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pp 로고
칼럼진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보는 인물 과학사
인류의 과학 문명을 만든 과학자들의 발상과 과학 원리를 공부하는 곳입니다. 논문처럼 어렵지는 않지만 아주 쉽게 술술 읽히는 글도 아닙니다. 시간이 있고 걱정거리가 없을 때 천천히 읽으면 좋습니다.
헤비급 권투선수는 어떻게 우주 팽창의 증거를 발견했을까?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 11. 20. ~ 1953. 9. 28.)
입력 : 2020.06.05

noname01.jpg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 11. 20. ~ 1953. 9. 28.)
그림 신로아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에서 25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이웃 은하이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M31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noname02.jpg

밤하늘을 상하로 가로지른 은하수와 안드로메다 은하(화살표↓ 시직경 2.5°, 보름달의 5배 크기)
그림 출처: Hubblesite(NASA, ESA, Z. Levay and R. van der Marel, T. Hallas, A. Mellinger)

 M31은 18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 1730~1817)가 또렷하지 않은 뿌연 천체에 번호를 붙인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그는 소위 ‘혜성 사냥꾼’으로 혜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혼동하기 쉬운 뿌연 천체를 확인하여 103개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추가된 7개의 천체를 포함하여 메시에 천체 목록은 M1부터 M110까지 총 110개로 구성되어 있다.

 천체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뿌옇게 보이는 천체들1)은 종류가 다양하여 은하(Galaxy)처럼 거대한 천체일 수도 있고, 별들이 밀집한 성단(Star cluster)일 수도 있고, 가스와 티끌로 이루어진 성운(Nebula)일 수도 있다.


 1) 은하, 성단, 성운의 허블 망원경 촬영 사진

 noname03.jpg noname03-2.jpg noname03-3.jpg

(왼쪽부터)은하: M31 안드로메다(2012.01.12), 성단: 47Tucanae0(2013.07.18), 성운: M1 게성운 (2020.01.05.)
허블 우주 망원경(NASA's Hubble Space Telescope) 촬영 사진


 20세기 초에는 은하가 ‘우리 은하(銀河水, Milky way galaxy)’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은하들은 모두 성운으로 간주되었고, M31도 안드로메다 성운(Andromeda Nebula)으로 불리고 있었다.

 1924년 11월 에드윈 허블은 M31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수 밖에 있는 또 다른 섬우주(Island universe)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당시 허블은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리를 실제 거리의 절반도 안 되는 100만 광년으로 계산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우주의 크기는 삽시간에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이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우리 은하계로부터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허블의 법칙)을 파악해냄으로써 진화하는 우주(빅뱅 이론, Big Bang theory)의 증거를 제시하게 되었다.

 

에드윈 허블의 일생

 에드윈 허블은 존 파월(John Powell Hubble)과 버지니아(Virginia née James)가 낳은 팔남매 중 셋째로 미국 미주리주(State of Missouri) 마시필드(Marshfield)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보험회사를 운영했고, 아버지는 네 개 지부의 책임을 맡은 임원이었다.

 허블은 마시필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족이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사하면서 12세에 휘튼중등학교 8학년(중2)으로 편입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키나 덩치가 동급생들보다 컸고, 읽기 쓰기도 잘했으므로 학업에는 문제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키가 190센티미터였고 만능 운동선수로 활약했다. 이웃 학교와의 체육대회에서 농구,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해머던지기, 1마일 계주 등 7종목에서 우승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높이뛰기 선수로 일리노이주 신기록을 세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906년 성적우수자 장학금을 받고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 그는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미식축구부 코치가 그의 운동 능력을 알아보고 입단을 권유하자 허블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므로, 허블은 스포츠 통계자료를 조사하여 ‘야구보다 미식축구가 덜 위험하다’고 주장했다가 오히려 야구까지 금지당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그는 헤비급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등록하고 여러 차례 경기에 나갔으며, 농구부 센터로도 활약했다. 아버지가 권투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1907년 시카고대 물리학 교수인 마이컬슨2)이 광간섭계를 만든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관심이 부쩍 생긴 허블은 3학년이 되자 물리학 조교를 신청했고,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 1868~1953) 교수의 실험 조교가 되었다. 밀리컨은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훗날(1923)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인물이다.

