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최소한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 필립 글래스 '미친 질주'
입력 : 2020.06.24

미니멀리즘이란 단어가 주변에서 많이 들립니다. 불필요한 것과의 이별, 최소한의 삶, 이런 문구가 함께 들리는 것을 보면 더 갖고 있어서 좋은 것보다 없어서 편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막상 미니멀리즘 그대로 살아지진 않지만, 살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많이 갖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최소한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는 법을 익히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인 것을요.

우리는 음악에서도 지금까지 다양하고 많은 음악적 재료로 거대한 성찬을 즐기는 것에 익숙했어요. 그런데 여기 파격과 변신을 도모한 현대 작곡가가 있습니다.  미국의 현대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 )는 새로운 것을 계속 더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가면서 음악을 만듭니다. 음악 안에 응축된 의미를 진하게 녹여내는 자기만의 방식을 사용하는 겁니다.

필립 글래스라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이력은 대단히 독특합니다. 1937년 미국의 볼티모어에서 유대인 부모님에게 태어난 그는 레코드 가게를 하고 라디오를 고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다양한 음악을 접합니다. 저는 이런 필립 글래스의 이력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같습니다. 하루키가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한 영향으로 많은 음악을 접했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필립 글래스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거나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시작해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낸 보통의 작곡가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이 아닌 음악을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처음 대면한 겁니다. 아버지의 레코드 가게 일을 도우면서 음악을 알아가고, 새로운 제품을 주문하면서 재즈나 팝 그리고 록과 현대 음악 목록을 익혔다고 해요. 그래서 그의 음악 세계는 클래식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재즈도 현대 순수 음악도 마지막엔 영화음악까지. 그냥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글래스의 음악이 흐릅니다.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반은 귀동냥으로, 반은 어깨너머 배우기 시작한 악기. 그는 8살에 플루트를 배우고 피아노에 관한 관심도 드러냅니다만 어디까지나 취미 수준입니다. 그러다가 공립학교인 시티 칼리지에 다니게 되고 15살에 시카고 대학에 조기 입학해서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훗날 글래스 음악의 자양분을 만들어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음악적인 소양을 기반으로 문학, 역사, 철학, 수학, 과학 등에 폭넓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등 재즈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변하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을 하는 거죠.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1958년 21살의 나이에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면서고, 본격적으로 줄리아드 졸업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나디아 블랑제와 인도 음악 작곡가인 라비 샹카르를 만나면서 또 다른 음악의 세계를 영접합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묘한 중독

01242016063002437162.jpg 
2009년 미국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두 피아니스트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와 미키 나메키와가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에게 "앙코르" 연호를 받고 있다. ⓒ조선DB

누벨바그 영화, 아방가르드 댄스 등의 신문화를 접하면서 연극과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인도 여행을 통해 얻은 명상의 경험과 깨달음으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음악의 선기능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특이한 이력의 정점은 마흔이 넘도록 뉴욕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과 배관공 택시 운전을 했다는 것인데요, 위대한 작곡가의 판에 박히는 이력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면서 그가 제대로 위대해 보입니다. 낮엔 돈 벌고 밤엔 작곡하는, 그의 현실적인 음악가로서의 생계가 듣는 이에게도 감동을 느끼게 하죠.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입니다.

아무리 힘든 공연을 해도, 아무리 먼 곳까지 비행을 하고 다녀도 날마다 5시간씩 작곡하는 데 바쳤던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답니다. 자기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 것이죠. 그의 이런 집념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웬만하면 이제 그만 느슨해지기도 할 텐데, 그의 열정은 쉴 줄을 모릅니다. 올해 나이 83살로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노장의 음악가에게 다시 한번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무한 반복으로 들리겠지만 듣고 있으면 묘하게 중독됩니다. 저는 새벽마다 필립 글래스 음악에 맞춰 요가를 합니다. 그의 음악에 맞춰 몸을 깨우고 나면 정화된 기분이 들어요.

1976년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성공을 한 이후 많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는 글래스. 우리나라 박찬욱 감독의 작품 <스토커>에서도 음악을 맡았고, 니콜 키드만이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에서도 그의 음악이 흐릅니다.

오늘은 ‘미친 질주’라는 제목의 멋진 피아노곡과 <디 아워스> ost를 함께 들어볼게요. 피아노나 전자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미친 질주’는 1979년 티베트의 정치적, 종교적 최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며 작곡을 한 곡인데, 작곡가 스스로가 불교사상에 깊은 음악적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곡을 통해서 티베트인들을 위로하고 중국에 평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랍니다. 한번 들어서는 바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 최소한을 추구하는 그의 미친 질주가 느껴질 겁니다.

 

필립 글래스 연주 - ‘미친 질주’

 

 

영화 <디 아워스> ost
Music From The Movie ‘The Hours’, by Philip Glass.

 

 

조현영 피아니스트,아트앤소울 대표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달의 인기기사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