 1집 앨범이 나오고 라디오에서 <기억의 습작>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잔향'으로 남는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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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명반들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앨범은 그가 ‘엄친아’만 들어간다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중퇴하고 유학길에 올라 보스턴의 유명한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직후 내놓은 《토로》이다. 그중에서도 <잔향>을 나의 최애로 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피아노와 런던심포니의 수준 높은 연주, 곡 전반에 걸쳐 뒤에서 쫓아오는 발자국처럼 사라지지 않고 들려오는 6/8박자의 비트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가사의 아름다움 등이다.

김동률이 쓴 노랫말들이 다 아름답지만 <잔향>의 아름다움은 좀 다르다. 김동률의 다른 노래의 가사들은 대체로 산문적이고, 어느 한 사람이 어떤 상황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한 예로 <기억의 습작>은 마치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 <잔향>의 노랫말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역설과 비유로 가득 차 있다.

잔향(殘響)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실내의 발음체에서 나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 발음체의 울림은 그쳤지만 일단 난 소리가 건축물의 실내에 갇혀 천장과 벽을 계속 치며 윙윙 사라지지 않고 남아 들리는 소리가 잔향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낭만파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는 오스트리아의 장크트 플로리안(Sankt Florian) 수도원과 린츠(Linz)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하며 가톨릭 기도문을 차용해 모테트라는 성악곡을 여러 곡 작곡했다. 때로 독창으로 때로 합창으로 작곡하면서 그는 악보 중간중간 그랜드 포즈(Grand Pause) 즉 오래 쉬라고 써넣거나 아니면 다섯 박자 동안 아무도 소리를 내지 말고 있으라고 쉼표를 써넣기도 했다. 내가 대학 시절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할 때 지휘자 선생님이 연주일정 때문에 오스트리아를 다녀오셨다. 그때 린츠 대성당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왜 브루크너가 그랜드 포즈를 써 놨는지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이라 생각하면 될 정도로 잔향이 오래 남아 있다. 합창단이 큰소리로 ‘아베 마리아’ 하고 외치고 금방 작은 소리로 다음 구절을 노래하면 성당 안의 잔향 때문에 소리가 범벅되어 음악을 제대로 연주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아무도 노래를 하지 않지만 없어지지 않고 맴도는 노랫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브루크너는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그랜드 포즈를 하거나 아무도 숨소리도 내지 말고 다섯을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때 연주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날은 발음체인 연주자가 모두 연주장을 떠난 후에도, 나 역시 연주회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운 뒤에도 그 연주가 귓가를 맴돌 때가 있다. 이런 건 사전에도 없는 잔향이다.

때로 이런 잔향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들려온다. 내 마음속에 갇혀 사라지지 않고, 나의 심장과 영혼을 계속 치며 귀를 막아도 들리는 잔향이다. 일명 상사병이다. 언젠가 개그맨 신동엽이 사업실패로 맘고생을 많이 하다 토크쇼에 나와 ‘다이어트 중에 최고의 다이어트는 맘고생 다이어트’라고 한 적이 있다. 맘고생 중에서도 상사병만큼 영과 육을 모두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게 하는 맘고생도 드물다. 참, 사랑이 뭐라고.

 

* 김동률下에서 이어집니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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