2)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 광간섭계를 만들어 지구 공전에 따른 빛의 속도 차이를 측정하는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우주 공간이 에테르로 가득 차 있어서 지구 공전 방향에 따라 측정되는 빛의 속도가 달라질 것을 예상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빛의 속도 차이는 검출되지 않았고, 우주 공간에 에테르 같은 물질은 없으며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광속불변의 법칙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허블은 로즈(Rhodes) 장학생3)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 액수도 컸지만, 국제적인 장학생이라는 명예를 얻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1910년 9월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도중에 스페인어로 전공을 바꾸어 공부하고 1913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3) 로즈 장학금: 영국 출신의 사업가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가 만든 국제 장학금. 세실 로즈는 남아프리카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의 다이아몬드 채광권을 독점하고, 식민지 총리를 지낸 제국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1913년에 그의 아버지 존 파월이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해 허블은 켄터키에서 변호사 구술시험을 치르고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고 뉴올리버 고등학교의 스페인어 교사가 된 그는 물리와 수학 수업도 맡았고 농구 코치도 겸임했는데 여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듬해 허블은 천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시카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이 운영하는 여키스 천문대(Yerkes Observatory)에서 일하면서 수업료와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이었다. 여덟 살 생일에 외할아버지로부터 손수 만든 천체망원경을 선물로 받았던 그는 밤하늘에 대한 꿈을 간직해 왔던 터였다. 아버지의 죽음 후 비로소 허블은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 셈이다.

 허블은 여키스 천문대에서 찍은 항성의 사진을 십 년 전의 사진과 비교하여 항성의 ‘고유 운동4)’에 관한 논문을 썼다.

4) 고유 운동(proper motion):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항성이 천구 상에서 위치를 바꾸는 운동

noname04.jpg

 [ 별의 고유 운동 ]
 고유 운동 값은 지구 공전에 의해 변화되는 영향을 제거하고, 별이 실제로 우주 공간 상에서 움직임으로써 나타나는 위치의 변화 각도를 측정한다. 그 값은 1년 동안에 변화된 위치의 각거리(초/년, ″/년)로 나타낸다. 그림은 약 11″/년의 고유 운동을 보이는 바너드 별(Barnard's Star)의 사진으로 2012년 6월, 2013년 6월, 9월에 찍은 사진을 겹쳐서 좌표로 나타낸 것이다. 2012년 6월~ 2013년 6월은 1년 간격으로 별이 직선으로 움직인 상태를 반영하지만, 2013년 6월~9월은 3개월 간격이기 때문에 별의 위치가 지구 공전에 의한 동-서 겉보기 진동 효과로 인하여 직선 경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by Robert J. Vanderbei. 그림 출처: princetonastronomy.wordpress.com

 1916년 늦여름, 허블은 로스앤젤레스 윌슨산(山) 천문대(Mount Wilson Observatory) 부대장으로부터 ‘학위 논문을 완성하면 내년에 연구원으로 초빙하고 싶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1917년 4월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하자 허블은 곧바로 입대를 결심한 후, 연구원 자리를 유보해달라고 편지를 썼다. 지도교수에게는 입대하기 전에 학위논문 심사를 앞당겨 달라는 요청했다. 그의 요청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학위논문은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그대로 통과되었고, 그해 5월 사관후보생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보병중대장을 맡았으며 이듬해 소령으로 진급했다. 1918년 그의 중대병력은 프랑스에 상륙했으나 6주 후 독일이 항복하는 바람에 실제로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고, 허블은 지뢰폭발 사고로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1919년 8월에 제대한 허블은 9월에 천문대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다. 천문대장 헤일(George Ellery Hale, 1868~1938)의 노력으로 건설된 윌슨산 천문대는 구경 2.5미터, 1.5미터의 성능 좋은 망원경을 두 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1920년 4월 26일,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서 천문학의 대논쟁으로 일컬어지는 ‘섀플리-커티스 논쟁(Shapley–Curtis Debate)’이 벌어졌다.

 섀플리(Harlow Shapley, 1885~1972)는 ‘우리 은하는 직경이 30만 광년으로 모든 성단과 성운을 포함하는 유일한 우주’라는 요지의 주장을 폈고, 릭 천문대의 커티스(Heber Doust Curtis, 1872~1942)는 ‘안드로메다를 비롯한 나선 성운들은 우리 은하 밖에 존재하는 섬 우주와 같다’고 주장했다.

 대논쟁에서 M31 안드로메다에 대한 관측 자료는 중요한 증거 도구가 되었다.

 섀플리는 안드로메다에서 1885년에 관측된 신성(新星, Nova: 별이 폭발하여 광도가 수만 배 이상으로 밝아졌다가 차차 어두워지는 별)S의 겉보기 광도가 매우 크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 안드로메다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운이라고 주장했다.

