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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당신도 혹시 선비충? 탐험대원 '하릅'의 언어탐험
입력 :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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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2016년 4월,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한창 유행하던 여자 아이돌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여자니까, 이해해 주길’

 노래의 화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변덕스러운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구절을 보고 ‘여자면, 무조건 변덕스러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이 가사가 대중들에게 올바르지 못한 성 인식을 심어줄까 걱정됐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이런 걸 하나하나 따지면, '선비충'이라는 소리를 듣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선비충’은 젊은 세대에서 비속어로 통하는 신조어로, ‘가부장적인 사람’이나 ‘꼰대처럼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선비’, ‘X선비’ 등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너 선비 같구나?’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말이기 때문이다. ‘선비’는 ‘학문을 닦는 사람’,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비 같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더러는 ‘품성이 얌전하기만 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선비충’과는 의미의 맥락을 달리한다.

 ‘선비충’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은 젊은 세대가 가부장적 문화나 봉건적 분위기 등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선비충’ 등의 표현이 다소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선비충’이라는 말의 쓰임이 더욱 다양해졌다. 웃자고 만든 콘텐츠나, 농담조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선비충’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바람을 피웠다'고 거짓말하는 내용의 ‘Frank Video(몰래 카메라)’ 콘텐츠를 두고,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예의가 아니네요”라는 반응을 보이면 ‘선비충’이라고 불릴 수 있다. 웃자고 만든 콘텐츠에 정색하고 진지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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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필자는 ‘여자니까, 이해해주길’이라는 가사에 불편함을 느꼈다.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자고 올린 ‘Frank Video’처럼, 이 노래 가사도 누군가에게는 듣고 넘길 만한 내용일 수 있다. 그래서 ‘선비충’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고, 이 가사는 무비판적으로 대중에 의해 소비되었다.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올바른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를 진지하게 비판하면 ‘선비충’이라고 낙인찍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늘도 누군가의 일리 있는 발언이, 쉽게 ‘선비충’이라 폄하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하릅(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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