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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나훈아上 <머나먼 고향>
입력 : 2020.10.13

매년 추석이 되면 한국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미국에 있을 때는 몇 가지 한국 음식을 장만해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나눈다. 요즘 미국 사람들의 한국 음식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 초대만 해주면 누구나 한걸음에 달려온다. 2020년 추석은 허무하게도 지나갔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한국은 일정을 길게 잡아 다녀와야지, 괜히 추석 쇤다고 갔다가는 자가격리만 하다 올 것이라 한국 방문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을 부르자니 사회적 거리두기 하며 띄엄띄엄 앉아 이야기도 제대로 못 하고 밥만 먹다 갈 것 같아 그만뒀다.

막걸리 한 병 사다 몇 가지 한국 음식을 만들어 혼자 꾸역꾸역 먹었는데 막걸리가 너무 맛이 없어 화가 났다. 무슨 막걸리에서 칼피스(カルピス) 맛이 나는지. 11월에 한국에 갈 일이 있긴 한데 ‘과연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싱숭생숭하기만 했다. 어쩌면 기분이 우울해 막걸리 맛도 더 이상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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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언택트 공연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KBS

한국도 우울한 추석은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다른 해 같았으면 추석 연휴를 노리고 극장가에 야심작들이 속속 개봉한다. 아직도 《쉬리》와 《타이타닉》이 맞붙었던 1998년 추석을 기억한다. 그뿐 아니다. 추석이 되면 톱 가수들은 효도 디너쇼며 콘서트로 분주하다. 2020년은 이런 풍경이 모두 사라지고 온통 연휴 동안 성묘도 가족 모임도 자제하라는 말만 들려왔다.

그 와중에 인터넷에 도배가 된 공연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나훈아의 텔레비전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이다. 뒷북치기의 제왕인 나는 재방송도 다시보기도 국물도 없다더니 ‘기습적’으로 해버린 재방송마저 지나간 뒤 혹시 한 조각이라도 어디서 주워 볼까 매일 인터넷 서핑을 하다 데자뷔의 느낌을 받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추석, 나훈아 뭔가 어디선가 한번 봤 던 이 느낌. 이건 뭘까?

 

어게인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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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추석. 미국으로 유학 가서 처음 맞은 추석이었다. 9월 말이었다. 방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9월 29일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이었는지는 몰랐고, 주말이었던 건 기억한다. 룸메이트가 주말 동안 집에 갔는지 여자 친구 집에 가서 살고 있는지 금요일 오후부터 그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주말마다 외삼촌 댁에 가서 한국 음식 먹고 쉬고 오곤 했는데 그다음 주에 시험이 세 개나 있어 처음으로 주말에 기숙사에 남아 주말 내내 도서관에 가서 세 과목 시험 준비를 했다. 학생들이 주말에 집으로 가고 학교가 텅 빈 채 썰렁한 아침에 어머니가 전화해서 추석이라고 말을 했지만 9월 말 텍사스는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이라 별로 추석 기분도 나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오후 내내 역사 시험공부를 했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시절이라 주관식 예상 문제를 몇 개 뽑아 답안을 작성하고 그걸 외워서 쓰고 또 쓰며 준비를 하다 어둑해져서 저녁을 먹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내다보며 ‘미국에도 오늘 보름달이 뜨네’라는 한심하고 무지한 생각을 하면서 난데없이 혼자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에? 이게 웬일인가? 한국에서는 한 번 불러본 적도 없고 들어보기만 했던 노래인데 내가 가사를 다 아네. 나훈아가 1971년 발표한 <머나먼 고향>이다. 