 커티스는 신성S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밝은 신성일 수 있으므로 겉보기 광도가 크다는 것이 결코 가까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론했다. 또한 안드로메다는 내부에서 신성이 여러 개 관측된 바 있으므로 결코 작은 성운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 커티스의 주장은 훗날 사실로 밝혀졌다. 신성S는 일반 신성보다 수십 배 이상 밝은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이었다.-

 섀플리는 반 마넨(Adriaan van Maanen, 1884~1946)이 측정한 M33 성운의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고자 했다. M33 성운, 일명 바람개비 성운은 회전하고 있으며, 그 회전 각속도로 미루어 볼 때 거리가 멀지 않은 우리 은하 내부에 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만약 M33이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천체라면 회전 속도가 광속을 넘어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커티스는 반 마넨의 측정 자료를 의심하면서 그 자료가 정말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면 내 의견이 틀렸음을 인정하겠다고 말했다.(실제로 바람개비 은하는 너무 멀리 있는 외부 은하이므로 수십 년을 관찰해도 회전각을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이 사실을 1935년에 허블이 입증했다.)

noname05.jpg

  [ 반 마넨, M33 바람개비 성운 고유운동 측정 그림, Astrophysical Journal(1923)]
위 측정이 잘못된 것임을 1935년 허블이 입증했다.
ⓒAmerican Astronomical Society· Provided by the NASA Astrophysics Data System

 대논쟁에서 양측이 서로 승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허블은 섀플리의 주장이 틀리고 커티스의 주장이 옳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섀플리와 반 마넨은 윌슨산 천문대에서 함께 근무하는 허블의 선임 동료들이었다. 새플리와 반 마넨은 친구였지만, 허블은 그들과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허블은 군인 장교용 코트와 니커 바지(골프 바지)를 즐겨 입고 선장처럼 담배 파이프를 물고 다녔으며, 옥스퍼드 유학 때 익힌 영국식 말투를 구사하는 별종이었다. 또한 그는 로즈 장학생이었고 게다가 만능 운동선수이기도 했으므로 만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다.

 허블은 망원경으로 성운들을 촬영하여 1922년 ‘은하수 내 성운과 은하수 외 성운’으로 구분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후 허블은 우리 은하계 밖의 성운을 타원 성운, 나선 성운, 불규칙 성운 세 종류로 간략하게 분류했다. 타원(Elliptical) 성운은 납작한 정도에 따라서 E0~E7로, 나선 성운은 중심부의 모양에 따라 정상 나선(Normal Spirals) 성운과 막대 나선(Barred Spirals) 성운으로 구분한 후, 나선팔이 벌어진 정도에 따라서 세 단계(Sa, Sb, Sc / SBa, SBb, SBc)로 나누었다. S0는 원반 형태의 성운이다. 

noname06.jpg

[ 허블의 성운(은하) 분류 체계 ]
출처: 허블의 저서 ≪성운의 왕국, The Realm of the Nabulae(1936)≫ p45 발췌

 은하계 밖의 성운은 실제로 은하이기 때문에 허블의 성운 분류는 곧 ‘은하 분류 체계’인 셈이다. 허블은 성운 분류 체계에 관한 내용을 편지로 적어 1923년 7월 국제천문연맹 성운부 회장인 베스토 슬라이퍼(Vesto Melvin Slipher, 1875~1969)에게 보냈다.(정식 논문은 1926년 12월 천체물리학회지에 게재되었다.)

 베스토 슬라이퍼는 평생 동안 로웰 천문대(Lowell Observatory)에 재직한 천문학자로 1912년 안드로메다 성운이 초속 300킬로미터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아냈다. 이는 천체의 스펙트럼을 관측했을 때 도플러 효과5)에 의해 나타나는 파장의 변화량을 측정하여 알아낸 것이었다. 슬라이퍼는 1917년까지 25개 나선 성운의 시선 속도를 측정하여 안드로메다를 제외한 나머지 나선 성운들은 평균 초속 500킬로미터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나 그는 성운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지 못했으므로 나선 성운들이 우리 은하 내부에 있는 것인지 외부에 있는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5)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
파동을 일으키는 파동원이 관찰자와의 상대속도에 따라서 파장과 진동수가 변화되어 관측되는 효과를 말한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가 관찰자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사이렌 소리가 높은 음으로 들리고, 멀어지는 경우에는 낮은 음으로 들리는 현상이 대표적인 도플러 효과의 예이다. 빛도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빛을 방출하는 천체가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는 경우에는 파장이 짧게 관측되고, 지구에서 멀어지는 경우에는 파장이 길게 관측된다. 파장이 짧아졌는지 길어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천체의 스펙트럼을 찍었을 때 검은색으로 나타나는 흡수선들의 위치 변동으로부터 알아낸다. 흡수선들이 짧은 파장(청색) 쪽으로 이동하면 천체가 지구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고, 긴 파장(적색) 쪽으로 이동하면 지구에서 먼 방향 쪽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를 각각 청색편이(Blueshift, 청색이동), 적색편이(Redshift, 적색이동)라고 한다.
적색편이량을 z, 천체가 방출한 빛의 파장을 λe, 관측된 파장을 λo, 후퇴속도를 V, 광속을 C라고 하면noname010.jpg로 표시된다. 이로부터 은하의 후퇴속도 V≈C(광속)×z(적색편이량)이다.

