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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기다린 여자 음악가의 시대① 힐데가르트 폰 빙엔과 성시연, 그리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박은빈
입력 : 2020.10.12

 아직도 제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딸 하나 더 낳을걸 그랬어”라고요. 무려 일흔 셋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지금 딸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니요! 그 점이 참 엉뚱하면서도 짠하고 그랬습니다.

 더 이상 부족한 것 없을 것만 같은 어머니의 삶에 늙어서까지 잔손가는 딸이 더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보았는데요. 추리의 추리 끝에 재미있는 결론을 내보았습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달려온 할머니의 삶에 딸의 존재가 필요한 것은, 아마도 함께 늙어가는 여자들과의 평범한 수다가 더 필요해서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와 제 어머니가 시간을 보내는 가장 많이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아무 쓸모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거거든요.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 테지요. 서로 이상한 소리를 해도 그저 함께 웃고 넘어가고, 기분 나쁜 소리가 나오면 으르렁대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다시 서로 마주앉아 수다를 떱니다. 엄마와 딸 혹은 여자들만의 대화가 주는 힘, 때문은 아닐까요.

 제 어머니는 외동딸인데, 주변 친구 분 중에 7자매부터 3자매까지 딸 부잣집 친구 분들이 많으세요. 친구들끼리 노년의 사는 모습들을 나누면서, 자매의 존재가 굉장한 힘이라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큰 병치레를 하거나, 배우자의 사별 등 인생의 큰 굴곡을 겪는 과정에 자매만한 존재가 없다는 거죠. 그 다음이 딸의 존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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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H

 

 저도 자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몇 해 전, 제 아이가 2살 때 급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 수술실 앞에서 대기해 줄, 가족인 보호자가 없었거든요. 당시 제 어머니께서는 집에서 어린 제 아들을 돌보셔야 했고요. 남편은 급히 휴가를 낼 수도 없고, 쉬는 날 없이 근무 중이었고요. 사표 쓰지 않는 이상 올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전신 마취 받는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요양사 업체에 요청해 오신 분께서 보호자로 등록하고 수술을 마쳤던, 아픈 기억입니다.

 아니 주변에 수술실 보호자로 와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냐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알고 보면 사연 없는 집이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도 그런 경우에요. 물론 제 주변 친한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부탁해볼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선뜻 입을 떼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새벽 5시에 병원으로 와서 3시간에서 5시간 정도 있어줄 수 있어?”라는 말을 꺼내가기 참 어려웠어요.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끼치는 민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언니나 여동생이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말했을 테지만요. 한 명 뿐인 제 형제인 오빠는 올해까지 10년 넘게 해외 근무 중이고요. 급할 때 필요 없는 대표적인 가족이죠. 사실 오빠도 그렇게 살려고 계획한 건 아니니, 미워하진 않아요. 다만 짜증날 때는 더러 있다는 것은 분명히 밝힐게요!

 

여자의 힘은 여자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여자의 힘은 여자다”라고도 생각해요. 아마 남자의 힘도 남자겠죠? 유치한 편 가르기나, 여성성을 특별히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요. 분명 여성만의 강인함은 가족의 둘레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빛나고 있지요.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더더욱요. 물론 클래식 음악계도 예외는 아니고요.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연주자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공연이 열리지 못할 거고요. 지금은 팬데믹으로 급격히 공연 횟수가 줄었지만요.

 사실 지구촌 클래식 음악계의 역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여성 참여율이 무척 저조한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물론 서양 고전음악사에도 10세기부터 활동한 여성 음악가의 기록이 있긴 하지만요. 최초의 여성 음악가로 기록된 분은 독일의 수녀였던 힐데라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년~1179년)이에요.

 당시 교회 음악에 새롭고 낯선 시도를 많이 했던 음악가예요. 이러한 노력으로 서양 음악도 한 단계 발전이 있었고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을 빛낸 위인 100명에 포함되기도 했는데요. 아쉬운 점은 이러한 여성 음악가들이 많지 않았다는 거죠. 무려 천 년 넘게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작곡한 교회 음악입니다. 예수와 성모를 찬양하던 교회 전례음악입니다. 굉장히 경건하고, 또 단순합니다. 

 물론 그 세월동안 수많은 여성 음악가가 활동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남성 연주자에 비해서 기회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거든요. 대표적으로 교향악단의 경우에는 남성과 여성의 참여 비율이 어느 정도 상식적이긴 하지요. 여성 연주자의 비율이 높은 단체들도 있고요. 그러나 여성 단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고요. 세계적인 교향악단 중 모 오케스트라는 중요한 무대에는 남성 단원들로만 팀을 짜서 오르기도 해요. 네, 지금도요.

 대표적으로 지휘자의 경우에는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지휘자를 환영하지 않던 분위기였어요.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지휘자만큼은 남자에게 맡기던 선입관이 분명히 있었어요. 1900년 이전에도 지휘를 공부했던 여성 음악가들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한 마디로 지휘자가 꿈이었던 여성들은 다른 전공의 여성 연주자들보다 더 한 차별을 받아야 했고요.

 저는 여성의 힘, 여성만의 포용성, 여성의 강점이 눈부시게 발휘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지휘라고 생각해요. 다행인 것은 최근 10년 사이 지구촌 클래식 음악계에 여성 지휘자의 기회가 눈에 뜨게 증가했다는 점이에요.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지휘자의 활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발전하는 추임새도 보이고요. 아주 기분 좋은 여성의 힘이 펼쳐지는 듯해서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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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과 김민재(박준영 역)이 음악계의 유력 인사인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를 초대한 프라이빗 콘서트에서 라벨의 <치간느>를 연주한 장면입니다. 이전 시대에 비해 분명 여성 지휘자의 무대와 역량이 활발해진 요즘입니다.

 최근 종영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지휘자에 대한 작가의 재미있는 의견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극중 여성 지휘자는 굉장히 존재감 있는 음악계인사이자 따스한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그렸고요. 남성 지휘자는 연주 직전 박은빈(채송아 역)을 쫓아내는 등 일종의 폭군 같은 모습을 연출했죠.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나 실제 여성 지휘자들은 남성 지휘자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해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어서겠지요. 

 극중 서령문화재단 이사장의 저택에서 열렸던 프라이빗 연주회 장면도 인상 깊었어요. 이 귀한 자리가 열린 이유는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에게 신동 연주자인 고소현(양지원 역)과 김민재(박준영 역)의 연주를 선보이기 위해서였거든요.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마에스트라라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이 장면에 실제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영예를 선사받았던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이 출연, 김민재와 라벨의 <치간느>를 연주하며 큰 화제를 모았죠. 연주회가 끝난 후 마에스트라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김민재에게 따스한 한 마디를 건넸죠. “네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해. 다른 사람 마음에 들려고 하지 말고”라고요. 그 장면에서 여성 지휘자의 강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봤던 것 같아요. 

 2014년의 봄, 제가 여성 지휘자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일이 있었어요. 바로 여성 지휘자 성시연이 경기필의 ‘정규직’ 지휘자로 채용된 사건이었어요. 정말 유리천장을 제대로 부순 사건인데, 그 이전에는 여성 지휘자가 국내 오케스트라의 정규직 지휘자로 채용된 경우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임기를 마치고 다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행보를 잇고 있는 성시연을 비롯해, 여자경과 김다솔 등 젊은 여성 지휘자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어요.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다음 회에서 여성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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