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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저 달이 고향 땅도 비추겠지 현인下 <굳세어라 금순아>
입력 : 2020.10.01
현인은 1949년 <신라의 달밤>을 발표하고 1953년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 그 시절의 인기가수였다. 실향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추운 겨울의 함경남도 흥남의 풍경으로 시작한다.'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아마도 노래의 화자는 그곳에서 금순과 만나 남으로 가기로 한 것 같다. 둘은 정인이었던 듯하다. 모르긴 해도 흥남항에는 남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하지만 금순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피눈물을 흘리며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흥남항에서 떠나는 배를 보내고 며칠 더 금순을 찾다 홀로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금순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다 공습에 폭격을 맞고 죽은 것일까?...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上에 이어

피눈물을 삼키고 금순 없이 38선을 넘은 화자는 2절에서 영화로도 유명한 ‘국제시장 장사치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영화 <국제시장>을 보지 못했다. 아니 한 번 보려다 시작 부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나의 외가는 할아버지의 형제들 몇몇이 이미 서울에 자리 잡고 사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운이 좋아 오갈 데 없는 신세는 아니었다. 어머니 초등학교 친구들 중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며 살아남은 분들의 처참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도저히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무작정 38선을 넘고 봤더니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은 노숙자가 되고 구걸도 했다. 어머니 초등학교 친구 한 분은 10대의 나이에 을지로에 서서 목판을 목에 걸고 “다이아 찡(당시 남한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미군의 상비약. 페니실린이 나오기 전에 사용하던 살균제)” 소리를 지르며 노점 장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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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중 한 장면. 전쟁의 아픔을 안고 피난민들이 정착했던 곳이 바로 부산 국제시장이다.

노래 속의 화자도 비슷한 고생을 했겠지만, 장사를 한다니 이제 노숙은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인 것 같다. 그는 여전히 금순을 잊지 못한다. 아니 두 다리 뻗고 잘 곳이 생기니 금순 생각이 더 간절했을 것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라고 금순을 걱정한다. 그리움이 사무칠 때 달을 쳐다보면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저 달이 고향 땅도 비추겠지’ 혹은 ‘저 달을 금순이도 보고 있겠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 달이 고향 땅도 비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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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중.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영도다리는 부산 중구와 영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지금은 영도대교라고 한다. 1930년대 처음 건설 때부터 배가 지나가는 시간에 다리가 올라가는 개도식이라 유명했다. 전쟁 중에 피란민들도 그 시간에는 피란살이 설움도 잊고 모두 나가 다리가 올라가는 것을 봤다. 그는 영도다리에 서서 다리 난간 위에 걸린 초승달을 쳐다보며 당장 달려가 끌어안고 싶은 금순의 얼굴을 그려봤을 것이다.

달에게는 38선도 없고, 이념도 없고, 남과 북을 동시에 비추는데 그는 38선을 다시 넘을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굳세어라 금순아>이지만, 이 노래에 3절이 있다는 것은 훨씬 후에 알았다.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현인이 나와 이 노래를 부를 때 3절까지 부르는 것을 들었다.

3절에서 화자는 여전히 금순을 잊지 못한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라고 한다. 나는 일찌감치 금순이 폭격을 당해 죽었나 보다 생각을 했지만 이 사람은 아직도 그녀가 살아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북녘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나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노래는 기약 없지만 그래도 희망적으로 끝난다. 그게 1953년이었다.

며칠 피신한다고 생각하고 남으로 내려왔다 생이별한 사람들이 그래도 조만간 다시 만날 거란 생각을 하던 시절이다. 그 뒤로 조만간이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1세기가 와도 서로 생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그들은 그 희망을 끝까지 간직했을까?

 

실향민은 가슴에 한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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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변함없이 추석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망향(望鄕)의 한으로 먼산만 바라보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다 돌아가신지 오래이다. 할아버지 동생 한 분이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찾아뵈었을 때는 조카인 어머니조차 알아보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붙잡고 북에 남은 바로 밑에 동생의 소식을 물었다. 치매에 걸려 내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북에 두고 온 형제는 잊지 못하고 기억한다. 실향민들은 희망이 변해 한이 되어 그 한을 품고 살다 이렇게 하나 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가 어렸을 때는 버스를 타거나 길을 갈 때 주변에서 귀에 익은 평안도 말투가 곧잘 들리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 시내를 아무리 활보해도 평안도 말이 들리지 않는다. 평양냉면집에나 가야 가끔 들린다. 이제 월남 1세대는 다 돌아가신 탓이다. 어머니의 친구들 중에 조금 늦게 월남한 분들은 아직도 평안도 어투를 사용하지만 그분들도 이제 다 여든이 넘었다.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남은 우리는 통일에 대한 꿈이라도 꿀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어려서는 나의 외가가 있던 신의주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신의주가 전쟁 중에 심한 폭격을 당해 도시가 다 파괴되고 새로 지은 건물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관심이 줄었다. 그저 ‘통일이 되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까? 당장 힘들어도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첨단기술을 합해 우리 민족이 크게 도약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만 가끔 할 뿐이다. 할아버지를 보고 자란 내가 이런데 내 밑에 대로 내려가면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올해 추석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성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조상님께 죄송한 마음을 조금만 덜어 평생 부모를 다시 보지 못하고 성묘도 하지 못하고 그리움만 안고 살다 간 분들과 그분들과 헤어져 북에 남은 이산가족들의 아픔도 한 번쯤 기억해 드리는 것은 어떨지.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도 한번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가사가 1950년대 말투로 생경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있다. 현인의 창법이 거슬리면 유튜브의 〈주현미TV〉에서 주현미의 노래로 찾아 들어도 좋을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미국 땅에 갇혀 언제나 다시 맘 놓고 한국을 오갈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맞는 이번 추석에는 외할아버지의 슬픔이 더욱 내 가슴을 파고든다. 서울에서 어머니가 봤던 추석보름달이 미국까지 와 내가 사는 곳 하늘에 걸릴 때 그 달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할 것이다.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했던 나의 외할아버지와 많은 실향민들이 이제는 험난했던 이 세상을 떠나 꿈에 그리던 혈육들과 재회하기를 간절히 빌어 볼 것이다. 해피추석.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 출처 : Sunhee Kwon 유튜브

 

주현미가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 /출처: 주현미TV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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