 성운 관측을 계속하던 허블은 1923년 10월 안드로메다 성운 내부에서 약 31.45일의 주기로 밝기가 변하는 세페이드 변광성6)을 발견했다.

6)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
1748년 네덜란드 출신 영국인 천문학자 존 구드릭(John Goodricke)은 세페우스자리 델타(δ Cephei)가 변광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별들을 세페이드 변광성이라고 한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별로서, 밝기의 변화 주기와 별의 밝기(광도)는 비례한다.

noname07.jpg

[ 세페이드 변광성(Ⅰ형)의 주기-광도 그래프 ]
출처: manasataramgini.wordpress.com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하버드 천문대에서 천체 사진 건판을 분석하던 헨리에타 스완 레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이었다. 그녀는 1777개의 변광성 분석 자료를 1908년 하버드 천문학 회보에 실었지만,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알리는 중요한 사실은 천문대장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 1846~1919)의 이름으로 1912년 하버드 연보에 게재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변광성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커링이 다른 업무를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에 윌슨산 천문대 연구원인 할로 섀플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문을 구한 바 있었다. 섀플리는 레빗의 변광성 자료를 이용하여 거리를 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7)

7)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는 변광성들 사이에 상대 광도 비교를 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별까지의 절대 광도를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을 통해 어느 한 개의 변광성이라도 거리를 알아낸 후 이를 적용해야 나머지 변광성들의 절대 광도를 알 수 있다. 가까운 별들은 지구 공전에 의해 발생하는 1년 동안의 연주시차 각을 측정하여 거리를 측정할 수 있지만, 세페이드 변광성들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연주시차 측정으로는 거리를 알기가 어렵다. 때문에 당시에는 태양계가 우주 공간을 몇 년 동안 이동하면서 생기는 은하들의 위치 변동 시차를 이용하여 거리를 추정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별의 절대 광도를 알게 되면 촛불이 2배, 3배 거리로 멀어질 때 밝기가 (1/2)²배, (1/3)²배로 어두워지는 원리를 이용하여 별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

 1924년 2월 허블은 안드로메다에서 발견한 변광성에 대한 내용을 편지로 써서 선임 동료였던 할로 섀플리에게 보냈다. 당시 섀플리는 하버드 천문대장 피커링이 죽은 뒤 그 자리를 물려받아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섀플리가 만든 주기-광도 관계를 이용하면 변광 주기가 31.45일인 변광성의 거리는 대략 100만 광년(실제로는 250만 광년)이나 된다. 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의 천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섀플리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후 허블의 발견을 인정하고 우리 은하가 우주 전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섀플리는 훗날 허블의 편지를 가리키며 “저것이 내 우주를 멸망시킨 편지라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블은 M31 안드로메다 이외에도 M33(바람개비 은하), NGC6822(바너드 은하)에서 추가적으로 세페이드 변광성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1925년 무렵에는 나선 성운들이 우리 은하 외부의 다른 은하라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었다.

 허블은 천문학 조수 밀턴 휴메이슨(Milton Lasell Humason, 1891~1972)과 함께 외부 은하들의 후퇴 속도를 측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휴메이슨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천문대 건설 자재를 옮기는 노새꾼으로 일하다가 스무 살에 천문대 전기기술자의 딸과 결혼했고, 1922년 천문학 조수로 발탁된 사람이었다. 휴메이슨은 흐린 천체를 촬영하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밤샘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고, 여러 은하들의 후퇴속도를 측정하여 1936년에는 100개 은하의 시선속도를 발표했다.