서울 우리 집 동네에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병원에서 앰뷸런스 운전하던 기사 아저씨가 자취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랑 같은 시간에 자신도 퇴근하는 날에는 우리 차를 운전하고 와서 우리랑 저녁도 먹고 축구도 하다 자기 집으로 갔다. 주말에 비번이면 투잡으로 외할머니를 우리 차로 교회에 모셔다 드리고 모셔 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할머니 모셔다 드리고 교회 끝날 때까지 우리 집 마당에 앉아 기타 연습을 했는데 그 아저씨가 즐겨 연습하던 곡이 바로 이 노래였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텍사스에서 서울은 남쪽이 아니라 북서쪽이지만 방향은 상관이 없다. ‘그리운 고향’이 어느 하늘 아래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다음 대목은 그 당시 울컥하지 않고 부를 수 없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9월 말이면 첫 학기 시작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이고 미국에 도착한 지 6주 정도 되었을 때이다. 한창 집 생각이 많이 날 때였다. 처음 도착해 외삼촌 댁에 2주 머물 동안에는 연수 간 것처럼 재미있고 신나기만 했다. 사촌 형과 누나들이 주말마다 일부러 학교에서 집으로 와서 나랑 놀아줬다.

주중에는 외숙모와 이리저리 다니며 기숙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 당시에는 유학 가면 관할 지역 대한민국 영사관에 가서 유학생 체류 신고를 해야 했기에 외삼촌 댁에서 차로 40〜50분 가는 휴스턴 총영사관까지 가서 서류 작성해 제출하고 오는 길에 점심 먹고 들어오니 반나절이 후딱 가기도 했다.

하지만 8월 말 외삼촌과 외숙모가 나를 기숙사에 내려주고, 기숙사 방 청소며 정리를 해주신 후 부우웅 하고 떠나는 차 뒤에서 손을 흔드니 향수병이 엄습했다. 다음 날 월요일은 오리엔테이션 다녀오고 학과장 교수님 만나 면담하고 다음 학기에 수강할 과목들을 함께 정한 뒤 교과서를 사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난생처음 하루 종일 영어로 이야기하고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밤새 영어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악몽을 꿨다.

다음날은 등록하다 하루가 갔다. 당연히 온라인 수강 신청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큰 체육관에 들어가 영문과 사학과 등의 데스크로 일일이 찾아가 긴 줄을 서 있다 수강과목의 스티커를 받아 수강 신청서에 붙이며 다녀야 했다. 수강 신청하다 날 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날 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악몽을 꾸고 깼다. 수요일에는 할 일이 없었다. 수강 신청이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데 나는 이미 화요일에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하루 온종일 혼자 교과서 꺼내서 읽어 봤다, 나가 걸어 다니다 빈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 엄마, 아빠 얼굴이 보이며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이 한 번 핑 돌았다.

이메일과 화상 통화는 당연히 없고 편지를 쓰면 열흘 정도 걸려 한국으로 갔다. 전화는 요금이 너무 비싸 1〜2주에 한 번 정도 아주 간단하게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첫 학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도 전화하면 울먹울먹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픈 대학 시절이지만 그땐 빨리 공부 마치고 ‘사랑하는 부모형제’에게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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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한가위더하기콘서트 중 <그리운 고향>을 부르는 나훈아. ⓒ부산MBC 유튜브 화면 캡처

<머나먼 고향>은 작곡 작사가인 박정웅 씨가 고향 밀양을 떠나 서울로 온 뒤 처음 맞는 추석에 고향을 그리며 가사를 썼다고 한다. ‘천리 타향 낯선 거리 헤메는 발길’ 그때는 서울에서 밀양도 머나먼 고향이었나 보다. 나는 어린 나이에 천리도 아니고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 남부의 대학의 행사가 온 마을의 행사인 작은 시골 마을에 박혀 있었으니 하루도 집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다음 대목은 기사 아저씨가 기타를 서툴게 연주하며 부르는 것도 들었고 악보에 나와 있는 가사도 읽어 봤지만 무슨 말인지 어린 내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술은 분명 마시는 술을 뜻하는 것 같은데 뭘 타서 마신다구? 그런데 그 1985년의 추석날 창문을 내다보며 이 노래를 부르다 보니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술을 마시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어보려 하지만 ‘마음은 (마냥)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이런 뜻이었다.

대학생이었던 1985년에도 나는 맥주 한 잔을 다 비우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못했지만, 술을 마셔도 잊히지 않는 애틋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내 경험으로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리운 고향>은 대번에 내 애창곡 리스트에 올랐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부를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그 대목도 완전히 이해한다. 추석날 혼자 막걸리에 그리움을 타서 마셔도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고 막걸리 맛만 버려 화가 난다는 뜻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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