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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할보르센- ‘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
입력 : 2020.09.10

 얼마 전 넘쳐나는 책을 정리해 보겠다고 작정하고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남편의 서재와 거실 제 책장에서 같은 책이 나왔습니다. 누런 종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한때 이 책은 ‘연애의 바이블’이라 불리며, 모든 미혼남녀의 관심을 받았던 책입니다. 번역서이지만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 자체부터 상반된 두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책이라 인기가 있었죠.

 먼지 쌓인 책을 펼쳐보니 각자 책의 첫 장에 문구를 적어 놨더군요. 책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흥미로웠어요. 서로 밑줄 긋거나 접어둔 글귀들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각자가 달아놓은 주석도 어찌나 그렇게 다르던지요. 막상 책의 내용보다 둘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더 재밌었습니다. 읽으면서 혼자 피식피식 웃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오랜만에 서로의 생각을 알아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결국 그날도 정리는 못했습니다.

 

맥주엔 치킨이지! 아니야 맥주엔 역시 골뱅이지! 

 적잖은 결혼 생활 동안 특별히 크게 싸운 기억은 없지만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에 화가 나곤 하는데,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니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남편은 저와 정말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언어와 저의 언어는 많이 달랐습니다. 잠시 잊고 살았어요. 부부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다 이해해 줄 거라는 환상을 품으며 서로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서운하고 화나고 그랬던 거죠.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 이체입니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이해하고 싶은 관계가 부부인가 싶습니다. 같이 있다가도 문득 외롭고, 서로가 장기 출장을 가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떨어져 있을 때는 막상 또 외로워서 같이 있고 싶습니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같이 나눠 마시고 싶은 사람이면서도 막상 안주를 놓고 싸웁니다. 치킨이냐 골뱅이냐! 

 

원작은 헨델, 리메이크로 더 유명해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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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처럼 음악에서도 악기들이 그런 관계에 있습니다. 부부 같은 관계 말입니다. 혼자서 솔로로 연주하는 곡이 아니고 다른 악기와 함께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각자 솔로 역할이 중요한 곡입니다. 바로크 작곡가 헨델이 만든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 사단조 작품번호 432 (HWV. 432) 중 여섯 번째 악장인 ‘파사칼리아’를 작곡가 할보르센이 편곡한 ‘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입니다. 헨델의 사단조 모음곡 작품번호 432는 서곡인 오버츄어, 안단테, 알레그로, 사라방드, 지그, 파사칼리아 등 6악장으로 구성된 모음곡입니다.

 할보르센은 작곡가 에드워드 그리그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1864년에 태어나서 1935년에 죽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기 때문에 현악기나 오케스트라 곡을 주로 많이 다뤘죠. 이 곡도 원래 헨델이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한 곡인데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겁니다. 간혹 첼로를 대신해서 비올라가 연주를 하기도 해요. 바이올린이 고음의 멜로디를 연주하면 비올라나 첼로가 저음을 연주합니다. 여자의 높은 음성과 남자의 낮은 음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제목은 ‘파사칼리아’인데, 이건 뭘까요? 원래 ‘파사칼리아’란 행진곡이라는 뜻의 ‘파사칼레’에서 유래된 춤을 일컫는 말입니다. Pasear ‘걷다’와 calle ‘거리’라는 스페인어의 결합이죠. 짧은 멜로디를 약간씩 변조해가며 계속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누구의 파사칼리아. 이런 식으로 작곡가의 이름을 붙여 가며 구분합니다. 그래서 이 곡 같은 경우는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로 부릅니다. 파사칼리아는 17세기 초엽 에스파냐에서 발생한 느린 3 박자계의 무곡인데, 프랑스 궁정 발레에서도 사용되다가 점차 독립된 기악곡으로 발전합니다. 

 우린 모두 혼자서만은 살 수 없습니다. 악기 연주도 마찬가지예요. 솔로 악기를 위한 곡이긴 해도 대부분 피아노나 기타 또는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필요한 곡이 많습니다. 무반주라 불리는 솔로 곡도 좋지만 결국 다른 악기와 하모니를 이루면서 연주될 때 더 아름답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같이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 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가 쨍쨍 울려 퍼지는 순간에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이중주를 들으며 다시금 부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과연 오늘 저녁엔 맥주 안주가 통일될 수 있을까요?

 

유튜브 검색어 

할보르센-‘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

바이올린 이작 펄만 /비올라 핀커스 주커만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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