 허블이 휴메이슨의 자료를 분석하여 얻어낸 결론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우리 은하에서 멀어지는 후퇴속도가 빠르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내용을 6쪽으로 정리하여 1929년 3월 국립과학원회보에 ≪은하계 외부 성운의 거리와 방사 속도와의 관계, A relation between distance and radial velocity among extra-galactic nebulae≫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noname08.jpg
[ 외부 성운(은하)들의 속도-거리 관계를 표시한 허블 도표(1929) ]
출처: PNAS(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ic of Science of the USA)

 

 은하의 후퇴 속도를 V, 은하까지의 거리를 r이라고 하면, 허블의 법칙은 V = H·r 로 표기된다. 허블은 비례 상수 H 값을 500km/s/Mpc로 제시했다.(후대 과학자들의 연구와 보정을 통해 H≒71km/s/Mpc으로 조정되었다.)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르메트르(Georges Henri Joseph Édouard Lemaître, 1894~1966)는 1925년에 대폭발 우주론을 발표했다. 초고온 초밀도의 한 점이 폭발하여 현재의 우주 상태로 팽창했다는 내용이었다. 대폭발 우주론은 훗날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허블의 법칙은 대폭발 우주론의 우주 팽창을 지지하는 첫 번째 증거였다.

 1930년 허블은 미국을 방문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부부를 만났다. 아인슈타인은 허블의 연구에 찬사를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영원하고 변치 않는 정상우주(Infinite Universe)를 오랫동안 고집하며 믿었지만, 결국 대폭발 우주론을 인정했다.

 한 점에서 폭발하여 팽창한 우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한 점에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 

 시간(t) = 거리(r) ∕ 속력(V) 이므로, 이 공식에 허블 공식 V = H·r을 대입하면,
 시간(t) = r ∕ V = r ∕ Hr = 1 ∕ H이 된다.

 1∕H 를 ‘허블 시간8)’이라고 하며, 이 값이 곧 우리 우주의 나이(약 138억 년)이다.

8) 허블 시간은 상수 H 값의 크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허블이 구한 H=500km/s/Mps의 값으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가 20억 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오늘날 H상수 값은 약 71km/s/Mpc으로 조정되었다.  그 값을 대입하면,

noname09.jpg

 허블은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1936년 ≪성운의 왕국, The Realm of the Nabulae≫을 출간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허블은 진주만 공습 이후 육군 소령으로 재복무를 지원하여 1942년 8월에 탄도연구소에 들어갔고, 대포와 폭격기의 사정거리표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허블은 윌슨산 천문대 관측계획위원장으로 복직했고, 1948년 윌슨산 천문대와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이 운영하는 팔로마 천문대(Paloma Observatory)가 통합되면서 대학교수직도 겸임하게 되었다.
 1949년 허블은 심근경색으로 고통을 겪었고, 1953년 9월 28일 64세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는 조용히 가고 싶다고 아내 그레이스에게 유언을 남겼고, 사망한 다음날 바로 화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블이 그레이스(Grace Lillian Burke, 1889~1980)를 만난 것은 1920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릭 천문대의 천문학자 윌리엄 라이트(William Hammond Wright)가 윌슨산 천문대로 출장을 오면서 부인을 동반했고, 그녀가 시누이 그레이스를 천문대 산장으로 불렀다.

 그레이스는 산호세· 산타클라라 철도회사 사장의 장녀로 스텐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은 재원이었다. 그레이스는 허블과 동갑이었지만, 대학 1년 선배인 지질학자 얼 리브(Earl Leib)와 결혼한 8년차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은 남태평양 지질조사를 위해 집을 비울 때가 많았으며, 부부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윌슨산을 다녀온 1년 후에 남편이 탄광 지하 갱도로 들어가는 사다리에서 추락하여 사망했다.

noname011.jpg

[ 허블 부부(그레이스, 에드윈) ]
사진 출처: sanmarinotribune.com


 그레이스와 허블은 1922년부터 편지를 교환했고 1923년 개기일식 관측 행사 때 다시 만났으며 1924년 2월 26일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하는 동안 유럽천문학자들의 환대를 받았다. 부부는 이후에도 외국 출장을 자주 다녔고, 허블 아내의 여행비까지 천문대 경비로 처리하는 바람에 동료들의 불만을 샀다. 그레이스는 2년 후 임신을 하였으나 유산하였고, 이후 자녀는 없었다.

 허블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결혼 후에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레이스는 남편이 죽은 후 허블의 논문과 자료들을 도서관에 기증하였고,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저널리스트로 예술, 정치계의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레이스는 1981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